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칼럼] 문정부의 혁신성장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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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카이스트교수
입력 2017-1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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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칼럼]

 

[사진=이병태 카이스트교수]



문 정부의 혁신성장 가능할까?


우리 경제가 구조조정 능력이나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혁신 능력의 불임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던 주력산업의 축소가 계속되고 있다. 역대 정부는 정권의 이념적 지향이나 경제철학과 무관하게 모두 규제개혁과 혁신성장을 주장했지만 대기업 축소와 영세중소기업 중심으로의 재편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지속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광공업에서 500인 이상 고용 기업의 수가 1987년 746개에서 최근 300개 수준으로 감소해 온 반면 서비스업에서 대기업의 고용 비중은 OECD 국가 중에서 최저수준이다. 인구 1000명당 영세자영업자 수가 50개가 넘고 고용을 일으키는 기업은 만들어지지 않고 생계형 자영업 창업만 압도적으로 만들어지는 상황에서는 혁신성장이 아니라 생산성과 소득 감소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과 소득주도 성장의 양날개론을 들고 나오면서 뒤늦게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혁신성장이 가능할까?

우선 규제개혁에서 혁신성장을 하려면 새로운 기업과 산업이 가능한 통 큰 규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역대정부 모두 이러한 규제개혁은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통 큰 규제개혁이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은 이 정부의 편협한 경제철학 또는 이념지향 때문이다. 이번 정부의 국정운영기본계획을 보면 은산분리는 더 강화하고, 재벌기업의 경제집중은 더 철저한 견제의 대상이며, 의료의 공공성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러한 큰 이념의 지향성을 그대로 두고는 통 큰 규제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은산분리를 강화하는 순간 인터넷 은행은 갈 길을 잃고 있고 알리바바처럼 전자상거래와 은행을 겸업하고, 알리페이의 혁신을 하는 새로운 기업은 불가능하다. 병원의 공공성과 비영리라는 규제를 두고는 의료의 산업화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정권의 경제철학이 시장의 자율보다는 시장의 통제를 전제하는 관 우위의 오만한 가치 지향을 그대로 둔 채 혁파할 통큰 규제는 존재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규제는 법률적 제한’이라는 명시적 규제도 있지만 규제개혁의 본래 의미는 정부와 시장의 거리를 의미한다. 즉, 공권력이 시장의 자율을 보장하고 그 혁신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번 정부가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런 자율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시장을 통제 대상으로 보고 시장이 할 의사결정을 정부가 주도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와 가맹점의 고용을 공권력으로 재단하거나, 통신 시장에 보편요금제의 도입과 통신비의 결정을 합의 기구에서 논의하게 하는 비시장적 관여가 그렇다. 최근 들어 가계비 대책과 부동산 대책에 따라 쏟아지고 있는 은행의 대출조건을 정부가 결정하는 행정행위 또한 그 어떤 법률적 규제 못지않게 기업과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크고 사업과 투자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핀테크와 빅데이터에 의해 수만종의 정보를 활용해서 담보가 없는 고객에게도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소득과 담보의 단순한 기준으로 고객에게 융자를 해주는 조건을 중앙정부 공무원들이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나라에서는 금융이 산업이 될 수 없다. 불행하게도 금융산업이 없기에 핀테크도 한계를 갖는다. 이런 식이라면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이나 대출심사역 및 이를 지원하는 IT 시스템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온갖 영역에서 관치를 늘려가면서 구두로만 혁신성장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의 극치이고, 시장은 이를 신뢰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일부 이익집단의 행정편의를 늘려주는 작은 규제 변화에 그칠 공산이 크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혁신성장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내기가 무척 어렵다. 우리나라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소득이 낮고 고용의 질이 낮은 데는 소위 히든 챔피언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술집약적 기업들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의 자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세계 시장에서 1~3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이런 강소기업은 찾아 보기 매우 어렵다. 이런 기업의 밀도는 독일이나 스위스,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등의 20~30분의1에 불과하다. 이 같은 기업은 장기간의 기술투자와 안정된 경영권의 승계, 질 좋은 직업교육의 축적을 통해 오랜 기간을 거쳐 길러진다. 튼튼한 기업을 육성하려면 결국 상속세의 현실화, 수월성 중심의 교육개혁과 중소기업으로 우수 인재가 갈 수 있는 노동개혁, 세계적인 우수 인재가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이민 정책과 외국인을 위한 사회환경 개선 등 사회 전반의 개혁 없이 단기적 성과를 낼 수가 없다.

역대 정부가 우회전하면 좌측 깜빡이 등을 켜고, 좌회전하면 우측 깜빡이 등을 켜는 식으로 비판을 잠재우는 진정성 없는 규제개혁 시늉을 한 것이 시장의 신뢰를 상실하고 아시아에서 점점 뒤처지는 경제를 만든 주요 원인이다. 소득주도와 혁신성장의 양날개론 또한 다르지 않다. 한쪽으로 규제를 더해가고 관치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혁신성장을 주장하는 데 시장이 신뢰할 리 없다.

혁신성장의 전제는 시장의 자유와 자율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서 국민실질소득에서 싱가포르는 우리의 2.3배, 홍콩은 1.5배, 그리고 대만은 1.3배이며 그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들 나라의 경제자유도가 홍콩이 1위, 싱가포르는 2위, 그리고 대만은 1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혁신성장을 할 수 있는 규재혁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장의 지혜와 혁신이 정부 공무원보다는 월등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시장을 적폐로 보고 정책당국자마다 시장을 훈계하고 있다. 이런 철학으로는 혁신성장은 구두선의 정치적 쇼로 끝나고 청년과 창업가들에게는 희망고문만 지속시킬 가능성이 크다. 혁신성장이 가능하려면 정권의 경제철학에 대한 자기성찰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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