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40] 호레즘은 왜 스스로 무너졌나? ②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09-07 10:5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복합적인 전술 전략 구사
대(對)호레즘 전쟁은 칭기스칸이 살아있는 동안 치른 전투 중에 가장 규모가 큰 마지막 전투라고 할 수 있다. 몽골이 당시 세계의 절반을 차지한 세계제국을 이루는 것은 그의 아들과 손자代였다. 다만 칭기스칸은 호레즘 전쟁을 통해 그 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호레즘과의 전쟁은 칭기스칸이 가지고 있는 전술 전략적인 측면의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정보전과 홍보전, 공포전략, 이간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전쟁이다. 호레즘과의 전쟁을 결심한 칭기스칸은 사전에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 대상(隊商)을 활용한 사전 정보전

[사진 = 호레즘 가는길]

우선 호레즘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대상들을 현지로 보냈다. 상인들은 호레즘 지역의 지리적 특징과 군대의 배치, 주민들의 분위기, 궁정 내의 암투 등과 관련한 소식을 쉴 새 없이 물어다 날랐다. 손자병법을 알리도 없는 칭기스칸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손자병법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원칙을 잘 실천했던 것이다. 기고만장해 있던 호레즘의 무하마드는 몽골을 모르는데 칭기스칸은 호레즘에 대한 파악을 철저히 했으니 승패의 결과는 전쟁 전부터 몽골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칭기스칸은 몽골족 칸의 자리에 오를 때 구사했던 홍보전술을 여기서도 철저히 활용했다. 상인들을 통해서 칭기스칸과 그의 푸른 군대에 대한 소문을 확산시켰다.

"칭기스칸은 장차 세계를 지배할 영웅이다."
"몽골 군대는 최강의 군대이며 이들과 싸워 이길 군대는 없다."
"몽골군대는 항복하면 관용을 베풀지만 저항하면 씨도 남기지 않는 잔인한 군대다."
"칭기스칸은 종교와 인종을 가리지 않는 메시아다."

상인들의 입을 타고 흘러나온 이 같은 소문들은 호레즘 전 지역으로 널리 번져 갔다. 그 대가로 상인들은 최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교역을 보장받았다.

▶ 호레즘 내 불화 반목 조장
특히 호레즘의 왕궁 내 불화와 반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부추기는 데 주력했다. 투르크인과 이란인 등 복합적으로 구성된 주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민족적인 반목은 지배층까지도 팽배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책략을 동원해 상호간의 반목과 불신을 심화시켰다. 무하마드의 압정에 의해 야기된 토착 지배층의 불만과 과중한 세금과 폭력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사진 = 호레즘 사신도]

그래서 그들의 저항 의지를 무디게 하고 무하마드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키는 사전 공작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칭기스칸은 무하마드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그의 어머니 투루칸 카툰에게 사신을 몰래 보냈다. 그녀에게 아들의 광폭함을 비난하면서 협조할 경우 나중에 호레즘의 땅을 넘겨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리고 투루칸 카툰 휘하의 한 지휘관의 이름으로 칭기스칸의 군대에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거짓 편지를 만들어 그 것이 무하마드의 손에 들어가도록 만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간책(離間策)을 쓴 것이다. 이처럼 불화가 깊어지도록 조장하자 호레즘은 푸른 군대가 전투에 나서기도 전에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막 오른 잔인한 피의 전쟁

[사진 = 오트라르 전투 상상도(오트라르 박물관)]

전쟁에 나설 여건이 충분히 조성됐다고 본 칭기스칸은 1219년 여름, 몽골군을 이르티쉬강 상류에 집결시킨 뒤 전쟁을 선포했다. 대(對)호레즘전쟁에서의 승리를 다짐한 20만의 대군은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슬람지역을 피로 물들일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이 막이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관문인 겨울 천산을 넘어 두 차례나 사절단을 살해한 오트라르 성을 본보기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푸른 군대가 오트라르성에 도착한 것은 혹독한 한겨울을 원정길에서 보낸 뒤인 1220년 2월이었다.

당시 오트라르성의 지사는 여전히 이날축이 맡고 있었다. 칭기스칸의 원정이 자신의 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감행됐다는 것을 잘 아는 이날축은 전쟁에서의 패배는 곧 처참한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끈질기게 저항했다. 몽골 군대의 진격을 전해들은 무하마드는 이 성의 방어를 위해 5만 명의 군사를 배치했다. 이곳에서 양측의 공방전은 5개월 동안 계속됐다.

▶ 죽음을 각오한 끈질긴 저항
죽음을 각오한 오트라르성의 저항은 완강할 수밖에 없었다. 몽골군은 투석기를 쏘아 성안으로 돌을 날리고 불화살을 쏘아 성안의 곳곳이 불바다가 됐으나 그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싸움을 지켜보던 칭기스칸은 아들 차가타이와 오고타이에게 오트라르성 함락 임무를 맡겨 두고 막내아들 툴루이와 함께 주력군을 이끌고 시르다리아(Syr Darya)강을 건너 부하라(Bukhara)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 처참한 죽음 당한 이날축

[사진 = 오트라르 전투 상상도(오트라르 박물관)]

이후에도 오트라르성 공방전은 한 달 간이나 더 이어졌으나 결국 성은 몽골군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오랜 전투에 약이 올라 있던 병사들은 성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엄청난 살육을 자행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날축은 눈과 귀에는 끓는 은이 부어지는 고통스럽고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고 사서는 적고 있다.

▶ 곳곳에 그림 같은 오아시스 마을

[사진 = 실크로드 상인]

오트라르로 가는 길은 대평원지대로 수십 호, 수백 호에 이르는 오아시스 마을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이 길은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이 낙타와 말을 끌고 몇 날 며칠을 가던 길이 아닌가?
 

[사진 = 오트라르 가는 길]

그들은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오아시스 마을에서 목을 축이고 요기를 해 가며 긴 여로의 피곤을 달래고 힘을 돋구어 다시 먼 길을 떠나곤 했을 것이다. 초원 속에 잠긴 마을들은 대부분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트라르에서 12Km 떨어져 있는 샤울리제르라는 소도시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박물관을 만날 수 있었다. 오트라르 성터에서 발굴된 유물과 칭기스칸의 군의 공격 당시의 가상도, 오트라르성 추정도 등이 보관돼 있는 오트라르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의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오트라르성의 추정도는 당시 성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초원 한가운데 세워진 성 주변에는 운하가 둘러쳐져 있고 성 밖에는 노천 시장이 열려 도자기와 비단 등 여러 가지 물품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진 = 오트라르 상인]

당시 오트라르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교역의 중심 도시라는 성격을 나타내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서북쪽으로 10㎞쯤 이동하자 조그마한 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 뒤쪽으로 마치 큰 둑을 쌓아 놓은 듯한 거대한 흙무더기가 불쑥 솟아 있었다. 오트라르성은 거대한 흙무더기만 유적으로 남겨 놓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오트라르 성터는 그 규모가 상당했다.

▶ 고랑 근처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차량의 진입이 금지돼 있어 가는 먼지가 풀썩이는 길을 걸어서 1㎞쯤 가자 6-7미터 높이의 성터가 앞을 가로막았다. 성터의 주변은 홈이 파여진 고랑이 띠를 두른 것처럼 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과거 성을 둘러쌌던 운하의 흔적이었다.

[사진 = 오트라르성 발굴 작업]

성터위로 올라서니 성터는 아래서 보는 것보다 더 방대했다. 푸른 군대의 보복성 파괴와 유린이 형체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고 잔인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모든 흔적이 흙 속에 묻혀 버린 오트라르성의 유적지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5개월에 걸친 공방전 끝에 무너진 오트라르성은 수백 년 세월에 닳아지고 바람에 깎이면서 흙에 덮이는 동안 이제 옛 모습을 땅속에 묻어 놓은 채 흉물스런 황토 빛 동산으로 변해 있었다. 그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초원을 노니는 바람과 그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 그리고 사람이 지나는 길에 풀썩이는 모래연기만이 주변에 가득하다.

눈을 들어보니 수백 년 뒤의 후인들이 형성해 놓은 성 밖의 마을이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저 후인들은 그 때의 사정을 얼마나 알까? 세월이 잘라놓은 많은 잔상들을 떠올리며 오트라르성을 뒤로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