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함원] 벌거벗을 라(裸)로 읽은 현대 중국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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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원(含 園 ) 전통문화연구회 상임이사
입력 2017-08-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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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한담(冬夏閑談)

含 園 (함원 · 전통문화연구회 상임이사)



벌거벗을 라(裸)로 읽은 현대 중국의 민낯

중국의 신조어 중엔 ‘벌거벗을 라(裸)’가 들어간 단어가 유독 많다. 뤄바오(裸報, luǒbào)라는 말이 있다. 대학생이 취업에 실패할까봐 무작정 대학원에 지원하는 것이다. 맨몸으로 아무 준비없이, 들어간다는 걸 부각시키기 위해 벌거벗을 라를 썼다. 보(報)는 보명(바오밍, 報名, bàomíng)이라고 해서 교육기관에 등록하는 걸 말한다.

뤄촹(裸創, luǒchuàng)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끼리 창업한다는 뜻이다. 맨주먹으로 일어서야 하는 중국인들의 고됨 속에 헝그리 정신마저 느껴진다.

뤄거우(裸購, 간체자로 裸购, luǒ gòu)는 헐값에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며 뤄자(裸價)는 ‘벌거벗은 가격’이니 최저가라는 의미다.

또 자녀와 처, 재산은 해외로 빼돌려놓고 본인만 중국에 남아 일하는 고위 공무원을 중국에서는 흔히 '뤄관(裸官)'이라 부른다.

뤄훈(裸婚, 나혼, luǒhūn)이란 단어는 중국의 현대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신조어 중 하나다. 벌거벗은 결혼이라고 해서 턱시도나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고 하는 ‘누드 결혼식’이라 착각해선 안 된다.

뤄훈은 신혼집과 결혼식, 신혼여행, 결혼반지 없이 남녀가 법률상 혼인신고 절차만을 밟은 채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뤄훈스다이(裸婚時代, 나혼시대)’라는 드라마까지 나오기도 했다. 즉,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중국과 한국의 결혼관 차이 때문이다.

한국은 보통 결혼식을 먼저 하고 혼인신고를 하지만(혼인신고도 1년 살아보고 한다는데~), 중국은 그 반대다. 중국은 결혼 등록 부서에 가서 결혼증명서를 먼저 받는다. 그리고 결혼식은 나중에 천천히 택일해서 올린다.

이런 뤄훈의 가장 큰 배경은 중국의 살인적인 집값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부동산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신혼집 마련이 쉽지 않다.

한국도 이웃나라 중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혼을 하기도 어렵고, 결혼을 해도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에듀푸어가 되어가는 현실이 꼭 닮았다.

결혼할 때 신랑 집이 신부 집에 주는 예물 ‘차이리(彩禮)’도 15만 위안(2500만원) 가량이 들어간다. 상하이만 해도 근로자 평균 연봉은 연 1400만원 수준인데 상하이 평균 집값은 연평균 소득의 50배나 된다. 평균 월급이 한 달에 120만원~150만원 꼴인 처지에서는 예물비도 부동산비도 살인적이다. 상황이 이러니 집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2020년까지 중국의 노총각은 300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뤄훈 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뤄훈이 모든 조건을 갖춰놓고 이리저리 재면서 하는 결혼이 아닌, 일단 두 사람이 결혼으로 뛰어들어 부딪혀보자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의 경쟁력도 어쩌면 이 ‘벌거벗음’에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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