[아주초대석]소리꾼 이자람 “판소리, 한(恨)이 아닌 인생 자체를 담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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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등용 기자
입력 2017-12-0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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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판소리·밴드 등 다방면 활동···"잘 노는 것이 예술 활동의 원동력"

소리꾼 이자람은 지난달 막을 내린 뮤지컬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 역을 맡아 열연했다. [사진=로네뜨 제공]



“판소리가 한(恨)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만약 지하철에서 누가 어깨를 치고 지나갔을 때 생기는 화처럼 일상적인 것들을 한으로 본다면 편협한 생각이죠. 판소리는 한만 담는 것이 아닌, 인생 자체를 담아요.”

소리꾼 이자람(39)은 국악인이자 밴드 보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중요 무형 문화재 판소리(춘향가, 적벽가)의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1999년 ‘춘향가’를 8시간 만에 완창하면서 최연소 완창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2010년부터는 뮤지컬계로 보폭을 넓혔다. 뮤지컬 ‘서편제’(연출 이지나)의 주인공 송화 역을 맡은 그는 2014년 그 역량을 인정받아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올해 네 번째로 막을 올린 ‘서편제’에서도 송화 역으로 무대를 빛냈다.
 

[사진=로네뜨 제공]



◆뮤지컬 출연, 다른 동네 놀러 가는 마음

판소리를 하는 이자람에게 뮤지컬은 분명 낯선 분야다. 뮤지컬 ‘서편제’는 소리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해 그나마 이자람과 가까운 작품이다. ‘서편제’ 출연이 ‘늘 생경한 시간이 되는 경험’이란 이자람은 “매번 준비하는 마음이 쉽지만은 않다. 많은 각오를 해야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어느덧 네 번째다. 2010년을 시작으로 2012년, 2014년 그리고 올해까지 ‘서편제’ 송화에 캐스팅 되며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그는 “매번 임하는 마음은 같다. 계속 우리 동네(국악계)에서만 사느라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때 무언가를 환기시킬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자람이 ‘서편제’ 초연에 출연을 결심한 데에는 이지나 연출의 제안이 있었다. 이지나 연출이 ‘네가 가고 있는 길에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진 않을 것이니 잘 생각해서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고, 이자람은 그 손을 잡았다.

이자람은 “어떤 작품을 만날 때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판소리든 내가 이곳에서 잘 놀 수 있을지, 여기서 얻어갈 것이 내가 쓰는 것과 균형을 잘 이룰 수 있을지를 따져본다. 그 부분이 잘 맞을 때는 장르를 불문하고 도전하는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세 번째 출연 때까지만 해도 이자람은 송화란 캐릭터와 거리를 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리꾼이 되기 위해 아버지에 의해 눈을 잃고, 그리고 그 아버지마저 송화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이자람은 “이번에 송화를 연기하면서 이 힘든 과정을 어떻게 버텼을까란 생각을 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도 각자가 그런 나름의 고통과 싸우고 있지 않나 싶더라. 관객들이 왜 송화에게 위로를 받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고 소회를 전했다.
 

[사진=로네뜨 제공]



◆잘 노는 게 예술 활동의 원동력

혼자서 노래하는 판소리와 달리 뮤지컬은 주조연 배우뿐 아니라 여러 앙상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작업이다. 이로 인한 차이점에 대해 이자람은 “혼자 할 때는 그날 내 상태에 따라 굉장히 섹시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렇다. 혼자일 때도 그렇게 매일이 다른데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나 때문에 상대방이 바뀌기도 하고, 상대방 때문에 내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판소리, 뮤지컬뿐 아니라 밴드활동까지 할 정도로 이자람은 다방면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 중이다. 하지만 본래 직업인 소리꾼으로서 놓치지 않겠다는 점이 있다. 노는 것이다. ‘잘’ 노는 것이 이자람에게 예술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는 “내 안에서 노는 욕망이 사라지면 예술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 같다. 판소리를 하다가도 책임감이 느껴져 논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때 놀기 위해 밴드 음악을 미친 듯이 한다. 마찬가지로 밴드 음악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들 때는 대본을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서로를 위하는 것들이다”고 설명했다.

소리꾼, 밴드 보컬, 연출가 등 많은 활동을 하는 만큼 딱 하나의 수식어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 이자람이다. 그는 “지금도 나 자신을 수식할 만한 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아직 답은 못 찾았는데 무대에 서는 걸 잘하는 것 같다. 창작자나 아티스트가 제일 가깝지 않나 싶다.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다른 창작자와의 협업에 대해서는 기준이 명확하다. 협업을 할 때에 창작자가 아닌 작품 자체에 대한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 이자람의 생각이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서 어떤 일을 한다면 그건 내 스스로의 규칙에 위배된다. 그건 그냥 그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일 뿐”이라면서 “작품을 위한 협업이 생성되면 그것이 멋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로네뜨 제공]



◆송소희, 고맙고 미안한 마음 커

국악계에서는 이자람과 함께 송소희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공연에 중점을 두고 활동 중인 이자람과 달리 송소희는 방송과 CF에도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고 있다. 국악을 알리는 방법은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국악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송소희에 대해 안타깝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던 이자람은 “난 오히려 덜 힘든 일을 택한 것이다. 송소희는 더 많은 대중 앞에 나서서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어가면서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의 국악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 쪽(대중 앞에 나서는 일)을 못한다. 용기도 없고 그럴 성격도 안 된다. 방 안에서 내가 편한 것들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자기 작업 없이 쉬는 날을 많이 보낸 이자람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연출부터 밴드 활동까지 그동안 아껴왔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아낸다는 각오다. 그는 “내년엔 국립창극단에서 작창 연출을 맡은 작품이 있다. 대본까지 쓰게 되는 1년만의 첫 작업이다. 밴드 2집도 나올 예정이다”라고 말을 마무리했다.

◆소리꾼 이자람은?

△뮤지컬
서편제(14, 12, 10)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15), 당통의 죽음(13)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16, 15), 억척가(15, 14, 13, 12, 11), 사천가(13, 12, 11, 10, 09, 08)

△앨범
아마도이자람밴드 2nd Single <산다>(15)
아마도이자람밴드 컨셉트 앨범 <크레이지 베가본드>(14)
아마도이자람밴드 정규앨범 <데뷰>(13)
아마도이자람밴드 1st Single <슬픈노래>(09)

△수상
KBS 국악대상 판소리상 수상(16)
사야 국악상 수상(16)
동아연극상새개념 연극상 부문 수상(판소리 단편선_주요섭 ‘추물, 살인’/15)
더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 수상(서편제/14)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부문 수상(12)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12)
올해의 신진여성문화예술인상 수상(11)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10)
Festival KONTAKT IN TORUN(POLAND) 최고 여배우상 수상(10)
전주대사습 일반부 장원(04)

△작, 작창
연극 <용비어천가> 작곡, 음악감독(17)
창극 <흥보씨>작창, 작곡, 음악감독(17)
판소리 <여보세요> 작, 연출(16)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작창, 음악감독(15)
판소리단편선_마르케스<이방인의 노래> 작, 작창(14)
판소리단편선_주요섭<추물><살인> 작, 작창(14)
<억척가> 작, 작창(12)
<사천가> 작, 작창(07)

△기타
중요무형문화재제5호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 <동편제 적벽가>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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