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칼럼] 과거 정부도 배울 가치가 있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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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수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09-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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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수칼럼
 

     [사진=육정수 초빙논설위원]



과거 정부도 배울 가치가 있는 역사다

문재인은 대한민국 국민 다수가 선택한 제19대 대통령이다. 탄핵에 의해 물러난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의 후임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12명의 역대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의 계속성을 잇고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일부의 극단적 인식처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이념과 정신만을 승계한 그들만의 ‘제3대 대통령’이 아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및 정부수립 이후 70년 헌정사의 상당 부분을 부정하려는 듯한 모호한 자세를 종종 보이고 있다. 올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는 내년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으로 언급해 해묵은 논란을 다시 지폈다.
문 대통령은 이승만, 김구 두 분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를 떠나 균형 잡힌 역사관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적어도 전임 대통령들이 이룬 업적만은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주면 좋겠다. 문 대통령 자신도 몇 년 뒤에는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역사는 개인적으로 좋든 싫든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며칠 전 YMCA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김명구 목사(서울 창천교회)는 “YMCA의 정신은 ‘단절’이 아닌 ‘계승과 유지·발전’ 그리고 비(非)정치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민족 재생론(再生論)’을 비판하고 월남 이상재 선생의 ‘계승 발전론’을 옹호했다. 요컨대 조부모,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혈육의 계속성을 단절해 버릴 수는 없는 것이며, 뿌리 없는 나무는 지금 아무리 잎이 무성해도 곧 시들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도 곱씹어볼 만한 말씀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이승만·박정희·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집중적으로 지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무조건 묻어버려야 한다는 뜻에서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밝고 안전하며 정의로운 나라,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이라면 개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최근 가장 비근한 역사 지우기 사례로 새마을운동을 들 수 있다. 아시아는 물론 멀리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의 수많은 저개발국가에서 이 운동을 배우려고 한국을 찾는가 하면 우리 봉사자들이 직접 현지에 가서 ‘할 수 있다’는 정신과 노하우를 가르쳤다. 그러나 현 정부는 세계적 찬사를 받아온 해외 새마을운동의 신규 사업을 내년부터 중단하고 기존 사업도 대폭 줄일 계획이다. 사업명칭에서도 ‘새마을’을 삭제한다. 들어가는 돈에 비해 대한민국의 국제 이미지와 위상을 크게 높여온 사업을 이렇게 손을 놓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올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11월 14일) 기념우표 발행 계획을 취소한 것도 보기 좋은 일은 아닌 듯하다. 명분이야 어떻든 속좁은 일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및 감옥행과 맞물릴 수밖에 없기에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다.
이승만은 부정선거에 분노한 4·19의거로 대통령직을 하야하고 말았지만 대담한 외교력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굳건한 한·미동맹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정희는 5·16군사쿠데타 이후 18년간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를 한 반면 안보의 틀을 다지고 국민경제를 절대 빈곤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렸다. 이들의 공(功)은 지우고 과(過)만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는 지나친 감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옛 정부청사였던 중앙청을 일제(日帝)의 총독부 건물이었다는 이유로 허물어 버렸다. 그러나 이는 단견(短見)이었다고 필자는 지금도 믿는다. 수치스러운 역사도 보존의 가치가 있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의 장(場)으로 삼아야 했다.
오래전에 가본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도심에는 인상 깊은 동상이 서 있었다. 1920년대에 이 나라 대통령이었던 알바로 오브레곤의 동상이다. 군인 출신인 그는 장기집권을 꾀하다 한 레스토랑에서 자객에게 암살을 당했다. 그의 동상은 놀랍게도 한쪽 팔이 잘린 모습이었다. 동상 밑에는 ‘멕시코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희생된 것을 기념하여···’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 기념관에는 오브레곤의 잘린 팔이 알코올 병에 담겨 보존되고 있었다.
위대한 인물만이 동상을 세워주는 것이 상식으로 돼 있는 우리로서는 불행한 역사적 사건도 기억하자는 멕시코인들의 역사 의식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가정보원, 법무부 및 검찰, 국방부 등 주요 부처들은 각종 ‘과거사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바람에 고유의 주요업무들은 뒷전으로 밀린 인상을 준다. 역대 정부의 약점들을 드러내 현 정부를 차별화하려는 의도의 포퓰리즘 전략과는 차원이 다르다.

※ 위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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