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메모리 매각]‘구조조정 개입’ 일본 정부, 교통정리 실패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채명석 기자
입력 2017-10-04 16:4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도시바 메모리의 교훈 - (4)

지난 3월 30일 도시바 주주들이 일본 지바현 지바시 마쿠하리메세에서 열린 도시바 임시주주총회장을 찾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업계는 나루케 야스오 도시바 반도체 담당마저 침묵했다면 도시바는 실리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굴욕까지 감내하며 알짜사업인 메모리 사업을 미국 웨스턴 디지털(WD)측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쓰니카와 사토시 사장의 ‘지나친 신중함’으로 인해 매각 주체이면서도 인수 참여자들을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사토시 사장의 머뭇거림에는 그동안 산업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교통정리를 해줬던 일본 정부가 한 발 뒤로 물러서 관망하는 자세로 일관한 것이 또 다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토요타와 소니 등의 기업에서 오너 경영체제가 부활하고 있지만, 도시바를 비롯한 다수의 일본 대기업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부의 재분배’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리보전과 주주들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단기간 실적 개선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결정을 하지 않고, 모험을 기피한다. 아래 직원들이 올리는 의견을 평가하는 중간 관리계층만 커져 의사소통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관리계층이 비대화 되면서 조직 전체에 걸쳐 관료화가 이뤄진다.

더 나아가 파벌을 형성해 파벌의 수장을 따라 임직원들이 줄을 서고, 실패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기도 한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우수하다고 하지만 잘못 운영될 경우 멀쩡한 회사를 죽은 조직으로 만들기도 한다. 도시바의 분식회계 사태는 이러한 전문경영인 체제의 폐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통상 분쟁 우려로 적극 개입 못해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은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기업 경영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 추진된 일본의 전자·디스플레이·정보통신기술(IT), 조선·해운 등 주력산업 구조조정은 일본 산업을 총지휘하는 경제산업성의 주도로 이뤄졌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자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조정을 두려워하는 일본 기업들은 정부의 지시를 따르면서 이를 추진하는데,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기업인들이 자신의 책임을 정부에 떠넘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시바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직간접적으로 채권단 등을 통해 개입했다. 도시바는 회계부정 발견 이후 최근 2년간 미룬 실적 발표만 5차례에 달하며,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 분기 실적 발표를 연기했다. 여기에 6월말이 기한이었던 2016 회계연도 결산 유가증권 보고서를 8월말로 연기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원칙대로 진행했다면 도시바는 상장 폐지에 이어 최악의 경우 파산절차로 돌입해야 했다. 시간을 번 도시바는 8월 10일 ‘한정적 적정’이라는 회계법인의 의견을 담은 유가증권 보고서를 제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는 사실상 정부가 부실기업 도시바에게 살 길을 마련해준 불법 지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가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부 매각 결정 발표 후에는 목소리를 줄였다. 경제산업성이나 일본 국부펀드인 산업혁신기구, 일본정책투자은행 등도 특별히 누구에게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8월경에 이르러 WD측에 매각을 제안했지만, 공개적으로 이를 밝힌 것은 아니었다.

도시바 메모리 매각 초반 자국 기업들의 참여가 전무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과 중국, 한국 등 이해관계가 확실한 국가의 기업들이 뛰어들어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기는 어려웠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 WD의 반발에 일본 정부는 도시바에게 화해하라는 지시만 내렸을 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아베 신조 총리가 가장 먼저 미국으로 가서 양국 정상회담을 갖는 등 미국과의 긍정적인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로서는 도시바 메모리 이슈가 이러한 흐름을 깰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이 주도하는 중국측 컨소시엄도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산업 개입이 과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일본 정부로서는 도시바 문제가 국가간 통상갈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정을 할 수 없었다.

◆알짜개입 매각 경험 부족, 참여자간 다툼 바라볼 뿐
일본 정부나 산업계가 실적을 내는 알짜기업을 매각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도 매각이 지연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그동안의 구조조정은 경쟁력이 한계 상황에 몰려 실적 악화로 도태 직전에 몰린 기업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이들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불용 자산은 매각 처분하고,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별 동일 사업부문을 독립 법인으로 통합하는 방식을 주로 활용해 왔다.

반면 도시바 메모리는 자체적으로 생존이 가능했지만, 모그룹의 부실로 어쩔 수 없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놓았고, 예상치도 못한 다수의 글로벌 IT기업들의 참여, 회사를 차지하기 위한 물어뜯기식 이전투구가 벌어지자, 일본 정부도 이 판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도시바 메모리 매각에서는 도시바나 일본 정부 모두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