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대한상의 회장의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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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산업부 부국장
입력 2017-11-2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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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10년 전이다. 2007년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국 샌드위치론’을 말했다. “일본은 앞서 가고 중국은 쫓아오는 상황에서 한국은 두 나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경고였다. 당시 정부는 “아니다”고 자료만 냈다. 돌이켜보면 무능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예견하지 못했든지, 안이했든지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회장은 또 쓴소리를 했다. 그는 “한국은 규제 완화를 공격적으로 해야 선진국으로 빨리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국만큼은 규제 완화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정부 입장에선 심사가 편했을 리 만무하다.

당시 정부가 애써 외면했던 ‘샌드위치론’은 이제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아베노믹스에 힘입은 일본 기업과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무섭게 성장한 중국 업체들 틈에 완전히 낀 신세이다.

올해 상반기 회계연도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제작소, 후지쓰 등 일본 4개 주요 전자업체는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20여년간 침체됐던 일본 전자업체들은 과거의 영광 되찾기에 잰걸음이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으로 꼽히는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이미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섰다. 스마트폰, 철강, 조선 등 한국 대표 제조업의 경쟁력도 중국업체들에게 줄줄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재계 ‘빅2’인 현대·기아자동차부터 경고등이 켜졌다. 사드 보복에 따른 판매 부진 등으로 현대차의 당기순이익은 2분기 연속 1조원을 밑돌았다. 기아차는 통상임금 소송 1차 판결에 따른 충당금 반영의 영향으로 무려 427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물론 삼성전자는 사상최대의 실적 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긴 하다. 정작 중요한 투자시계는 올해 초 이미 멈춰섰다. 총수 공백의 여파이다. 인텔이 자율주행차 핵심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모빌아이’를 인수하는 등 경쟁기업들은 속속 대형 인수합병(M&A)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샌드위치 위기’를 뚫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비우호적인 국내 기업 경영환경부터 발목을 잡는다. 현 정부가 추진중인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등 주요 개혁은 노력 의지마저 꺾는다. 기업들은 한 해 최소 70조~100조원이 넘는 비용이 추가로 들 것으로 추산한다.

재계는 개혁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근책 ‘규제 완화안’도 동시에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이다. 지난 7월 재계와 문재인 대통령의 호프 회동 이후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법 등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파업을 무기로 한 노조는 무리한 요구를 더한다.

그러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6일 현 경제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최근 경제 상황을 놓고 "예상보다 좋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면서도 “그러나 갈 길은 숨이 찰 정도로 멀다"고 했다. 박 회장은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한 전문가 제언'이라는 28쪽짜리 보고서를 함께 내밀었다. 보고서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장과 연명의 선택에서 연명의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특히 "규제 개혁이 국정 주요 과제로 오랫동안 추진됐지만, 혁신적인 기업 창업은 아직도 어렵다"고 진단했다.

기업인이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나 정치권의 눈치만 보면 또다른 적폐의 싹이 될 것이다. 박 회장의 지적이 혹여 재계 이익만을 위한 꼼수가 아니라면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제조업의 위기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보다 더 무섭다. 골든타임이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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