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국회 미래연구원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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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초빙 논설위원·정보사회학 박사
입력 2017-1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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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초빙 논설위원·정보사회학 박사]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드는 변화의 물결이 최근 수십년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이 주요 화두가 되고 있지만 혁명이 '4차'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계속 변화하다 보니 변화의 끝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인 호기심에서부터 기업 경영을 위한 전략, 국가의 중장기 정책 수립을 위해 변화가 완성되는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 한다. 그 미래의 모습을 미리 알고 싶어 많은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미래 예측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예언자적 발언을 한다. 앨빈 토플러처럼 분석적 연구를 통해 합리적 가설을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사회·역사적 맥락 없이 혁명적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많다.

미래에 대한 관심 자체는 호모 사피엔스의 기본 속성이다. 자연 유기체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생존을 위해 미래를 예측해야만 했다. 미래라는 시간을 인식하는 추상적 사고가 발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렵과 채집 위주의 원시 상태의 환경에서는 동물적 본능만 필요했지만, 정착하고 농경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미래 예측은 생존 그 자체가 됐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 때에는 미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늘 현재였고 늘 오늘이었다. 시간은 반복되는 일상이 전부였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렵에서 농경시대로 옮겨오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절실한 문제였다.

점성술이 발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천문학에 대비되는 미신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해와 달, 별들의 주기적 움직임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첨단과학이었다. 계절의 변화를 미리 알고 농사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했다. 점성술은 기하학과 측량학으로 연결되고 자연과학 발달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미래 예측은 초보적 자연 질서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자연 질서 외에 사회적 질서도 있고 문화, 종교, 제도, 기술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이 생겼다. 날이 갈수록 미래 예측은 더 중요해지지만 반대로 미래 예측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 특정 분야의 연구만으로는 예측하기 곤란해졌다.

분명한 것은 미래 예측은 학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전략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사회적 유기체 중 가장 구속력이 큰 국가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존 전략이다. 예측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잘못된 근거들에 기초한 예측이 난무할 경우, 그 피해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녕을 위해 미래 예측은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발표돼야 한다. 특정 정파와 상관없이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까지 미래 예측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는 미래 환경 변화 예측과 국가 중장기 전략 도출 등을 목적으로 하는 국회 소속 연구기관인 국회 미래연구원을 신설하는 국회미래연구원법 제정안을 의결했고 법사위와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 기관이 아니라 국회 차원의 미래 연구원을 추진한 배경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특성으로 국가 과제 연구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 공약 집행과 집권 여당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단기 예측에 치중하기 쉽다. 미래 예측은 국가의 장기적 생존을 위한 전략 수립에 활용돼야 한다. 특정 정파나 특정 학파에 의한 종속이 예상되는 순간 미래 예측은 예언자 역할에서 사이비 종교로 전락하게 된다.

그동안 소모적으로 보이는 정파 간 갈등으로 우리 사회는 많은 자원을 소비했다. 민주주의 자체가 갈등을 전제하고 있고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이라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정파 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합의 또는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점성술 시대와 달리 지금은 연구할 분야도 많고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장기간 투자와 연구를 필요로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지금의 시각으로 미래를 예단해서는 안 된다. 미래는 미래의 시각으로 재구성해야 된다. 특정 프로젝트 중심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장기 과제 중심의 연구가 필요하다.

국회 미래연구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미래와 인간, 제도와 기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장기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정부 부처나 국회 상임위로부터 독립된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선정된 주제에 대한 기본 방향이 결정되면 그 이후는 행정부 소속의 정부 정책 연구소로 넘기면 된다. 특정 주제나 문제 해결 중심의 미래 연구는 단기 성과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고 결국 정부 산하 연구소들과 소모적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처음 시작할 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별자리 한 번 잘못 이해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지만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준 높은 미래연구기관의 등장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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