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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연습演習과 연주演奏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입력 : 2017-11-06 05:00수정 : 2018-01-25 08:33

[사진=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순간(瞬間)
‘후회 없는 삶’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이 최선을 다해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웠던 순간을 기억해보자. 그 순간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 안의 모든 존재들을 지탱하지만,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바로 시간(時間)이다. 흘러간 시간은 신기하다. 우주가 탄생했다는 137억년 전이나 내가 이 글을 읽기 시작한 5분 전이나, 현재를 사는 나에게 그 길이가 같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50억년 후엔 자전을 멈춘다고 한다. 만일 어떤 생명이 살아 있다면, 그 생명은 지구의 삶도 한 순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과거나 미래의 시간은 언제나 눈 깜짝할 순간일 뿐이다. 지금 이 시간도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미래로 흘러가 버린다. 미래는 한자 미래(未來)가 의미하는 것처럼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것’이 아니다. ‘미래’라는 영어단어 future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존재하다; 되다’라는 동사 ‘에세’(esse)의 미래 능동 분사형이다. '미래'란 ‘내가 이 순간에 몰입하여 최선을 다 할 때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오는 신의 선물’이다.
 
내가 이 순간 나의 최선을 발휘해 미래를 앞당겨 살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없지만,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인생의 마지막 문이며 시간의 종착점인 ‘죽음’이다. 죽음은 오히려 살아 있는 지금을 가치 있게 만드는 마술이다. 그리스 신화인 시시포스(Sisypus) 신화는 죽음을 거부하는 한 영웅 시시포스에 관한 이야기다.

시시포스는 신들이 만든 우주의 질서 중 ‘죽음’에 대항한다. 그는 오히려 죽음을 관장하는 신을 감금해 인간이 더 이상 죽을 필요가 없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의 신이 탈출한다. 신들은 우주의 질서를 교란한 시시포스에게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형벌을 내린다. 시간과 죽음을 거부한 시시포스가 오히려 ‘영원’이란 선물을 받은 셈이다. 시시포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까지 굴려 올려야 한다. 그가 바위를 정상 근처로 올리면 힘이 빠져, 바위는 산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면 그는 산 아래서 시작해야 한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에서 인간이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죽음이 성큼 다가온다고 말한다. 인간은 아래로 떨어진 바위를 다시 찾으러 산 아래로 내려갈 만큼 비극적으로 어리석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할 것이라는 자신의 꿈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연습(演習)
자유(自由)란 무엇인가? 자유는 외부의 어떤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일한 것을 찾아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영어단어 free의 본래 의미는 '사랑에 빠진 상태'다. 우리는 어떻게 그 자유로운 상태로 진입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스스로에게 삶의 존재이유가 되는 상태가 바로 자유다.

자신이 사랑에 빠질 만큼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과정이 있다. 그것을 ‘연습’(演習)이라고 부른다. 연습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다. 그가 '시학'에서 인간의 예술행위에 대해 내린 정의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는 오늘날 연극이나 영화의 원조인 그리스 비극을 고대 그리스어로 ‘미메시스 프락세오스’(mimesis praxeos), 즉 ‘연습에 대한 흉내’라고 정의한다. ‘연습’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프락시스’(praxis)와 영어의 ‘프랙티스’(practice)는 단순한 행위, 사건 혹은 육체적인 활동이다. 그러나 ‘프락시스’는 이런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의도적이며 섬세한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이런 마음가짐을 고대 그리스어로 ‘에토스’(ethos)라고 부른다. 연습이란 에토스의 자유롭고 자연스런 결과다. 인간이 하는 행위인 ‘프락시스’가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있다. 그가 다른 사람의 기대와 기준에 영향을 받거나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노래를 부른 적이 없고, 부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은 혼돈에 빠진다. 혼돈은 자신만의 에토스를 찾지 못한 상태다. 최근 자유로운 프락시스를 찬양한 감동적인 영화를 보았다. 미국 영화배우 에단 호크가 메가폰을 잡은 다큐멘터리 형식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A Pianist Seymour's New York Sonnets)다.
 

세이모어 번스타인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에단 호크는 소위 성공한 배우다. 그에게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다. 어느 날 호크는 고민했다. “나는 왜 사는가?” 그는 영화 시작 부분에서 덤덤하게 말한다. “저는 최근 제가 왜 배우로 사는지 그 이유를 알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배우로서의 유명함이 더 이상 신나지 않다. 그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몇 년 전 저녁식사에서 우연히 만난 한 피아노 선생님의 삶에서 어렴풋이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이 영화를 '감독'으로서 만들게 됐다. 이 영화는 에단 호크의 삶에 대한 선언이다.
 
그의 멘토 이름은 87세인 세이모어 번스타인이다.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커리어는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시작했다. 그가 23세였던 1950년 1월 군에 입대한 후, 바로 한국으로 파병됐다. 그 이듬해 전역할 때까지 주한 미8군에 소속돼 6·25전쟁의 참화를 목격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만트라를 찾았다. 그는 서울, 대구, 부산, 인천, 거제도 등을 돌며 100여 차례나 연주했다. 그는 전쟁 중 잠시 시간을 내, 전우들과 한국인들 앞에서 클래식 피아노 작품들을 연주했다. 그는 음악이 인간을 정화하고 안락함을 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남다른 철학이 에토스가 되어, 서서히 형성되지 않았을까? 번스타인은 그 후 1969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화려하게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다.
 
그가 50세 되던 해인 1977년 그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작품인 바가텔레스Bagatelles 작품 126번을 연주했다. 바가텔레스란 경쾌한 멜로디를 지녀, 작곡자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짧은 곡을 의미한다. 이 곡의 마지막은 프레스토로 빨리 연주되다 갑자기 멈춘다. 세이모어는 침묵한다. 그는 그 순간을 통해 영원이란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이 침묵을 통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우주적인 비움인 공(空)을 연주한 것이다. 그는 세밀하게 모든 것을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순간에 극적으로 몰입하는 순간주의자다. 그는 이 연주자로서의 삶을 마감한다. 세이모어는 한순간 명예와 돈을 약속하는 화려한 무대조명을 떠나 침묵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그는 사적으로 가르치는 일과 자기완성의 길에 들어선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돈과 명성이 종교가 된 자본주의 본산지 뉴욕 맨해튼에서 수도승처럼 지낸다. 그는 소파(침대로도 접히는)가 놓여 있는 원룸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다른 노인들과 풀밭에서 잔디 볼링 경기를 할 선수처럼 항상 수수하게 옷을 입는다. 그러나 피아노 레슨할 때는 엄격하고 정확하다. 그의 피아노 수업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를 최고 스승으로 기억한다. 피아노 연주법과 곡 해석에 있어서 ‘자신만의 이론’이 있으며, 그에게 음악과 인생은 하나다. 그는 종종 예술이 지향하는 삶과 사회가 요구하는 명성이 불협화음이라고 말한다. 이 무자비한 간극이 너무 커서 연주자들은 쉽게 정신병에 걸린다.
 
브람스 소품집 118번 두 번째 곡 인터메조 연주(演奏)
세이모어의 이런 삶이 호크를 자극한다. 호크는 고백한다. “제가 추구하는 삶은 인생을 더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입니다.” 세이모어의 피아노 제자들 중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서 건축 비평가로 일하는 마이클 키멜만이 있다. 세이모어와 키멜만은 한 카페에 과거를 회상하며 담소한다. 그는 자기스승이 연주를 그만 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묻는다. “선생님처럼 연주가로 뛰어난 사람에겐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을 초월하는 사회적인 의무가 있지 않나요?” 세이모어는 날카롭게 대답한다. “마이클, 자네가 무슨 말하지 알겠는데...”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한다. “너 아직 어리구나!” 완벽한 예술을 만드는 것은 남들의 인정과 갈채가 아니라 스스로 완벽하고자 하는 투쟁이며 연습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세이모어의 인생에 대한 심오한 반추가 아니라 그의 가르침, 피아노 연습 그리고 자신의 귀를 훈련시키는 그의 연습 모습이다. 그는 피아노라는 도구를 통해 침묵과 공허로 가득한 자신만의 심연에서 거룩한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이모어는 35년 만의 연주를 결정한다. 이 연주를 위해 뉴욕 57번가에 위치한 스타인웨이 건물 지하로 내려가 진열된 피아노들의 건반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두들긴다. 그는 건반이 바르게 눌러졌을 때 울리는 특별하면서도 흉내낼 수 없는 숭고한 소리를 내는 한 대의 피아노를 찾고 있었다. 그는 스타인웨이 홀 로툰다에서 죽음을 앞둔 브람스가 사랑하는 여인 슈만 클라라에게 바친 피아노 소품집 118번 두 번째 곡 인터메조를 연주곡으로 택한다.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눈을 감고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자신의 심연으로 들어간다. 가끔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연주장소가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문으로 피아노, 세이모어, 관객들을 예의 없이 뻔히 본다. 영화를 보는 나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다.
 
호크는 세이모어 연주에서 카메라를 세이모어 집으로 옮겨 그가 피아노 레슨하는 모습을 비춘다. 그 장면에 세이모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음악은 문제가 많은 세상에 조화롭게 말합니다. 음악은 외로움과 불만을 쫒아내고 생각과 감정의 심오한 휴식입니다. 그곳에서 진리가 뿌리를 내립니다. 음악에는 대충이 없습니다. 변명, 핑계, 조잡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악은 완벽을 지향하는 우리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웁니다.” 세이모어의 목소리가 끝나자 화면은 다시 스타인웨이 로툰다로 옮겨 그의 브람스 연주장면을 비춘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자신의 음악에 심취해 있다.
 
세이모어는 지난 6월 6·25 전쟁 참전용사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가 말했다. “최전방에서 연주할 때, 업라이트 피아노는 언덕 밑에 놓입니다. 군인들은 언덕에 편히 앉고, 포탄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공군이 비행기를 띄워 우리 연주를 지켰습니다.” 세이모어는 그때부터 몰입을 연습했나 보다.

내가 몰입해 연습할 나의 임무는 무엇인가? 나는 오늘 어떤 선율을 연주할까? 여기 세이모어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감동적인 피아노곡을 잠시 들으면서 한 주를 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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