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착하지 않다고 악하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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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익 건설부동산부 부장
입력 2017-09-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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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리풀·한남 공원은 사유지...재산권 행사는 당연한 일

  • - 공원유지나 개발제한 위한 비용은 서울시가 부담해야

 


지하철 레일 위에 아이가 떨어졌다. 아이 엄마는 물론 지하철을 기다리는 수많은 시민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한 청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레일 위로 뛰어들어 아이를 구한다. 간발의 차로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사람들은 이 같은 이타심을 칭송하고 기린다. 실제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당시 26세) 같은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레일 위로 뛰어들지 못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추구한 이기심 때문에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그들은 다만 의인 이수현씨처럼 착하지 못했을 뿐 악한 것은 아니다. 

내 땅을 동네주민 모두가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공원용지로 선뜻 내놓지 않는 땅주인은 어떨까. 사유재산을 공익을 위해 쓰지 않은 것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흉년에 마을 소작농들에게 곳간을 내어준 경주 최씨 부자처럼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기심도 비난 받을 이유를 찾기 힘들다.

지하철 레일 위에 떨어진 아이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과, 자기 땅을 공원용지로 내놓기 싫어하는 땅주인은 이기적이란 면에서 같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부유층의 이기심은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된다.

시장경제는 합리적인 경제주체의 이기심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발전해온 게 자본주의다. 물론 이 같은 행동이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서다.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일몰을 앞두고 땅주인과 지방자치단체, 정부, 주민들 간에 갈등이 빚어진다.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이란 정부·지자체가 도시공원용지로 지정해놓고 수십년간 수용하지 않은 땅을 말한다.

서울시에서만 이 같은 도시공원용지가 여의도의 33배에 달하며 이 중 40%가량이 사유지다. 감정가로 3조9000억원에 이른다. 해당 땅주인들은 시로부터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자기 땅을 팔지도, 그곳에 집을 짓지도 못한다. 땅주인들은 사유재산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냈고, 승소해 3년 뒤인 2020년 7월 도시공원용도에서 해제된다.

하지만 일몰 후에도 땅주인들이 사유재산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도시공원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민원에 시가 사실상 개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리풀 공원 땅주인들은 일몰 후를 대비한 개발 계획을 서울시에 냈지만 줄줄이 퇴짜다. 아직 시가 일몰 후 개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확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시는 도시공원으로 유지하고 싶지만 수용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부영이 주인인 한남공원 부지도 마찬가지다. 부영은 최근 서울시를 상대로 도시공원 조성 계획을 철회해 달라는 행정소송에서 승소하고도 개발을 추진하는 데 눈치를 보고 있다.   

정부·서울시는 이 문제를 공익과 사익의 충돌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도시공원의 유지를 바라는 주민과 서울시 등의 지자체, 사유재산을 개발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땅주인의 이기심이 충돌하고 있는 문제란 것이다. 의도는 아니겠지만 이는 땅주인에 대한 정부·지자체의 프레임 공격이다.

경주 최씨 부자처럼 흉년에 마을사람들에게 곳간을 풀지 않는 모씨 부자를 공익과 사익의 충돌이란 프레임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모씨의 곡식을 구입해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공익활동은 정부의 몫이다. 그에 대한 프레임 공격은 정부의 책임전가다. 혹시 모씨가 흉년임을 악용해 정상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매도하려하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서초동 서리풀공원의 49%를 차지하는 토지주나 한남동 한남공원 부지를 소유한 부영이 개발을 통해 사유재산권을 행사하려는 이기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 땅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원으로 유지하고자 하거나, 개발을 제한하고자 한다면 그 비용이나 보상은 세금을 걷는 서울시가 치러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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