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대입제도를 산림청에 맡길 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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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입력 2017-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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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현재의 대학입시제도가 몹시 당황스럽다. 심지어 입시제도를 관할하는 사람 중에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을 망치기 위한 고도의 목표를 지니고 어디선가 파견돼 암약하는 자가 있지 않나 의심이 들 정도다. 그렇지 않고서야 100년 앞을 대비해야 하는 교육 제도를 현재처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을 설명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1980년대 내신등급과 학력고사 점수로 경쟁해 ‘한 날 한 방에’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현재 교육현장에 있지도 않고, 입시 전문가도 아니다. 따라서 내가 겪었던 입시제도와 현 제도의 철학이나 취지, 장단점 등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 알아보려 해도 현재의 제도를 이해하기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또 현 제도에 따른 어떤 ‘밥그릇’과도 관련이 없다. 나는 그저 두 명의 자녀를 현재의 입시제도 아래서 대학에 보내며 겪었던 학부모로서 ‘고통과 불만’이라는 확실한 증상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과거 ‘국민교육헌장’이 표방했던 교육의 지표는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였다. 특히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 계발, 창조의 힘과 개척 정신’에 주목한다. 현 입시제도가 오르고자 하는 목표로 추측될 뿐 아니라 학벌사회 극복을 위한 교육 표본이라 생각해서다. 그러나 수시, 수능, 정시를 축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대입 제도는 목표했던 지점에 아직 이르지 못한 채 거친 사막에서 헤매는 것 같다.

물론, 교육제도는 국가와 사회 시스템 전체에 엮여 있어 거대하고 복잡하다. 한두 가지 증상과 부작용만으로 판단하고 처방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책임자들이 보기에 지금 제기하는 고통과 불만에 합당함이 있다면 그것만이라도 속히 개선하길 원한다.

첫째, 대학 가는 방법이 너무 복잡다단하다. 학생 스스로 하나의 길을 결정하고 준비하기가 벅차다. 부모와 일찍부터 협의가 필요한데, 부모는 수시에서 정시까지 학생부, 학생부종합, 원점수,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 등의 단어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우왕좌왕하며 수시와 정시 모두 신경을 쓰다 보니 학생은 학생대로, 사교육 등 뒷받침을 해야 하는 부모는 부모대로 힘들다. 입시 후엔 해당 대학의 평가기준을 명확히 모르겠기에 당락의 인과도 쉬 파악이 안 된다.

둘째, 뭐가 뭔지 모를 ‘깜깜이’ 경쟁이라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그만큼 낮다. 자신의 실력보다는 운이 부족했거나 선택의 실수로 떨어졌다는 생각에 이르다 보니 재수, 삼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특목고와 강남 소재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재수율이 80%를 넘어 90%에 육박한다’고 한다. 팩트 확인은 어렵지만 이전보다 재수하는 비율이 확연히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예전에도 몇 수에 걸쳐 서울대에 올인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자신의 실력을 더 높여 원하는 대학에 가고자 재수를 선택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할 바 못 된다. 다만, 복잡다단한 수시에서 떨어진 재학생들에겐 좁은 문의 정시만 남는다. 정시는 수능에 올인한 재수, 삼수생들로 이미 넘쳐 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밀린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재수를 해야 한다. 이들의 숫자를 줄이는 제도 개선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셋째, 올해 입시는 수능 직후 점수도 발표되기 전에 논술 등 수시가 치러지고 있다. 수시에는 수능 점수로 확정되는 등급 컷이 있다. 수능 등급은 점수가 발표돼야 알 수 있다. 자신의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최대 6개 대학까지 수시에 응해야 한다. 명백한 모순이다. 답답한 학생들끼리 사교육 업체에 가채점 점수를 등록해 등급 컷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깜깜이’다. 업체 7곳의 최근 3년 정확도가 58%다. 결국 좁은 문의 정시를 피해 수시로 먼저 합격하고 싶은 수험생은 일단 시험을 쳐놓고 보자니 6개 대학을 ‘마구’ 쫓아다녀야 한다.

넷째, 이런 이유로 폭증하는 사교육비에 부모들 허리가 휜다. 재학 때 수시와 수능에 다 걸쳐야 하니 사교육비가 거기에 비례해 증가한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운전이 대학을 좌우한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닐 터, ‘그런 것 안 시켜도 잘 가는 아이들은 잘 가더라’는 말은 하지 말자. 아이가 재수라도 하게 되면 더하다. 시쳇말로 1년 학원비로 그랜저 승용차 한 대는 기본이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심리가 작동하는 막판 수시 사교육에 더해 6개 대학 수시 전형료도 ‘대학들이 수시로 장사한다’는 말이 나돌 만큼 만만찮다. 결석해도 환불도 없다. 마지막 정시 전형료는 그동안 돈 많이 썼으니 봐 드릴게요? 어림도 없다.

마음고생이야 항상 있었다 해도 혼란과 중노동, 고비용의 아수라장으로 정리되는 현 입시제도의 부작용과 모순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주는 고통이다. 그럼에도 현 입시제도가 학교 서열화와 학벌사회 극복에 긍정적이라는 것, 과도기라 혼란과 부작용이 있다는 것, 과거보다 진보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돼 다행이다. 이마저 몰랐을 때는 하마터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고통만 주는 교육부를 없애자. 꼭 필요한 기능은 산림청이나 농촌진흥청으로 이관하자. 벌건 민둥산에 나무를 꽉 채운, 오천만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노하우라면 충분하지 않겠느냐”란 말을 끝내 해버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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