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시이야기] '만주국' 수도서 동북아 물류·영화·자동차도시로―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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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기자
입력 2017-09-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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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이 만든 계획도시…곳곳에 일본침탈 역사 흔적도

  • 동북3성 진흥정책으로 '창지투' 프로젝트 등 추진…동북아 물류허브 꿈꿔

지린성 창춘시 개요.[자료=아주경제DB]



중국 동북지역에서 9월 18일은 특별한 날이다. 일본 관동군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국치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옛 일본군이 세운 만주국의 수도였던 지린(吉林)성 성도 창춘(長春)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곳에선 매년 9월 18일이 되면 만주사변의 치욕을 되새기는 기념 행사를 연다.

창춘은 과거 일본 침탈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다. 창춘 시가지를 거닐다 보면 유난히 과거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띈다. 오사카성을 본 딴 옛 관동군 사령부 건물(현 지린성 공산당위원회 건물), 그리고 지금은 웨이만황국박물원이 된 옛 만주국 궁전, 위만 중앙은행 건물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중국 내 반일감정이 확산되면서 일제 침략 유적지 창춘을 찾는 관광객이 늘기도 했다.

과거 일제 침략 역사의 상처를 가진 창춘은 오늘날 21세기 동북아 물류 허브 중심지를 꿈꾸고 있다.

과거 부여와 고구려, 발해 땅으로 우리 선조들의 터전이었던 창춘은 흉노·말갈·거란·여진·몽골·만주족 등이 번갈아 다스렸다. 1800년 청나라 때부터 비로소 '긴 봄'이란 뜻의 창춘이라 불렸다.

1904년 러·일 전쟁 결과로 맺어진 포츠머스 조약으로 창춘은 러시아·일본 두 제국주의 세력의 변경이 됐다.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 신호탄이었던 1931년 9·18 만주사변으로 창춘은 일본군의 지배를 받게 됐다. 일본은 만주를 중국 침략을 위한 전쟁의 병참 기지로 만들고 식민지화하기 위해 만주국을 세우고 창춘을 수도로 세웠다. 그리고 창춘을 ‘새로운 수도’라는 뜻의 ‘신경(新京)’이라 명명했다.

일본은 창춘을 현대화된 계획 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대(大) 신경 도시계획’을 구상했다. 19세기 파리 계획도시를 본 따 설계된 창춘은 당시 대동광장(지금의 인민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가 건설됐다. 도시는 상업·군사·주거·문화오락지구 등 기능별로 구획을 나눴다. 대규모 녹지가 조성되고 상·하수도 시스템이 완비됐으며, 전신주와 통신선을 지하에 매설하는 등 창춘은 현대화된 도시로 면모를 갖췄다.

이에 따른 인구도 급격히 팽창했다. 1932년 12만명이었던 창춘 인구는 1945년 71만명까지 늘었다. 특히 유동인구까지 더하면 120만명에 달해 한때 일본 도쿄 인구를 초월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중국 설립 후 국유기업 위주로 발전했던 이곳은 중국 개혁·개방의 물결과 함께 떠오른 상하이·선전 등 주장·창장 삼각주 지역에 밀려 낙후 지역으로 몰락했다. 특히 창춘은 같은 동북 3성인 랴오닝성 성도 선양(瀋陽)이나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과 비교해서도 경제개발에서 가장 뒤쳐졌다.

창춘에 다시 봄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동북3성 노후 공업지역의 부흥'이라는 국가적인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다. 2009년부터는 두만강 유역 경제 벨트인 '창지투(長吉圖·창춘-지린-두만강) 개방 선도구' 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창춘은 동북아 물류허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5년 9월부터 매년 중국-동북아박람회도 창춘서 열리고 있다. 중국 3대 투자무역박람회 가운데 하나로 중국 상무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지린성 정부가 공동 개최하는 것이다.  박람회에서는 중국과 한국, 북한, 일본, 러시아, 몽골 등 동북아 각국의 정·재계 인사와 기업이 참가해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하고 비즈니스 상담과 우수상품·신기술·서비스 전시회를 연다.  

지난해엔 중국 정부가 17번째 국가급 신구인 창춘신구(長春新區)도 조성해 동북3성 지역 경제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울 것이란 의지도 내비쳤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재정·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창춘이 속한 지린성을 비롯한 동북3성 지역 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 지린성 경제성장률은 6.5 %, 헤이룽장성 경제성장률은 6.3%, 랴오닝성 2.1% 등으로 중국 평균 경제성장률(6.9%)보다 낮다. 이에 최근엔 동북3성 경제발전 노선을 둘러싸고 중국 석학들이 논쟁을 벌였을 정도다.

창춘시내에 위치한 옛 관동군 사령부 건물(현 지린성 공산당위원회 건물)[사진=웨이보]


한편 창춘은 중국 동북지역의 '자동차 도시'로 불린다. 중국 대표 자동차 기업인 이치(一汽) 자동차 본사가 바로 이곳에 소재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56년 중국의 첫 번째 자동차를 생산한 이래 중국의 3대 자동차 그룹 중 하나로 성장한 이치자동차는 현재 창춘시 산업의 50%를 담당하고 있을 만큼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치자동차에서 제작한 훙치(紅旗)는 중국 국유 자동차기업인 이치자동차가 58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세단형 자동차로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중국 역대 수뇌부가 톈안먼(天安門) 앞에서 군대사열을 할 때 탔던 차종으로 일종의 중국 정치권력을 상징해왔다.

창춘은 2년에 한번씩 국제영화제도 열리는 '영화 도시'이기도 하다. 중국 최초 영화촬영소가 바로 창춘에서 탄생했기 때문. 과거 일본인이 일제 중국 대륙침탈을 정당화하는 선전용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1937년 설립한 만주영화주식회사가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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