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맥주는 여름? 가을에 더 좋은 트라피스트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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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모 기자
입력 2017-09-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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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기호 투홉(2HOP) 대표

강기호 투홉(2HOP) 대표. 


가을이 평년보다 일찍 왔다. 흔히 맥주는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절마다 찰떡궁합을 보여주는 맥주가 따로 있다. 가을에 젖어 한잔 생각나는 날이라면 주저 없이 '트라피스트 맥주'를 권한다.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한다.

1098년 프랑스 시토(Citeaux)에서 출범한 가톨릭 트라피스트 수도회. 성 베네딕토가 내건 규율을 따르는 '엄률(嚴律) 시토회'가 공식 명칭이다. 여기서 만들어진 맥주가 트라피스트 맥주다.

수도사가 직접 술을 양조한다니,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급자족을 위한 육체 노동을 수행으로 여기는 수도사에게 양조는 신성한 의식이다.

수도사는 사순절(四旬節) 기간에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이때도 맥주는 훌륭한 영양보충 수단이다. 수도원을 찾아오는 손님도 마실 수 있다. 맥주를 팔아 얻는 수익금은 수도원 운영자금으로 쓰이기도 했다.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나머지 이윤은 모두 지역사회에 돌려줬다. 트라피스트 맥주가 빛나는 이유다.

애비(Abbey) 맥주도 트라피스트 맥주와 같은 레시피로 만든다. 하지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애비 맥주는 수도원 방식으로 사설 양조장에서 만드는 상업적인 맥주다. 수도사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반면 트라피스트 맥주는 국제트라피스트협회(ITA)에서 만든 규정에 따라 양조해야 인정해준다. 규정을 보면 수도원 안에서 수도사에 의해 맥주가 만들어져야 한다. 양조로 얻은 수입도 수도사 생활비와 수도원 유지보수에만 쓰도록 했다.

공식 인증을 받아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현재 벨기에 6곳, 네덜란드 2곳, 오스트리아 1곳, 이탈리아 1곳, 미국 1곳을 합쳐 모두 11곳이다. 맥주에는 '오센틱 트라피스트 프로덕트(Authentic Trappist Product)'라는 육각 로고 라벨을 붙인다. 맛있는 수도원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기억해야 한다.

수도원 맥주는 대개 상면발효 방식으로 만든다. 알코올 함량에 따라 엥켈(Enkel·3~5%)과 듀벨(Dubbel·6~8%), 트리펠(Tripel·8~10%), 쿼드러펠(Quadrupel·10~12%)로 나눈다. 이 가운데 엥켈은 수도원 안에서 수도사만 마실 뿐 팔지 않는다.

엥켈과 트리펠, 듀벨과 쿼드러펠은 모두 비슷한 맛을 낸다. 하지만 수도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대개 엥켈과 트리펠을 잔에 담으면 밝은 노란색을 띤다. 살구나 배, 오렌지 같은 과실 맛이 먼저 느껴진다. 독일 밀맥주처럼 목넘김이 부드럽다. 허브나 백후추에서 느껴지는 풍미도 있다.

듀벨과 쿼드러펠은 짙은 갈색이다. 건포도나 건자두처럼 말린 과일 느낌을 준다. 다크 초콜릿이나 캐러멜이 떠오를 수도 있다. 향신료인 정향이나 육두구와 닮은 향도 난다.

수도원 맥주는 병에 담은 후에도 꾸준히 발효한다. 권장 온도(13~15℃)로 그늘진 곳에 보관하면 좋다. 1~2년 묵혀 마시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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