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아침묵상] 12. 자만自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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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교수(종교학)
입력 2017-08-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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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교수(종교학)]

유기해야할 마음 습관
나를 장님으로 만들어 내가 원하지 않는 비참한 운명으로 떨어뜨리는 마음의 습관이 있다. ‘자만’이다. 자만은 자기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지 못하여, 자신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다. 내가 사진기를 들고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카메라 렌즈는 찍고자하는 대상의 초점을 맞추고, 숨을 죽이고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을 일직선에 정렬하여, 자신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야한다. 자만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사진을 찍다보면, 자신이 원하는 더 감동적이며 개성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수 년 동안, 혹은 수 십 년 동안 수련해야한다. ‘자만’한 자는 그런 수련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자만’의 상징 이야기가 있다. 몸은 자랐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의 어리석음을 지닌 자다.

파이톤과 헬리오스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라고 생각한 자칭 ‘영웅’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빛나는’이란 의미를 지닌 파이톤(Phaethon)이다. 그의 아버지는 태양신 헬리오스이고, 어머니는 인간인 클리메네다. 파이톤은 이 둘 사이에 태어난 반신반인(半神半人)이다. 자신이 수련에 따라, 그는 신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이 될 수도 있는 경계적인 존재다. 헬리오스는 매일 아침이 되면 태양을 전차에 싣고 지구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시키는 신이다. 그러면 우주엔 저녁이 찾아와 하루가 지나간다. 인류가 아직 지동설을 발견하기 전까지, 고대 그리스인들은 누군가 매일 아침 태양을 이동시켰다고 추측했다.
그런 아버지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들 파이톤은 자신의 아버지가 태양신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파이톤은 어머니 클리메네에게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클리메네는 그가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이라고 확신을 주고, 헬리오스가 거주하는 궁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궁궐은 태양이 하루 여정을 시작하는 동쪽 끝, 인도에 있었다. 파이톤은 인도로 찾아가 아버지가 거하는 궁궐을 방문한다. 그는 궁궐의 웅장함과 찬란함에 놀랐다. 그리고 헬리오스로부터 나오는 빛 때문에, 아버지를 정면으로 볼 수 없었다. 헬리오스가 사는 궁전의 기둥은 진귀한 보석으로 만들어졌고 천장은 상아와 은으로 장식되었다. 파이톤은 이 궁전을 자신의 집이라고 착각하였다. 파이톤은 이제 다이아몬드로 수놓은 왕좌에 앉은 아버지 헬리오스 앞에 섰다.

파이톤의 착각과 성급함
파이톤은 그런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헬리오스를 만나자 마자, 자신이 친구들로부터 거짓말쟁이라고 놀림을 받은 수모를 토로한다. 그는 헬리오스에게 묻는다. “당신이 제 아버지입니까?” 헬리오스는 철없는 파이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아들임을 궁궐에 모인 모든 신하들에게 알린다. 그러나 천하의 헬리오스도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단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약속한다. 그는 아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파이톤은 이제 우쭐하여 자신을 마치 아버지 ‘헬리오스’로 착각하기 시작하였다.
파이톤은 헬리오스의 임무가 얼마나 정교하고 힘든 일인지 알 수 없다. 헬리오스는 우주가 탄생할 때부터, 태양을 전차에 실고 태양이 가야할 정해진 곳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운행하였다. 그의 수고로 하늘의 별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땅과 바다의 동식물들이 생존할 수 있다. 헬리오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한 번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매일 매일의 움직임이 수련이며 인내다. 헬리오스가 태양을 싣고 전차를 우주가 탄생한 순간부터 몰았지만, 매일 아침, 그의 운행은 생경하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헬리오스가 자기 임무에 대한 헌신과 각오, 그리고 몰입이 없다면, 그가 모는 태양을 실은 전차는 길을 이탈하여 우주에 재난이 발생할 것이다.
파이톤은 아버지의 사랑과 관대함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가 아버지를 처음 만나, 성급하게 아버지를 시험한다. 그는 자신이 하루만 태양을 실어 나르는 전차를 몰겠다고 조른다. 파이톤은 헬리오스가 신들 앞에서 자신에게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말한 사실을 악용한 것이다. 헬리오스는 아들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놀란다. 미숙한 아들의 응석이라고 받아주기엔 위험한 부탁이다. 그는 아들에게 우주의 주인인 제우스신도 태양을 실은 전차를 운전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신이나 인간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고유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반복하는 수련을 통해 서서히 완성된다고 말한다. 매일 매일 동일한 시간에 동일 한 장소를 지나가야하는 일은 헬리오스에게만 주어진 임무다. 헬리오스만이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다.

약속
헬리오스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는 파이톤의 터무니가 없는 요구를 거절하고 그를 모든 신들 앞에서 혼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그가 파이톤에게 무슨 요구라도 들어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수단은 ‘설득’밖에 없다. 헬리오스는 자신의 수사학적 능력을 발휘하여 경솔한 파이톤을 설득하려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이톤은 아버지가 말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한 말은 실행되어야한다. 자신이 한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우주 전체를 혼돈 속에 빠뜨리는 것보다 더 심각한 범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말은 다시 행동을 낳았다고 믿었다. ‘말’의 가시적인 표현이 바로 우주다. 그러므로 ‘말’을 통해 우주가 창조되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헬리오스는 자신이 아들을 처음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의 말이 가져올 행동이나 결과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파이톤에게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연습
파이톤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니 무식하다. 그는 인생경험이 없어 아버지의 말을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해석하여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을 요구하니, 순진하다. 태양전차를 몰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직접 하늘에서 모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내가 자동차 교본을 읽었다고 해서, 거리로 나가 당장 차를 몰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학원에 다녀 일정기간 연습하고, 이론과 실제에 대한 시험을 통과해야한다. 그런 후,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네거리로 나가 교통 체증을 경험하고, 고속도로로 나가 빨리 달리기를 일정기간 연습해야한다. 운전자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운전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욕망을 실체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부단히 둘 사이를 왕래하는 과정을 ‘연습’이라고 한다. 우리는 ‘연습’이란 과정을 통해, 이데아의 세계 안에 존재하는 ‘운전을 할 수 있는 실력’을 서서히 갖춘다.
 

[파이톤의 추락, 도미니크 레페브르 작]



사고
헬리오스는 태양전차를 운행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아들에게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태양전차를 너무 높거나 너무 낮게 운행하지 말고 ‘적당한 길’로 가라고 충고한다. 파이톤이 ‘적당한 길’을 이해할 리가 없다. ‘적당한 길’이란 오랜 수련과 마음의 준비 없이 자신이 그때 기분에 맞추어 택하는 길이 아니다. ‘적당한 길’이란 수 십 년 간 김장김치를 담근 어머니가, ‘적당한 양’의 소금을 손에 쥐고 배추 위에 ‘대강’ 뿌리는 솜씨다. ‘적당한 길’이란 마라톤 선수가 42.195㎞를 바람 부는 방향, 온도, 습도, 도로 사정, 자신의 건강 상태, 그리고 자신이 현재 달리는 구간에 대한 정보 등을 종합하여 자신도 모르게 ‘적당히’ 발을 한 발씩 도로에 디디고 손을 발에 맞추어 앞뒤로 흔들고, 시선을 자신이 편한 상태에 고정하는 감각이다. 마라톤 교본을 섭렵했다고 해서,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시도하는 과정에, 수많은 시행착오, 반성, 자기 수련과 인내, 연습의 과정이 부재한 상태로, 자신이 그 일을 멋지게 완수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마음이 ‘자만’(自慢)이다. 헬리오스는 파이톤의 얼굴과 몸에서 자만을 보았다.
파이톤은 자만에 가득 차, 태양전차에 올라 말의 고삐를 잡았다. 태양전차의 말은 우주와 천체를 움직이는 강력한 동물이다. 자신이 이 동물보다 힘과 권위가 있어야, 말이 순종할 것이다. 그는 당나귀도 조절할 능력이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태양전차위에서 깨닫는다. ‘자만’하는 자는 자신이 위험에 빠지는 운명의 순간에 가서야, 자신의 위치를 선명하게 본다. ‘자만’의 가장 큰 증상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자만하는 자는 장님병에 걸린 사람이다. 태양전차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위험한 길에 들어섰다. ‘자만’한 자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남들에게 커다란 해를 끼친다. 전설에 의하면, 파이톤이 태양전차에 불을 내고 추락하는 길이 ‘은하수’가 되었다. 태양전차는 중심을 잃더니 지상에 너무 낮게 내려와 추락하였다. 제우스신은 우주의 질서를 파괴한 파이톤을 번개를 던져 죽게 만들었다. 독일기업 폭스바겐은 2002년 최고급 승용자 파이톤을 출시하여 수련을 통해 자기를 완성한 자들을 초대한 것 같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임무에 알맞은 연습과 수련을 거쳤는가? 나는 스스로 ‘천상의 전차를 몰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는가?

그림 설명
<파이톤의 추락>
제작연대: 1700-1711
조각가: 도미니크 레페브르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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