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⑬] 청년세대 감성 녹여낸 애니메이션 ‘십만개 썰렁한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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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은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선임연구원(베이징대학 문학박사)
입력 2017-09-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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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판 ‘병맛 웹 애니메이션’ 인기

중국 애니메이션 ‘십만개 썰렁한 유머2(十萬個冷笑話2)’ 포스터[사진=바이두]

최근 중국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십만개 썰렁한 유머’2(十萬個冷笑話2)’가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최초로 클라우드펀딩을 통해 영화화된 이 영화는 2010년 웹툰으로 시작했다. 현재까지 연재되고 있는 웹툰은 원작자인 한우(寒舞)와 중국 웹코믹 사이트 ‘유야오치(有妖氣)’의 노력으로 2012년부터 웹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졌다.

1탄은 2014년 12월 개봉 당일 반나절 만에 1000만 위안(약 17억3000만원)의 수익을 달성했으며, 상영 한달여 만에 1억2000만 위안(약 207억원)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십만개 썰렁한 유머’의 생산 및 소비주체는 주로 바링허우(80後·1980년대생), 주링허우(90後·1990년대생)다. 작품은 이들 세대의 전통적인 관습에 대한 저항과 ‘잉여성’, ‘루저 정서’ 등 동시대적 공감을 구조화시키고 있다.

흔히 약 10여년의 격차를 두고 한국사회가 일본을 ‘반복’하고, 또 몇 년의 격차를 두고 중국이 한국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잉여주체가 일본의 오타쿠 주체와는 차이가 있듯이, 중국 청년세대의 감성구조 또한 한국과 차이가 있다.

한국 청년세대의 ‘잉여성’과 ‘루저 정서’를 담고 있는 웹툰을 ‘병맛’ 웹툰이라 칭한다면, 중국 청년세대의 감성은 한국과는 다른 중국적 ‘병맛’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병맛이란 인터넷 신조어로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는 어려우나,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말로 설명된다.

이와 같은 병맛의 개념이 웹툰과 결합해 병맛 웹툰이 되는 과정에서 뉘앙스 변화가 일어난다.

애초에는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병맛이 웹툰 및 기타 콘텐츠와 연결되면서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병맛은 바로 중국어의 ‘모레이터우(無厘頭)’와 유사한 표현이다. 이 병맛이 ‘십만개 썰렁한 유머’에서는 ‘투차오(吐槽·조소나 조롱의 유머로 결점을 드러내거나 불합리한 부분을 들춰내어 마음 속 불만 토로)’적인 방식으로 표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정(李靖), 나타(哪吒), 피노키오, 백설공주, 마녀, 조롱박 형제 등은 모두 바링허우, 주링허우 세대들에게 익숙한 신화 또는 동화 속 인물들이다. 그런데 작품은 익히 알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역할과 특징을 파괴하고, 이들을 낯선 서사 속에 재배치함으로써 전복과 변화를 선호하는 청년세대들의 심미적 욕구를 표출한다.

예컨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피노키오’는 모레이터우, 투차오적 표현과 방식을 통해 세상에 대한 냉소를 드러내고 더 나아가 극단적 방법으로 자신을 조롱하는 자를 처단한다.

그러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라는 전통적 주제에 함몰돼 ‘백설공주’의 세상에 갇혀 버리고 만다. 백설공주는 여전히 자신의 아름다운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백설공주는 그저 피노키오의 세상에 대한 저주를 막아주는 장치로서 존재한다.

하이브리드(Hybrid)적 존재이자, 자체적 모순을 안고 있는 가장 파격적 인물은 ‘나타’다. 본래 나타는 남성인데 영화 속에서는 여성형상을 지닌다. 무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절대적 힘을 드러내는 최강의 인물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전체 서사를 이끌어가는 무명(無名)의 주인공은 새롭게 탄생한 인물로 현대중국 청년세대를 대표할 만한 성질을 부여받는다. 부정적인 동시에 파괴적인 인물이지만, 본래적 선(善)을 행하며 세계종말을 야기하는 악의적 존재에는 과감히 맞선다. 특이한 점은 이 인물의 최대 무기가 바로 ‘투차오’ 능력이라는 것이다. 투차오 능력이 결국 종말을 맞이하는 세계를 구원한 셈이다.

‘십만개 썰렁한 유머’의 유행은 헨리 젠킨슨(Henry Jenkins)이 언급한 미디어 컨버전스(Media Convergence) 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의 내용과 작품의 운영방식이 관중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 내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적 재생산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웹툰의 경우, 작가와 독자 간 상호교류를 위한 별도의 시스템(네티즌들의 반응을 스티커처럼 작품에 직접 붙이는 댓글 시스템)이 제공됐다. 웹 애니메이션에는 다양한 언어로 더빙을 붙여, 이용자가 원하는 목소리를 선택해서 취향에 맞게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장치들은 컨버전스 문화 관점에서 ‘십만개 썰렁한 유머’의 전략적 운영이 돋보인다.

3년 만에 후속편으로 돌아온 ‘십만개 썰렁한 유머’2는 평범한 소년이 천신 아테네, 천둥의 신 토르, 강의 신 아켈로스와 함께 우주의 진귀한 보물인 창세신의 지팡이를 찾아서 세계를 구원한다는 이야기다. 중국식 병맛이 작품 곳곳에 스며든 덕에 선 개봉 기간 동안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점을 받았다. 전편이상의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과 다변화된 수용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십만개 썰렁한 유머’ 시리즈는 중국 청년세대 감성구조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활용을 통한 문화생산과 소비방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콘텐츠다. 이 영화는 중국시장을 겨냥한 한국 문화콘텐츠 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져볼만한 작품이다.

[안영은 ACCI 선임연구원(베이징대학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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