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한산성' 박해일의 낯선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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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7-09-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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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을 연기한 배우 박해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유약하고, 우유부단하면서도 예민한 얼굴을 보여주세요.”

황동혁 감독이 배우 박해일(40)에 주문한 인조의 모습이었다. 첫사랑(영화 ‘국화꽃 향기’)부터, 몰락한 지식인(영화 ‘괴물’, ‘고령화 가족’), 미스터리한 남자(영화 ‘짐승의 끝’)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면면을 보여주었는데도 황 감독이 주문한 인조의 얼굴은 박해일에게서 보지 못한 낯선 얼굴이었다.

그런 의미로 내달 3일 개봉하는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박해일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속에서 박해일은 삶과 죽음의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왕, 인조 역을 맡았다. 처음으로 곤룡포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유약하고 우유부단하며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그는 기존 연기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선보였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박해일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을 연기한 배우 박해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영화를 처음 접하고 든 ‘첫 번째’ 생각이 궁금하다
- 시나리오만큼 나왔다는 거였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결과물의 톤을 예상하게 되는데 현장에서 촬영한 기억들이 그 결과물로 충분히 잘 나온 것 같았다.

황동혁 감독이 삼고초려 끝에 겨우 캐스팅했다고 하던데
- 제가 뭐라고…. 하하하. 출연을 거절했던 것이 계속 회자해 죄송할 정도다. 사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재밌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원작을 충실히 따르면서 감독님만의 색깔을 잘 표현했다고 여겼는데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 출연을 고사했다. 감독님이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셔서 꽤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해 뜰 때까지 술을 마신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 ‘남한산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감독이기 전에 황동혁이라는 사람을 보여주신 것 같다. 이 작품을 왜 할 것이고, 왜 제가 필요한지 충분히 말씀해주셨고 헤어진 뒤 먼저 연락을 드렸다. 다른 선배님들이 출연이 결정돼있어 ‘빨리 준비하겠다’고 하고 서둘러 시작하게 됐다.

첫 왕 역(役)이라는 게 화제였다. 많은 의미를 둘 수 있었는데?
- 그렇게 되어버렸다. 크게 의미를 두고 선택한 건 아니었는데. 하하하. 저는 이 작품이 (첫 왕 역할을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연기한 작품 중에서도 ‘남한산성’ 속 인조라는 캐릭터는 낯선 지점이 있다. 그게 왕이 아니더라도 캐릭터 적으로도 그렇다. 이 작품 안에서 인물이 주는 여러 가지 기운과 포지션이 있는데 인조에게 주어진 것은 관객의 입장이었다. 꽤 괜찮은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최명길과 김상헌 안에 끼어서 삼각 구도를 끌어낸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을 연기한 배우 박해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분명 낯선 지점이 있다. 그동안 연기해온 캐릭터들과 결이 달랐다. 인조를 보면서 ‘박해일에게 저런 얼굴이 있었나?’ 싶었다.
- 낯선 지점이 포함돼있다. 관객들로 하여금 ‘나쁘지 않았네’하고 좋게 받아들여진다면 제가 (연기를) 해내는 것에 있어서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험대 위에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조라는 인물, 즉 연기 톤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을 텐데
- 관객들이 인조라는 인물에 대해 명확한 평가를 가지고 있지 않나. 그걸 얼마나 고려해야 할까? 감독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항상 인조의 곁을 지키는 신념 강한 신하들의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그런 부분도 충분히 흡수하면서도 제 것을 보여줘야 하고…. 스펀지처럼 흡수했다가 번뇌하고 혼란스러워하되 둘에게도 영향을 끼쳐야 하는 화학작용을 어떤 톤으로 보여줘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여타 작품들에서 그려진 인조와 달랐던 것도 그런 지점 때문일까?
- 처음부터 인조를 무능한 왕이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영화는 달라졌을 거다. 두 신하에게 끼치는 영향도 달랐을 거고, 전체적 톤도 달라졌을 거다. 인조가 가진 하나의 기둥을 잡고 골조를 세우는데 왕의 무게를 잡기에는 부담이 가는 인물이었다. 역사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부분들에 숨을 불어넣으면서 한 인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과오만 보여지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까지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박해일[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려운 캐릭터였다. 이병헌조차 ‘괜찮겠냐’고 걱정했던 캐릭터 아니었나
- 촬영을 준비할 때 선배들과 영화사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이병헌 선배님과 ‘한번 만나고 싶었다. 반갑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 고생 좀 할 거다’라고 하시더라. 역할에 대해 이야길 하신 것 같다. 덕담 아닌 덕담이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고생길이었다. 관객들이 인조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가졌지만, 마냥 비호감으로 그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 그래서 톤 잡는 게 중요했던 거다. 시작이 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우리가 결말을 안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모두 알고 있는 역사의 지점을 보여주는 건데. 우리 영화만의 방식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어떤 톤이 좋을까 생각했던 거다. 트라우마, 자존심, 예민함 등 인조만이 가진 지점들을 방대하게 보여줄 수 없어서 삼전도 신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같이 담기길 바랐다. 그건 관객의 평가겠지만…. 복합적 감정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쌓이지 않으면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배우 조합 역시 화제가 됐다. 한 스크린에서 보기 힘든 배우들이지 않나
- 배우들이 한 작품에서 만난 적이 없다고 하더라. 때문에 극 초반 낯설었던 지점이 있었을 거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기도 했었고. 부딪치면서도 어떤 기운을 받을지에 대해서도 궁금했었고. 보는 분들도 그런 지점이 재밌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배우들끼리의 호흡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위치(혹은 역할)를 맡았기 때문에 보고 느끼는 점들이 많아서 좋았다.

두 충신, 최명길과 김상헌을 연기한 이병헌과 김윤석이 너무도 다른 연기 스타일을 가졌는데
- 이병헌, 김윤석 선배를 비롯해 대학로 베테랑 선배들이 포진돼 있다. 뿜어내는 (연기) 방식이 다 차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같았던 건 텍스트가 원하는 모습, 오케이 사인을 낼 수 있는 온도였다. 저는 선배님들의 개성의 차이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인조 역할의 특권이지 않을까 싶다. 선배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챙겨갈 수 있는 것들도 많았고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을 연기한 배우 박해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챙겨갈 수 있었던 점들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 무의식적인 거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마 제가 다음 캐릭터를 맡는다면 보고, 들은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채워나가게 될 거다. 선배란 앞서나가고 길 닦아주시는 분이지 않나. 그들의 자취를 본다는 건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정극 중의 정극이었다. 묵직한 사극이라는 점은 배우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다
- 다시 만날 수 없는 배우들이 모인 이유 아니겠나. 이 많은 예산을 가지고 가장 가슴 아프고 감추고 싶은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다니.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 시점에서 만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이 많은 배우가 동의하고 참여하기도 했고.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가 굉장히 중요할 수밖에 없고 또 그 분들의 느낌이 굉장히 궁금하다. 얘기를 많이 들어보고 싶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남한산성’은 배우 박해일에게도 전환점이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 또 다른 작품 세계로 가는 좋은 지점일 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실지가 더 궁금한 거고.

관객들이 ‘남한산성’을 보고 어떤 의견을 나누었으면 좋겠나?
- 어떤 대화라도 나눠줬으면 좋겠다. 어떤 의견도 좋다. 그런 여지가 많은 영화고 또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다.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면 정말 만족스러울 것 같다. 큰 만족감이 든다고 할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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