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24시] 한국영화 ‘택시운전사’ 흥행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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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박세준 통신원
입력 2017-10-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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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개봉 2주차에 박스오피스 3위

  • ‘우산혁명’ 되살리는 불씨될지 관심

[박세준 홍콩통신원]

홍콩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택시운전사’가 예상 밖의 흥행을 이어 나가고 있다.

‘권력을 거스른 운전사(逆權司機)’라는 이름으로 개봉된 ‘택시운전사’는 개봉 2주차인 지난달 25일부터 1일까지 230만 홍콩달러(약 3억3490만원)의 흥행수익을 거둬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

이 같은 흥행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것으로, 영화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고 있다.

특히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택시운전사’가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중국 본토의 모든 웹사이트에서 ‘허셰(和谐)’되면서 홍콩 내에서는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허셰’는 본래 ‘조화롭다’는 뜻이나, 현재 인터넷에서는 ‘검열당해 삭제되다’는 의미로 쓰인다.

또한 이 영화는 각종 중국 영화 평론 사이트에서 높은 평점을 유지했으나 당국의 ‘허셰’ 조치에 의해 모든 정보가 삭제됐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판 SNS인 웨이보(微博)에서는 영화 이름인 ‘택시운전사(出租車司機)’라는 단어로 태그를 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와는 반대로 홍콩의 언론과 SNS에서는 이 영화를 통해 톈안먼 사태와 ‘우산혁명’ 시위 3주기를 회고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홍콩인들에게 톈안먼 사태와 우산혁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아픈 기억의 연장선상 위에 놓여 있다.

1989년 5월 톈안먼 사태 발생 직전 홍콩을 비롯한 전 세계 화교권에서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지지하는 ’전 세계 중화인 대행진(全球華人大遊行)’이 일어났다. 당시 홍콩에서는 인구의 4분의1에 가까운 150만명의 시민이 행진에 참여해 홍콩 역사상 최대의 민주화 시위로 기록됐다.

그러나 시위에 참가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중국 당국의 무자비한 유혈 진압 소식이었다. 살아남은 많은 민주화 투사들이 홍콩으로 이주했으며, 홍콩에서는 아직까지도 매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를 추모하는 집회를 통해 당시 학생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홍콩 우산혁명은 2014년 9월 28일 ‘평화적 센트럴 점령’으로부터 시작됐다. 우산혁명은 그해 12월 15일까지 총 120만명이 참가해 홍콩 반환 이후 최대, 홍콩 역사상 두 번째로 큰 민주화 시위로 기록됐다.

하지만 58일 동안 지속된 우산혁명 역시 행정장관 직선제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공권력에 의해 제압됐다.

우산혁명 이후 정치에 대한 냉소와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는 홍콩 사회에서 ‘택시운전사’는 꺼져가는 민주화 역량의 불씨에 미약하게나마 숨을 불어 넣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영화의 배경이 된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한국의 민주운동 역사와 지난해의 ‘촛불혁명’ 등이 재조명되면서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사회 모델과 자유로운 문화산업 환경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홍콩 유력 일간지 중 하나인 빈과(蘋菓)일보는 최근 영화의 배경이 된 광주민주화운동과 우산혁명을 비교 분석한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홍콩명보(明報)는 인민해방군을 소재로 해 중국 본토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애국주의 영화 ‘잔랑(戰狼)2’가 ‘택시운전사’와 함께 오스카 영화상 외국어영화 부문에 출품된 사실을 언급했다.

‘문화의 기억은 힘이 세다’는 말이 있다. 30년 전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맞닥뜨린 소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택시운전사’가 홍콩인들에게 던진 잔잔한 파문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홍콩의 민주화운동에 어떠한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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