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인간 존엄·행복 위해 자유·안전 균형된 형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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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지 기자
입력 2017-11-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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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형사정책이 국민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그 행복의 조건인 자유와 안전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전 형사정책연구원장)은 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FKI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아주경제 창간 10년 NEW 비전 선포식'에서 "현대사회의 형법정책이 자유와 안전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안전의 요청과 법치국가형법의 위기'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전통 법치국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자유였지만 현대사회로 넘어오며 안전의 가치가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권 및 기본권의 역사에서 주류를 형성해 온 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자유에 비해 안전은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자유에 수반되는 부수물로 취급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시민사회가 성숙하고 민주정치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자유에 바탕을 둔 시민생활의 질서가 확립되자, 국가를 대·내외적인 위협으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기관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변화된 가치의 원인을 후기 현대사회의 불확실성과 위기로 봤다. 그는 “원자력사고, 생태계위기 등 과학기술에 따른 새로운 위험뿐만 아니라 사회 변화에 따라 등장한 성(性) 또는 노동 갈등 및 초국적 위험관리 문제를 초래한 금융위기와 같은 글로벌 위험 등에 영향을 받고 있다”며 “지난 세기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에 대한 테러와 일본 동해안의 지진·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대표적인 거대위험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자유와 위험감수보다 안전과 행복을 더 추구하면서 나타나는 변화를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시민적 자유제한을 수반하는 경찰법과 형사법상의 효율적이고 포괄적인 사회통제수단들이 강화되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안전의 상징적 무게는 이제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와 같은 특정한 법 제도 내지 경찰예방활동의 강화를 정당화하는 논증도구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범죄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의 안전조치만 선호하다 보면 자유적 법치국가가 감시국가, 통제국가, 형벌국가로 변형되기 쉽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경고했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가 '비전토크1-법치 강연'을 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김 교수는 "안전이 전통형법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볼 수 있다”며 “공형벌에서 국가와 범죄자의 양자대립 구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국가가 범죄의 제1차적인 피해자를 자처함으로써 가해자와 현실적인 피해자 사이에 범죄로 인해 야기된 갈등과 충돌은 형사소송이나 형벌집행을 통해서도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사회생활 속에 누적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전통형법의 위기사항이며, 전통형법이 법질서의 공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국가와 범행자의 관계만 주목했던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범죄 등으로 생겨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면 그 갈등의 유발에 관여한 모든 주체, 다시 말해서 공동체, 행위자, 피해자 등의 참여와 그 갈등해소를 위한 국가공동체 내지 사회공동체의 다각적인 대화 노력이 필요한데 이는 근래에 이르러서야 부각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범죄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갈등’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더 나아가 적극적 일반예방, 특히 사회통합적 예방사상에 방점을 찍고 형법의 임무를 다시 숙고해 볼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형사제재도 단순한 법의 공적 권위의 선언이나 공표가 아니라 구체적인 피해자의 권리회복이라는 취지였다.

김 교수는 “형벌이 일반인의 법의식을 강화해 법적 안정을 확보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을 경우, 정당한 이익조절을 통해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의 이익에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러므로 국가형벌은 최소한 범죄 억지를 위해 형법규범의 효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형사소송법상 효과적인 범죄예방과 범인의 수배·검거를 위한 강제처분권이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안전에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전통적 법치국가에서의 형법의 한계와 새로운 범죄유형을 대처할 위험형법 사고의 주의점을 언급했다.

그는 “법치국가의 고전적 형법관을 고집하는 견해는 21세기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형법적 임무에 대해 맹목적이고 지나친 소극주의”라며 “전통적 법치국가형법이 미래의 안전과 관련된 새로운 범죄유형에 대처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위험형법 내지 안전형법의 등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위험형법·안전형법 사고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의 투쟁 산물인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인권보장을 경시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위험도가 높은 제한된 영역에서 사회안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선제적으로 방어망을 공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특정대상에 국한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울러 자유와 안전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대사회의 변동에 따른 형법정책은 결코 '자유냐 안전이냐', '더 많은 자유나 더 많은 안전이냐' 등과 같은 택일적 관점으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적어도 법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리고 형법도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면, 인간의 실존조건, 즉 인간의 발전조건과 보존조건에 필요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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