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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속초 1시간 빨리 가서 살림살이 폈습니까?

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입력 : 2017-09-17 20:00수정 : 2017-09-17 20:00
지락필락(智樂弼樂)

[사진=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속초 1시간 빨리 가서 살림살이 폈습니까?


대한민국이 가진 장기의 하나는 단연코 길 만드는 빈도수와 속도, 그 무지막지한 과감함이다. 아마 지구의 모든 나라를 통틀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하루라도 국토의 어느 곳인가 뚫고 째고 메우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어디에선가는 ‘오늘도 공사 중’이다.
지난 6월 동서고속도로가 뚫려서 서울에서 속초까지 150㎞를 90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더 쉽고 빠르게 동해를 갈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한다. 물론 그만큼 운전자의 수고는 덜었으니 좋아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속초에 1시간 빨리 가게 되었다고 그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고속도로 뚫어서 빨리 가게 만든 일이 그렇게 장한 일인가.
수도권에서 동해안 쪽으로 가다 보면 금방 느낄 수 있지만, 이 나라의 자연 경관은 온통 누더기 꼴로 비참한 몰골이 되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산을 뚫고 그 사이를 잇는 드높은 교량으로 인해 제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산과 계곡이 별로 없을 정도다. 동서고속도로도 홍천에서 양양까지의 44㎞ 동안 터널이 무려 35개라고 한다. 이를 한번 상상해보라. 얼마나 많은 교량들이 산과 산 사이를 이으면서 ‘산천경개’를 망치고 있을지. 눈을 들어보면 산과 산 사이의 그 아름다운 주름의 곡선과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탁 트인 시골 풍경을 콘크리트 교량이 딱 가로막으면서 오히려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하나라도 더 도로를 만들지 않으면 안달이 나는 ‘토건족(土建族)’들이 즐겨 내놓은 논리의 하나는 ‘국토균형발전론’이다. 다시 말해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지방에 도로를 늘려 사회간접자본(SOC)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야말로 하나만 강조하고 둘은 모른 척하는 자가당착의 논리다.
우선 우리나라는 이미 G20 대비 고속도로 1위, 국도 2위, 철도 6위 등 SOC 부분은 양적으로 최고 선진국가가 되어 있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몇 만 달러씩 높은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이미 도로가 차고 넘치는 수준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SOC 때문에 경쟁력이 낮아지고 국가 발전이 더딜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지방 발전이 안 될 것이라는 주장도 허구성이 높다. 도로 건설로 인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빨라지면 오히려 그 중간 단계의 도시들은 모두 퇴행하게 된다. 이는 강릉 고속도로 때문에 기존의 대관령 국도 인근이 인적 찾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 버린 사실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도로가 이리저리 돌아서 가면 국도 이곳저곳에 들러서 음식도 먹고 여러 가지 토산물도 사게 되는데, 고속도로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고 결국은 중간 마을들이 모두 쇠락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KTX나 SRT 덕분에 쇼핑을 지방도시가 아니라 서울에 와서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러니 빨리 가는 도로 만들었다고 지방이 발전할 것이라는 논리는 합당치 않다. 최종 목적지의 도시도 그리 좋아할 일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며칠씩 묵어야 할 것도 왕복시간이 짧아지면서 일정을 줄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지역인 프랑스 프로방스나 이탈리아 토스카나,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보자. 이들 지역은 지방의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가 우리처럼 고속도로인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프로방스나 토스카나는 이리저리 구불구불 곡선을 그리면서 불편한 옛길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 길들은 가로등도 없어서 밤이면 위험천만이기도 하다. 그들이 우리보다 길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고속도로로 인해 땅에 널따란 직선의 균열이 생기면 프로방스와 토스카나의 구릉이 보여주는 풍광은 크게 망치게 될 것이다. 유명 CF에 자주 등장하는 그 사이프러스 가로수 길도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프로방스의 고르도나 카르카손, 토스카나의 시에나나 산 지미냐노 등 성채 도시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그 그림 같은 경치들이 사라지면 누가 과연 그곳을 찾겠는가. 어느 감독이 그곳에 가서 '러브 인 프로방스',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나 '레터스 투 줄리엣', '잉글리쉬 페이션트',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들을 찍을 생각을 하겠는가.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세계 사망자 수는 약 5600만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이 12만명, 범죄로 죽은 사람이 50만명, 자살한 사람이 80만명이었다. 그럼 노환으로 인한 사망을 제외한 나머지 150만명의 사인은 무엇일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당뇨병으로 죽었다. 설탕은 미사일이나 기관총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
국토의 여기저기에 마구 도로를 뚫는 일은 우리가 평소 별로 경계하지 않고 설탕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지금 당장은 별 일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엄청 큰 재앙으로 닥쳐온다.
문재인 정부가 국토교통분야 예산을 줄이고 복지예산을 늘렸다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지방정부나 건설업자,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은 마치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이를 비판하는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예산안처럼 대도심권 혼잡 해소를 위한 비용을 제외한 지방도로 건설예산을 줄이는 것이 백번 올바른 결정이다. 곰곰이 따져보라. 지난 10년 동안 토건족 비호하느라 각종 건설예산 늘려서 일반 서민들 살림살이 좀 펴졌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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