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잘못 배운 의리(義理)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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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함원 전통문화연구회 상임이사
입력 2017-10-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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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함원 전통문화연구회 상임이사

춘추시대 공자(孔子)는 인(仁)을 설파했고 전국시대를 산 맹자(孟子)는 인(仁)에 더해 의(義)를 강조했다. 인만 가지고는 전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전국시대의 참혹한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특히 그는 '군신(君臣)은 이의합자(以義合者)'라고 규정했다. '군신 간의 관계는 의리로 합쳐진(맺어진) 것'이라는 뜻으로, 맹자는 군주가 천하 사람 누구나 옳다고 여기는 올바른 이치(義理)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면 그 밑에서 신하 노릇을 해야 하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떠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신하의 처신, 진퇴(進退, 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남)는 오로지 군주가 의로우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옛사람들은 부자(父子) 간은 친애(親愛)로 맺어진 관계이므로 의를 따지는 것보다 더 앞서는 문제라고 규정했다). 

군주가 의로운 정치를 펼치는데도 신하가 군주의 신임을 저버리면(背, 등 배·저버릴 배) 그것은 배신(背信)이다. '의리론'은 300년 전 조선 영·정조 시대에 극성했고 조정은 이후 둘, 넷으로 찢어져 분열했다.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가 손자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누구든 네 아비(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숭(뒤에 칭호를 높임)한다면 이 나라 종사의 역적이다. 이것은 너와 나의 의리다"고 명하자, 정조는 "명심하겠사옵니다"고 답했다 한다(그러나 정조는 즉위한 뒤 일성으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며 기득권 세력인 노론을 향해 선포하고 사도세자를 추존했으며 수원 화성 묘역을 조성하는 등 아버지의 정치적 복권에 나섰음은 우리가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물론 이 같은 의리론은 맹자의 의리가 잘못 차용되고 변질된 것이다. 이처럼 잘못 배운 의리와 배신은 그 후 조폭 사회에서나 쓰이다가 1~2년 전 느닷없이 박근혜 전대통령이 청와대 회의 자리에서 '배신'이란 단어를 들고 나오고, 요즘에는 친박세력이 자기 당 대표를 향해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바람에 다시 듣게 됐다.

'논어'는 짧은 잠언 형식의 경구가 많은데 뜻이 좋고 어렵지 않아 많은 사람이 익히 아는 구절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니라(자로편)'이다. 우리 국회의원들도 아마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확한 의미는 깊이 모르더라도 말이다. 군자는 여러 사람과 화합하고 조화롭게 지내지만, 소인은 같은 편은 무조건 감싸주고 부화뇌동한다. 여기에서 군자와 소인이 갈린다는 말씀이다.

왜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할까? "군자는 상의(尙義, 의를 숭상)하기 때문에 무조건 편들지 않는 부동이 있고, 소인은 상리(尙利, 이로움을 숭상)하기 때문에 남들과 조화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의(義)와 리(利) 때문에 군자와 소인이 갈리는데, 이 둘은 무슨 속성을 지니는가?

'의(義)는 유가부(有可否)라', 즉 의리는 옳은 것(可)이냐 그른 것(否)이냐를 따지며 '리(利)는 유쟁탈(有爭奪)이라', 즉 이로움을 앞에 두고는 서로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싸움(爭奪)이 있을 뿐이라고 옛 사람은 풀이했다. 물론 전통적인 유가 시대의 말을 현대에 그대로 실천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 배운 의리를 조폭처럼 쓰면서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 기득권 유지의 '이로움'에만 매달려 싸우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은 극히 비정상으로 보이는 분, 오직 한 분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분을 눈 딱 감고 지지했던,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만을 향해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에서 개처럼 송곳니를 드러내고 뒹굴며 서로 물고 뜯는 싸움)를 하고 있다.

이 싸움이 올 가을 야구(코리안 시리즈)보다 더 오래갈 게 분명해 더욱 속이 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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