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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일기· 김지영칼럼] 만시지탄의 힘으로 영주댐을

김지영 동양대 교수(전 경향신문 편집인)입력 : 2017-08-30 20:00수정 : 2017-08-30 20:00

[사진=김지영 동양대 교수(전 경향신문 편집인]

[해우당일기· 김지영칼럼]

만시지탄의 힘으로 영주댐을

무섬마을 청년회장 재현씨(63)가 해우당으로 들이닥쳤다. 우람한 몸의 움직임은 급하고 대춧빛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섬 청년회는 회원 대부분이 60대이다)
늦은 점심으로 끓인 라면이 거의 다 돼, 수저와 반찬을 내놓을 즈음이었다. “아니, 무슨 일인데···?” 놀라서 묻는 나에게 재현씨가 설명한다. 지금 영주 분뇨처리장 배출구로 물이 쏟아져 나와 하천으로 유입되고 있다는데··· 거품도 많고, 정화하지 않은 오수를 그대로 내보내는 듯하다는 것이다. 부근에서 일하던 마을 주민의 제보란다. 빨리 현장으로 가보자고 다그친다.
“그래···? 가자고!” 나는 옷을 대충 걸치고 재현씨를 따라 나섰다. 순간, ‘아차’ 싶었다. 라면냄비를 올려놓은 전기레인지를 끄지 않았던 것이다. 또 집에 통기를 시킨다고 방문이란 방문은 다 활짝 열어놓았다. 문들을 열어놓아도 별일이야 없겠지만, 워낙 외지 관광객이 많은 터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부리나케 되돌아와 단속을 하곤 다시 달려가 재현씨 트럭에 올라탔다. 전갈을 받았으리라, 이장 진호씨(59)도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선 후다닥 동승한다. 곧 현장에 도착해 보니 과연 배출구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스마트 폰을 꺼내 동영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심히 보자 하니 거품이 심하지 않고, 물도 탁하지 않았으며 부유물 같은 것도 없었다. 비전문가들이 육안으로 봐서는 정화하지 않은 오수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우리 셋은 멍청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결국 우리는 다소 허탈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불어터진 라면을 버리고 새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조금 전 상황은 무섬마을로서는 매우 의미가 큰 순간임이 틀림없었다. 비록 오수 배출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환경오염 현장이라며 무섬 주민들끼리 제보하고, 즉각 달려가고 한다는 건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
그런 역사적(?) 순간이 오기까지는 최근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다. 강에서 악취가 나고 물 색깔이 달라졌음을 느낀 주민들은 영주시 오폐수 처리장이 오폐수를 무단방류하는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 차에 무섬마을 5㎞ 상류의 영주댐이 녹조로 가득하고 급기야 녹조가 썩자 수자원공사 측이 이 물을 방류했던 것이다.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물은 그대로 무섬마을 앞 내성천으로 밀려들었다. 드론으로 촬영한 것을 보면 무섬마을을 350도 휘감아 돌아가는 내성천에 시커먼 탁류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런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무섬 마을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무섬 보존회 회장 광호씨(68)를 중심으로 내성천 보존회와 내가 거들면서 일을 기획하고 대응에 나섰다. 시내에 플래카드를 내건다, 수자원공사 영주댐 현장에 항의방문을 한다, 이곳과 대구지방환경청, 영주시에 질의공문서를 보낸다, 또 무섬 주민들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내성천 보존회와 공동기자회견을 연다 하면서 마을 전체가 나섰다.
관(官)을 상대로 무섬 마을 전체가 대드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이명박 정부때 4대강 사업을 전개하면서 구색 갖추기로 영주댐 건설을 결정한 뒤에도 무섬 사람들은 조용했다. 지질학회 회원들이 영주댐 건설에 반대하면서 영주시내에서 세미나를 열어 “발전과 농업용수 공급, 홍수예방 목적의 다목적댐을 건설한다지만 이 세가지 목적은 이 지역에서 이미 충족된 것”이라면서 “토건업자와 수자원공사의 먹거리를 제공하는게 댐건설의 목적”이라고 비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 영주댐 건설에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내성천 답사행렬이 줄을 이을 때도 그랬고···.
미국과 유럽의 몇몇 저명한 지질학자들은 내성천을 답사한 뒤 “영주댐이 내성천 수역을 망칠 것”이라며 개탄을 했다. 개중에는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강을 따라 순수한 모래사장이 100㎞ 펼쳐지는 곳은 현재 지구상에서 내성천 수역밖에 없다”며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하거나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야 마땅한 이곳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훼손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전통 유림 마을인 무섬은 천혜의 자연생태 환경을 지닌 물도리동이자, 일제강점기때 피어린 항일독립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했던 곳, 현재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마을 7곳중 한군데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당시 치열한 저항의 고장이었던 이 마을은, 그러나 다른 경북지역과 마찬가지로 박정희 집권 이래 서서히 극보수화·친정부화해 갔고, 터무니 없는 관의 정책에도 반기를 드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런 활동에 나서는 일은 반정부 활동이고, 그런 사람들은 반정부 인사였으며 이런 경우 ‘빨갱이’ 올가미에 걸려 들기도 쉬웠다.
그런 지역 사람들이 비로소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목도하고 자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무섬에서는 아직 ‘영주댐 철거’ 주장은 과격하다며 동조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만시지탄, 그것만 해도 얼마나 소중한가. 아무리 참으려 해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데드라인의 절벽 위에서 결행할 때 나오는 것이 만시지탄이다. 나는 창조주께서도 아무리 하지 않으려 해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만시지탄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해본다. 자연생태가 회복돼 살아 숨쉬는 무섬의 미래를 기원하면서 읊조려 본다.
“무섬마을의 만시지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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