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도강난(渡江難)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7-11-30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강(江)과 하(河)는 비슷한 듯 다르다. 둘 다 ‘큰 내(大川)’를 뜻하지만, 흐르는 모양과 소리로 구별한다. 강(江)은 삼 수(水)변에 중국어로 ‘궁~’ 소리의 장인 공(工)을 붙였다. 맑고 깊이 흐르는 물이 내는 소리이다. 장강(長江)이 그렇다. 하(河)는 삼 수(水)변에 ‘커~’로 읽는 옳을 가(可)를 붙였다. 탁하고 급격하게 굽이치는 물이 내는 소리이다. 황하(黃河)가 그렇다.

압록강부터 낙동강까지 우리네 큰 내가 모두 강(江)인 것은 맑고 유유한 흐름 때문이다. 그래서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부르짖는 고조선의 '공무도하(公無渡河)' 노래는 대동강보다 랴오허(遼河) 부근에서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장강은 ‘어머니 강’이다. 넉넉한 흐름으로 중국 문화의 요람이 됐다. 무협의 강호(江湖)는 장강과 동정호를 일컫는다. 물론 작게는 장부의 가슴, 크게는 세상 전체를 뜻하지만. 

‘아버지 강’ 황하는 정치적으로 흐른다. 세계 4대 문명의 바탕이자 수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한 무대이다. 노래 ‘성주풀이’는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로 이어진다. 바로 황하가 비껴 흐르는 북망산(北邙山)이다. 죽으면 간다는 곳이다. 이곳에 묻힌 제왕제후가 모두 200명이라고 한다. 지금도 북망산 아래는 황토 빛깔의 황하가 굽이치는데, 영웅호걸도 절세가인도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잦은 범람에 북망산 기슭이 깎여 나갔다가 다시 퇴적하기를 거듭하면서 결과적으로 어복(魚腹)에 장사를 지낸 셈이 됐다.

북망산에서 바라보면 황하 건너편에 용문석굴이 있다. 동굴 1352개에 불감 785개가 새겨져 있다. 생자(生者)에게는 오늘의 거울이요, 사자(死者)에게는 저승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뜻한다. 황하가 이승과 저승을 가르며 흐르는 것이다. 강의 저쪽 기슭을 피안(彼岸)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일 터이다.

기독교인이 "요단강 건너서 만나리" 노래할 때, 강 건너 저편은 피안이면서 약속의 땅이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자 하늘나라의 원관념이다.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망각의 강 '레테(Lethe)'이다.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애타게 외칠 때 ‘강’ 역시 생사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강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이처럼 죽음을 품고 흐른다. 생사일여(生死一如) 아니겠나. 로마의 카이사르(Caesar)가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는 다짐이다.

주역에 '섭대천(涉大川)'이란 용어가 자주 나온다. ‘큰 내를 건넌다’는 뜻인데, 건곤일척의 모험을 상징한다. 예컨대 수(需)괘는 ‘확신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것은 밝은 빛이 길을 여는 것과 같아 그 끝이 길하다. 따라서 큰 내를 건너는 것(모험)이 이롭다(利涉大川)’고 풀이한다. 그 반면 송(訟)괘는 ‘정치인은 신뢰와 청렴과 불편부당으로 처세하면 길하지만, 정치의 끝은 역시 흉하다. 소통과 조언이 필수이며, 새 세상을 열기 위한 모험은 불리하다(不利涉大川)’고 풀이한다. 

수(需)괘는 강태공이 빈 낚시로 세월을 낚는 것처럼 기다림의 미덕을 익히면 마침내 천시(天時)를 얻어 대업(大業)을 이룬다는 뜻이고, 송(訟)괘는 큰 정치는 민심을 제대로 읽고 두려워하며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모험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우침을 담고 있다.

결국 기다림과 조급함이 대업을 이루느냐, 실패하느냐를 가른다. 앞으로의 행로가 이롭든 불리하든 그 경계에 ‘큰 내를 건너는(涉大川)’ 결단이 자리한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품고 가르는 큰 내는 본디 정치적이다.

강은 한 줄기 물도 거부하지 않는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다. 물줄기의 근원은 빗물이다. 주역에서 빗물은 인생에서의 작은 성공이나 행복을 의미한다. 그런데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힘겨워하는 서민들은 그야말로 자그마한 성공이나 행복도 얻기가 쉽지 않다.

소축(小畜)괘는 작은 것을 기른다는 뜻인데, 가정을 기초로 한 작은 행복을 가르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작은 성공과 행복도 일찍부터 노력하며, 큰 욕심 버리고,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이웃과 화목해야 이룬다고 했다. 그런데 먹구름이 몰려와도 비가 오지 못하는 '밀운불우(密雲不雨)’, 즉 작은 성공과 행복마저 얻지 못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바깥에서 뭔가 이뤄지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란다.

소축(小畜)과 달리 대축(大畜)은 ‘큰 내’를 건너야 한다.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희생이 필요하단다. GE의 잭 웰치가 이혼을 거듭하거나, 성공한 CEO 가정이 꼭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유일까. 대유(大有)는 요즘으로 재벌쯤인데, 타고난다(元亨)고 했다. 하지만 이들 재벌도 쓴소리 하는 친구를 사귀고, 겸손과 검박(儉朴)해야 길(吉)하다고 충고한다.

누구나 언젠가 강과 마주친다. 건너느냐, 돌아가느냐. 문제는 강의 폭과 깊이가 아니다. 한 뼘 낭떠러지에서 낙상하고, 한 자 시냇물에서 익사한다. 관건은 한 치 마음이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때가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