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는 웁니다…취준생 두 번 죽이는 채용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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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이 기자
입력 2017-09-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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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무방해죄 해당 실형 거의 없고 집행유예·벌금형에 그쳐

  • 최악 실업난에 박탈감 더 커져…일벌백계로 공정성 높여야

금융감독원, KAI, 강원랜드,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청년들이 선망하는 기업에서 연이어 채용비리가 불거졌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채용비리를 엄벌해 채용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채용비리를 주도하거나 그에 가담한 경우 형법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받는다.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채용을 전제로 금품 등의 대가를 주고받은 경우에는 배임수증죄(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이익을 취득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가 더해진다.

최근 법원은 금융감독원 변호사 채용비리 사건의 피고인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15일 서울남부지법은 채용 평가 기준을 수차례 변경해 전 국회의원의 아들을 사내 변호사로 채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두 임원에게 각각 징역 1년, 10개월형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사회적 지위가 확실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면서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을 유보했다. 이 경우 이들은 항소심 결과가 나올때까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사건마다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업무방해죄는 실형을 잘 받지 않는다"면서도 "이 사건은 일반적인 업무방해와는 동일선상에서 볼 수 없는 경우"라고 말했다.

채용비리 사건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 부산지법은 자녀를 경리부 직원으로 채용하기 위해 면접 문제와 모범 답안을 유출한 한 대형병원 행정부원장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범행에 가담한 병원 관계자에게도 각각 벌금 1000만원, 500만원을 선고했다.

또 2010년에는 한 지역 수협 채용 과정에서 입사시험 점수가 낮은 어촌계장의 자녀들을 채용하도록 지시한 임원 B씨가 벌금 1000만원형을 받았다. 두 사건 모두에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동종 범죄 전력이 없고, 범행을 반성한다는 점 등을 양형 참작 이유로 들었다.

이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란 회의적 시각도 있다. 최경환 의원의 중소기업진흥공단 인턴 채용 비리를 고발한 청년참여연대 관계자는 "사회생활의 출발점부터 흙수저와 금수저가 나뉘는 불합리한 사례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청년들이 큰 박탈감이나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채용문제만 놓고 봤을 땐 표준이력서 등 몇가지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면서 "채용비리를 단순히 비리를 저지른 개인의 문제로 보지 말고, 공정한 룰과 평등한 사회에 대해 종합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채용비리와 관련한 객관적 형벌 기준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법조계의 다른 전문가는 "업무방해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채용비리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크지만, 업무방해 외 다른 죄에는 도저히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형량이 낮아 일반인들이 보기엔 다소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무턱대고 형량을 높일 수는 없다. 판례를 통해서라도 죄 성립 요건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비리를 근절하려는 입법 시도도 있었다. 지난해 8월 하태경 의원은 이른바 '일자리 김영란법'을 대표발의했다. 채용에 관한 부당한 청탁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논의·심사 끝에 폐기됐다. 법안이 '부당한 청탁'에 해당하는 금지 행위 등을 명확하게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서 공직자 등의 채용 관련 위법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으므로 별도의 입법 필요성은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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