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칼럼] 홍종학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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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걸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11-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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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걸칼럼]

 

   [사진=윤영걸 초빙논설위원]



홍종학을 위한 변명

드디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서 오늘 문턱을 넘었습니다. 물론 야당이 예산국회를 앞두고 격렬히 반대하지만 ‘데스 노트’로 불리는 정의당까지 찬성 쪽으로 돌아선 것을 보면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국회 청문회와 여론의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 저 또한 충격이 작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와 정치인 대학교수로 활동하면서 남에게 미운털이 많이 박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은 약자 편이었지만 저 또한 기득권층과 다를 바 없어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준 것 같습니다.
막상 임명장을 받고 보니 가슴에 담아 놓았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도대체 증여가 뭐가 잘못인가요? 자유민주국가에서는 불법적인 사용이나 처분이 아니라면 누구도 재산권 행사를 제한당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전증여가 절세효과가 크다고 하지만 효과를 얻으려면 증여 후 10년 이상 생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증여받은 재산을 상속재산에 포함하여 상속세를 계산하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80대 중반인 장모님의 연세를 감안해주었으면 합니다.
장수시대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100세 노인이 70세 자식에게 상속을 하는 노노(老老)상속이 빈번해질 겁니다. 돈이 노인들 수중에서만 돌고 돌면 경기활성화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지요. 지난해 일본 쓰레기장에서 주웠다고 신고한 독거노인들의 재산이 무려 1900억 원이고 상속받을 사람이 없어 국고로 귀속된 금융자산만 4340억 원(2015년)에 달합니다. 세계 최장수국인 일본은 고령세대의 수중에서 잠자고 있는 돈이 젊은 세대로 이전되도록 하기 위해 자식에게 사전증여를 하거나 집을 사주면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상속을 놓고 우물쭈물하다가 큰 위기에 처한 롯데그룹을 보면 일찍부터 상속플랜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을 권장해야 할 일 아닐까요.
세대를 건너 손자에게 주는 세대생략 상속 증여 또한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이 아닙니다. 제가 포함되어 있는 715만 명의 베이비부머(1955년생~1963년생)가 고령세대로 편입되면서 60대 이상이 우리나라 전체 가계금융자산 중 50~60%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영국의 주택부 차관은 “부동산 급등과 세대 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녀가 아니라 손자에게 유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세대생략상속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세금보다 30% 할증하여 세금을 납부하니 큰 특혜라고 보기 곤란합니다.
일부에서는 “장모가 제 아내에게만 증여했다면 증여세를 더 많이 냈을 텐데 이를 사위와 외손녀에게까지 나누어서 증여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증여세를 적게 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쪼개기 증여가 불법이나 탈법이 아닌데 왜 비난받아야 하는 지 고개가 갸우뚱거려 집니다. 제 처가는 나름 합법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해서 재산을 주고받았다고 자부합니다. 세금도 꼬박 냈고요. 만일 저를 비난한다면 앞으로 모든 한국인들은 증여를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재산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가 사후 상속을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소송을 할 때 변호사와 상의해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처럼 세무사와 논의하고 절세하는 것이 뭐가 문제라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언론은 저를 보고 탈세와 절세의 경계선에 있다고 지적했는데 우리나라 세법은 그렇게 두루뭉수리하지 않습니다. 제 딸이 어머니인 아내에게 돈을 빌려 증여세를 납부한 것은 국세청이 조사를 통해 진실여부를 판단하면 될 일입니다. 설사 모녀 간 금전거래에 대해 명백하게 입증을 하지 못해 국세청이 증여세를 과세한다고 해서 그 자체를 고의적인 탈세행위로 봐서는 안 될 겁니다. 제도가 잘 못되었으면 세법을 바꾸면 될 일이지 납세자를 매도하는 것은 수긍할 수 없습니다.
물론 상속에 대한 한국의 여론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고 50%이고, 가산세를 합치면 65%로 명목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벌은 대부분 상속받은 2세 3세들이 꾸려나가고 있지요. 상속형 부자의 비율은 한국이 62.5%로 미국 25%, 중국 2.5%, 일본 30%에 비해 압도적입니다. 그만큼 편법상속과 증여가 판을 치고 있다는 방증이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는 고작 16억 원의 증여세를 낸 뒤 이를 기반으로 8조원대로 자신의 재산을 불려 삼성그룹 후계자가 되었으니까요. 부유층에서 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되면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커지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 저에 대한 비난여론의 상당부분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상대적 박탈감이 맞물려 커졌다고 봅니다.
제 소신에 대한 비난은 얼마든지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3수, 4수를 해서라도 서울대학에 가라고 한 말은 경솔했다는 점을 솔직히 반성합니다. 진보경제학자로서 재벌개혁론자로서 처신에 흠이 많았다는 점 또한 인정합니다.
그러나 재산이전에 대해서는 제대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인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 가업상속이라고 합니다. 증여세 상속세를 법대로 다 내고 나면 기업을 팔아야 할 정도입니다. 취임하면 중소기업 가업상속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습니다. 제 문제를 떠나 상속과 증여에 관해 좀 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논의를 시작해볼 작정입니다.
<이 글은 신임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의 생각을 추정해 쓴 가상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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