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정명(正名)과 '바담 풍(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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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전통문화연구회 회원
입력 2017-1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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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가 인사(人事) 기사와 관련해 해당 기자들에게 "그 논리라면 여러분도 쓰신 기사대로 살아야 되는 것이지 않나"라고 했다. 말인즉슨 지당하다. 언행일치가 미흡한 언론계 모순을 잘 지적한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강 뚜껑으로 물 떠 마신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은 왜일까.

사실 언론만큼 국민의 비난과 지탄을 받는 분야는 드물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일반인의 비난은 옮기기 힘들 정도로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특히 나 같은 퇴기(퇴직 기자) 앞에서는 의도적으로 대놓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정말 퇴기(퇴물 기생) 같은 기분일 때가 적지 않다.

그때마다 1960년대 주한미국원조사절단(USOM) 보고서 등 외국인의 여러 지적이 떠오른다. ‘한국은 뿌리부터 썩은 부패의 나라로 정부, 교회, 언론, 학교 등 모두가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부패한가?’라고 하며 그들은 경악했다. 다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절망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비난이요, 조롱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런 평가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모두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언론을 비난하는 이들의 뜻을 안다. 언론인은 누구보다도 높은 직업윤리와 도덕성을 갖춰야 하고, 넓고 깊은 역사의식과 사회인식을 지녀야 한다. 이 점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나무라는 것이다. 우리 언론의 이력을 보면 영예보다 오욕이 많았다.

언론인의 언행일치를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를 잘 알고 완곡하게 짚은 것이다. 일반인의 막무가내의 비난과 달리, 고위층 언급에는 근거가 있으므로 기대를 걸게 하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현 정권이 내세운 적폐 청산 차원에서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 정화는 권력의 올바른 언론관이 필수적이다.

제나라 임금 경공이 정치에 대해서 물으니,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논어> '자로편')"고 답했다. 명분과 직무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는 정명사상(正名思想)이다. 오늘날로 치면 정치는 정치답고, 언론은 언론답고, 종교는 종교다우며, 교육은 교육답도록 하라는 말이다. 적폐 청산은 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사실 적폐 청산은 이 정권만 주장하고 나선 게 아니다. ‘구악 일소’, ‘사회 정화’ 등 표현은 다르지만 정권마다 내걸었던 구호였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모두 혀 짧은 서당 훈장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바담 풍(風) 하더라도, 너는 바담 풍(바람 풍) 하라’ 했지만 본인이 ‘바람’을 발음하지 못하니 학동들도 끝내 ‘바담’하고 말았다. 적폐 청산은 이런 바담 풍의 악순환을 끊는 데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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