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 바꾸기... '고정석' 없앤 야후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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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기자
입력 2017-08-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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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20년 전 설립한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Yahoo Japan)이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실험을 시작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야후 재팬은 2016년 10월 본사를 도쿄 치요다구 키오이쵸(東京 千代田區 紀尾井町)에 위치한 ‘키오이타워’로 옮긴 뒤 책상을 지그재그로 배치하고 좌석을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는 ‘프리 어드레스(Free address) 제도’를 도입했다.

또 기존 신규채용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해 30세 이하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입사 신청이 가능하도록 채용의 문을 활짝 열었다. 재택근무도 월 5일 허용하고 있다. 현재는 주 4일제 근무 도입도 검토 중이다.
 

[야후 재팬 본사는 지정석이 없다 (사진제공=야후재팬) ]


일본 정부는 민간 기업으로 하여금 일하는 방식을 바꾸도록 장려하고 있다. 개개인의 라이프 사이클, 능력, 환경에 맞는 다양하고 탄력적인 근무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동제도와 기업문화를 탈바꿈시키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일하는 방식을 개혁하는 업무를 국가 정책으로 지정했으며, 후생노동장관이 이를 겸임하게 했다.

◆ 야후 재팬은 왜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고 할까

야후 재팬이 일하는 방식을 변경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먼저 구글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국내 헤드헌팅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기업은 구글 재팬이다.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이 가장 옮기고 싶어하는 직장이 바로 구글 재팬이다. 인기의 비결은 높은 연봉과 자유로운 근무다.

야후 재팬은 실제 사내의 우수한 인재들이 구글로 이직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방지하고자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프리 어드레스, 재택근무 도입도 이 같은 일환이다.

야후 재팬이 프리 어드레스, 재택근무 등을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PC보다 스마트폰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굳이 사무실 책상을 지키지 않아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 업무를 보는 야후 재팬 직원들 (사진=야후재팬)


또 매일 똑같은 사람이 옆에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곁에서 일을 하게 되면 새로운 대화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 속에서 이노베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야후 재팬 인사담당 임원은 현지 매체에 “사무실에 나올 필요는 없다. 근처 카페가 사무실보다 더 집중해서 일하기 좋다면 그곳에서 하면 된다. 태풍이 상륙해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그 비를 맞으며 회사에 나와 일할 필요는 없다”고 제도 도입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 프리 어드레스 전용 가방도 등장

일본 최대 문구 제조업체 코쿠요(KOKUYO)는 2016년 12월 프리 어드레스를 도입한 기업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백(mo·baco)'을 선보이기도 했다.

노트북과 서류, 서적 등 일하는데 필요한 물품을 수납해 휴대할 수 있는 가방이다. 특히 이 가방은 책상 위에 두면 내용물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A4용지를 담는 파일 박스와 비슷한 크기여서 사물함에 수납할 수도 있다. 측면에는 사용자 이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함 홀더도 부착됐다.
 

코쿠요의 모바일 팩은 프리 어드레스 제도의 도입과 함께 출시됐다. (사진=코쿠요) 


◆ ‘프리 어드레스’ 1년 해보니...

프리 어드레스 제도를 도입한 후 대부분의 임직원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문제도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좌석 고정 현상이다. 정해진 자리 없이 떠돌다 보니, 자신이 마음에 드는 자리가 생기면 그 자리를 계속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물건을 놓고 다니는 직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프리 어드레스 제도의 원칙은 외출을 하거나 혹은 회의 등으로 장시간 동안 자리를 비울 때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물건을 치우는 것이다. 물건을 계속 자리에 두면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자리가 고정돼 프리 어드레스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

또 프리 어드레스 제도를 도입하면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기도 했다. 
 

야후 재팬 직원이라면 사옥 내 마음에 드는 자리에서 어느 곳에서든 일할 수 있다. (사진=야후재팬) 


◆ 처방전은 규칙과 매너 지키기

프리 어드레스 제도를 취지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그에 따른 규칙을 잘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본에선 프리 어드레스 제도를 도입한 기업을 위해 다양한 사전 연수를 시행하고 있다.

규칙을 위반한 사원에 대해 직접 지적하기가 어려운 경우, 정례회의 등을 통해 철저한 규칙 지키기를 반복적으로 주입해야 진정한 프리 어드레스 효과가 나타난다는 평가다.

이 밖에도 자리에서 잠을 자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등 주위 사람들을 배려한 매너도 철저히 지키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메일로 소통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무실에서 전화를 사용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줄었다. 굳이 전화통화를 해야 할 때는 자리에서 멀리 떠나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서 통화하는 매너가 중요하다.

자유롭게 원하는 자리에 앉다 보니 팀원들과 소통량이 줄었다는 문제점도 나오는데, 이 문제는 팀원들이 솔선해 적극적으로 소통에 임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1주일에 한번 팀원끼리 점심을 함께 하는 날을 정하는 것도 줄어든 소통을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프리 어드레스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신입사원들이 선임 혹은 상사 옆자리에 앉아 업무를 배울 수 있었지만, 프리 어드레스 제도 하에선 선임과 멀리 떨어져 앉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직접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업무를 배운다는 목적을 갖고 선임 자리 근처에 앉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 日 정부, 일하는 방식 개혁 ‘부업·겸업’도 중요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은 개인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외에도 부업과 겸업을 주요 테마로 꼽았다.

일본 정부는 △희망자는 원칙적으로 부업과 겸업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 △부업과 겸업은 새로운 기술개발, 오픈 이노베이션, 창업 수단,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라는 점에서 유효성을 갖는다 등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일본은 고령화, 노동인력 부족, 100세 시대 등을 앞두고 지금과 같은 방식의 근무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부, 기업, 사회가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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