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영웅이신 6․25‘지게 부대’ 고 김아귀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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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피민호 기자
입력 2017-11-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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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3일 6․25전쟁 당시 비군인 참전 노무자 중 최초로 신원이 확인된 故 김아귀님(1911년생)의 아들 김학모(78, 경북 상주 사벌면)씨의 자택에서 국유단 단장, 책임지역 부대장(50사단 120연대장, 대대장), 경북 상주시장, 사벌면장, 유가족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가졌다.

행사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고인의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 수습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발굴된 플라스틱 숟가락 등 유품도 함께 전달했다.

고인은 1951년 10월 노무단제 5009부대(103사단 109연대) 소속으로 6․25전쟁 당시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이번 6․25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6번째이며, 올해만 여덟 번째 성과다.

특히, 최초로 비군인 참전 노무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됏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고인은 1911년 경북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7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나 1933년 3월 최순백씨(2010년 사망)와 결혼해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고인은 1951년 5월경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준비되지 않은 전쟁을 치러야 했던 혼란의 시기에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대구 노무단 양성소를 거처 노무사단 5009부대로 배치돼 참전했다.

당시 전황은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으로 우리 영토의 대부분을 빼앗겼던 국군이 미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북진에 성공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재역전되고 11월 ‘청천강 전투’와 ‘장진호 전투’에서 아군이 불리해지자 12월 국군과 유엔군은 철수를 결정, ‘흥남철수작전’을 실시하던 상황이었다.

전선 상황이 불리해지자 긴급히 전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에 유엔군은 1951년 6월 전투병력을 절감하고 전장에 적시의 보급품을 운반하기 위해 민간인 운반단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노무자를 흡수해 ‘한국노무단(KSC/Korea Service Corps)'을 창설했다.

한국 노무단은 3개 사단 및 2개 여단으로 편성·운용됐으며, 그들의 임무는 전선부대에 탄약, 연료, 식량 등 보급품 운반과 부상자 후송, 진지공사, 도로와 교량 보수 등 전투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노무자들의 운반수단은 주로 지게였고, 사용했던 지게가 알파벳 A를 닮았다고 해서 그들은 ‘A Frame Army(지게부대)’라고 불렸다.

휴전 때까지 운용된 노무자의 숫자만 해도 1만3000여 명에 이르렀으며, 1951~53년간 확인된 희생자만 해도 8,794명이다.

고인이 참전한 양구 수리봉 일대는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 지역으로 고인은 51년 10월 이곳 전투지역에서 전투근무 지원활동을 하던 중 적 포탄에 맞아 전사하신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의 유해는 2010년 10월과 2012년 10월 두차례에 걸쳐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수리봉 일대에서 플라스틱 숟가락, 불명비닐 등 유품과 함께 부분유해로 발굴됐다.

당시 전사자의 유해는 발굴 되었지만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인 인식표와 도장 등의 유품이 함께 발굴되지 않았고, 유가족 유전자 샘플에서도 일치하는 시료가 없어 신원확인이 어려웠다.

이에 따라 국유단은 발굴지역의 전사 장소·일자를 기준으로 군인 및 비군인 실종처리 전사자 병적, 전사망 확인서 발행 대장, 보훈처·현충원 전사자 자료를 비교 분석해 전사 장소 일자가 유사한 전사자를 확인하고, 행정기관과 협조해 제적·호적을 추적해 전사자와 유가족 자료를 확보했다.

2017년 6월17일, 경북 상주에 발굴유해 전사자의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아들 두 분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고, 이후 국방부 조사본부에 채취한 유전자에 대한 검사의뢰 결과 지난 10월 26일, 발굴된 유해의 유전자와 유가족의 유전자가 동일해 부자관계가 맞다는 감정서를 받아 최종적으로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됐다.

고인의 아들 김학모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제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볼 수 있어 감격스럽다”면서 “전쟁 이후 어렵게 살면서도 아버지의 전사확인증을 받기 위해 육군본부, 대구지방 병무청 등 백방으로 뛰어 다닌 것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며 “아버지를 꼭 현충원에 모셨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원이 확인된 고인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추후 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국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대한민국을 목숨 바쳐 지켜낸 호국의 영웅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비군인 노무자 최초 신원확인을 계기로 비군인 전사실종자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신분이 어떠하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은 마지막 한분까지 찾아서 하루 빨리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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