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오죽하면 '은행 공화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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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원 기자
입력 2017-10-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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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금융시장을 '은행 공화국'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예요." 얼마 전 만난 한 펀드매니저가 털어놓은 말이다. 은행을 싫어하거나 비하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업권이 지나치게 홀대 받고 있다는 섭섭함 때문이다. 

얼마 전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자산운용사 사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산운용사들이 고객들의 수익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배만 불렸다"고 지적했다.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에 만족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다만, 펀드를 팔면서 자산운용사 몸집만 키웠다는 지적에 대해선 업계 관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펀드 판매로 돈을 번 곳이 자산운용사 만은 아니다. 오히려 펀드를 설정한 자산운용사보다 투자자들에게 직접 펀드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증권사, 은행 등 판매사들이 판매 수수료를 더 많이 받는다. 

금융투자협회 종합통계시스템을 보면, 11년 전인 2006년 말 기준으로 전체 펀드 보수 중 운용사는 0.407%를 받았다. 반면 판매사는 운용사의 두 배인 0.836%를 챙겼다.

2010년 말에는 운용사와 판매사의 보수 비중이 각각 0.471%와 0.673%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0.270%와 0.354%로 격차가 많이 좁혀졌지만, 여전히 판매사가 더 많은 보수를 챙긴다.

특히 은행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대중들이 가장 펀하게 찾을 수 있고, 안전하다 생각하는 금융사가 은행이다. 그런 은행이 특정 펀드를 외면한다면, 그 펀드는 성장하기 어렵다.

한 자산운용사가 2008년 펀드를 직접 판매한 적도 있었다. 상당히 파격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회사는 2013년 말부터 펀드 직접판매를 접고, 은행을 통한 판매를 시작했다. 은행 도움 없이 펀드를 성장시키는 데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종종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을 쓴다.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려운 상황을 비유한 말이다. 올해에도 금융투자업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이 화제가 됐다. 

연초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올해를 국내 증권업계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의 신탁업법 제정, 은행에 투자일임계약형 종합자산관리계좌(ISA) 허용 등을 두고 금융투자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누가 봐도 '밥그릇 싸움'이 맞는다. 그러나 내 밥그릇을 지키려는 노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애당초 경쟁력이 약한 곳에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주기도 한다. 

골목상권을 살리기기 위해 대형마트 강제 휴일제가 도입됐다. 국내 영화가 외국 영화에 잠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스크린쿼터제도 있다. 상대적인 약자를 제도적으로 도와주고, 조금이라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어서다. 

금융투자업계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새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미 조성된 환경을 엉뚱한 방향으로 바꾸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은행 중심으로 제도가 바뀌는 분위기다. 

그리고 정작 투자자 수익에 대한 책임은 금융투자업계에 집중되다 보니 섭섭함과 불만이 쏟아진다. 올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자본시장 홀대론'이란 말도 나왔다. 

정부가 딱히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한 적도 없고, 실질적으로 제도를 만들어 추진할 금융위원장 선임도 지나치게 늦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정부가 자본시장에 관심 자체가 없어 보인다는 의심을 샀었다. 

올해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줄줄이 한국시장에서 영업을 접고 있다는 점도 허투루 봐선 안 된다.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시장을 잘못 판단하고 자산 운용에 서툴렀던 것도 있었겠지만, 혜택은 적고 규제만 많은 것도 원인이다. 

금융투자업계의 괜한 투정으로만 봐선 안 된다.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은행 공화국',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이 왜 자꾸 나오는지 귀 기울이고 고민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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