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고생 털어낸 고진영 ‘순수와 성숙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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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 기자
입력 2017-09-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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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웃음을 짓는 고진영. 사진=KLPGA 제공]

“파를 연속으로 12개나 했어요? 잘 했네요.”

지난 1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이저 대회 한화 클래식 3라운드. 6번홀 이후 12개 홀 연속으로 파를 기록한 고진영(22)이 경기 후 툭 던진 말이다.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 몹시 답답했던 날이다. 2라운드까지 단독 선두였던 고진영은 이날 1오버파 73타로 선두 자리에서 내려온 뒤 결국 3위에 그쳤다.

고진영의 퉁명스러운 대답은 올해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한 마디였다. 답답한 듯 시원스럽지 않은 그런 말. 고진영은 그랬다.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고의 기대주는 고진영(22)이었다. 지난해 라이벌이었던 박성현(24)이 미국 무대 진출을 선언하면서 기대감은 더 커졌다. 하지만 전반기 내내 잠잠했다. 우승은 없어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관심에서 멀어졌다.

고진영이 다시 고개를 든 건 후반기였다. 하반기 가장 뜨거운 선수는 고진영이다. 지난달 하반기 첫 대회였던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시즌 첫 우승을 이룬 뒤 지난주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2승을 몰아쳤다.

두 대회 모두 의미가 남달랐다.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는 3라운드 8개 홀 연속 버디를 성공하며 대역전극을 펼쳤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포기하고 나선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도 역전 우승으로 생애 첫 타이틀 방어를 달성했다.

하지만 답답했던 시즌 첫 우승을 털어낸 고진영의 반응은 두 번째 대회와 조금 달랐다. 고진영은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우승 이후에도 꽤 차분했다. 그토록 바라던 시즌 첫 우승이었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듯한 모습이 엿보였다. 대회 직전 한라산에 올라 마음을 다스리고 내려온 것처럼.

당시 고진영은 “산 아래를 내려보니 정말 아름답고 구름이 내 옆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는지, 힘들었던 것이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더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우승의 감격보다 자아를 찾은 고진영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박성현과 경쟁을 펼치며 가혹하게 채찍질 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진영은 시즌 중반 마음고생도 심했다. 지난 6월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2라운드 이후 손목 부상을 이유로 기권했다. 2라운드 18홀 홀아웃 이후 스코어카드를 제출하지 않고 기권을 하면서 ‘개인 기록 관리를 위한 고의 포기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대회 규정상 문제가 없었지만, 2라운드까지 9오버파(컷 라인 6오버파)로 성적이 좋지 않던 고진영을 향한 일부 팬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를 두고 ‘동반 선수들과 팬들을 위한 매너’와 ‘기록 관리’의 엇갈린 시선에 저울질을 당해야 했다.

이후 고진영은 말수가 더 줄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최대한 말을 아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단계 발전을 위해 고치고 있던 자신의 스윙에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성적으로 다시 인정을 받기 위해 묵묵히 대회에 출전했다.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을 만끽하는 고진영. 사진=KLPGA 제공]

이후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은 고진영이 모처럼 욕심을 부렸던 대회였다. 같은 기간 에비앙 챔피언십 출전 자격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사양하며 나선 대회다.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였던 고진영은 우승 욕심을 드러냈다. 올해 차분하게 자신을 들어내 보이지 않던 고진영으로서는 용기를 낸 듯했다.

이 대회에서도 최종 라운드 역전 우승을 차지하며 생애 첫 타이틀 방어의 꿈을 이뤘다. 우승 직후 고진영은 모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의 답답했던 심정이 모두 풀린 듯 우승을 만끽했다.

고진영은 “정말 우승하고 싶었던 대회지만, 사실 믿기지 않는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부담이 컸는데 이겨내고자 했고 스스로 만족할 플레이를 하는 게 목표였다”며 감격을 누렸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 마디는 고진영이 올해 더 성숙하기 위한 한 걸음을 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도 스윙과 멘탈 부분을 개선 중이고,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금랭킹이나 대상포인트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동기부여도 되지 않고 목표도 잃게 된다. 순수한 골프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순수한’ 골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고진영은 경기 도중 특유의 웃음도 되찾았다. 골프에 대한 진지한 발걸음을 새롭게 디딘 고진영은 오는 22일부터 사흘 동안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 산길·숲길(파72)에서 열리는 KLPGA 투어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해 시즌 3승을 노린다. 이 대회에는 약 1년 만에 박성현이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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