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문샤인'…보름달, 그믐달이 아닌 '반달정책'이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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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정치・사회부 부국장
입력 2017-08-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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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문 베이(Half Moon Bay·반달만)는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심장’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가까운 아름다운 해안이다. 짙푸른 태평양을 향해 탁 트인 시야, 시도 때도 없이 휘덮는 북캘리포니아 특유의 어스름한 바다안개, 모래 언덕과 울창한 푸른 숲,  한여름에도 차디찬 바닷바람의 짠내와 어디선가 풍겨오는 바비큐 내음이 뒤섞인다. 왜 이곳이 반달만으로 불릴까. 여기 뜨는 보름달(Full moon)은 그야말로 두둥실, 휘영청 크고 밝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산 미국인들은 보름달이 너무 밝고 커서 부담스럽다고 한다. 반대로 그믐달(Dark moon)부터 달이 안 뜨는 삭일(朔日·매달 음력 초하룻날)까지는 어둠의 공포가 엄습한다. 보름 시기에는 자살이, 그믐 때는 사건사고가 빈발하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반달일 때가 가장 운치 있고 아름답다. 밤 마실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 번진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달빛정책(Moonshine policy)'으로 불린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에서 비롯된 말이다. 문 대통령의 영문 성인 ‘문(Moon)’을 차용했다. 햇볕정책, 달빛정책 모두 대북 포용론을 큰 줄기로 삼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햇볕이든 달빛이든 그 밝기 조절이 중요하다. 하프 문 베이의 달빛을 보면 더욱 그렇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폭탄’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엄습한다. 매우 어두운 시기, 그믐이다. 언제가 삭일일지 예측조차 힘들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마다 문 정부는 “단호한 대응”을 말한다.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남북 군사회담 및 남북 적십자회담 제안,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제안 등 ‘보름달’ 비추기를 그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7월 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베를린 구상’을 공개했다. 물론 제재-대화 병행이라는 큰 줄기를 밝힌 것이지만, ‘보름달’ 시기는 아니었다. 같은 달 28일 북이 또 한 번 ICBM을 쏜 이후 대북 전단 살포 금지를 검토하기도 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북 전단 문제는 베를린 구상 후속조치 차원에서 검토한 바 있다”고 시인했다. 대북 전단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우리의 ‘무기’다. 역시 그믐 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달빛정책에 얼핏 ‘그믐달’의 기운이 엿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견딜 수 없는 순간까지 도달해야 한다··· 지금은 제재와 압박을 해야지 대화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살짝’ 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한 마디로 ‘싸우지 않겠다’는 ‘평화포고’였다.

“어둡고 외로워라 밤이 깊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튼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는 이 노래에 맞춰 서로 팔과 다리를 부딪치며 ‘맞짱춤’을 췄다. 그러고 나서야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그믐달 ‘맞짱’을 떠야 보름달의 ‘환호’가 값지다. 이를 위해서는 ‘중용의 반달’이 떠야 한다. 문 대통령의 달빛정책이 또 한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목적으로, 단기간의 성과에 연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무엇보다 실용적인 대북정책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달빛정책은 중용의 ‘반달빛정책’이 되어야 한다. 보름과 그믐의 '밀당(밀고당기기)'을 제대로 해야 성공한 달빛정책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어느 때는 밝디 밝은 보름달 같은 빛을 쏘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믐 기간에는 어둠을 뚫는 준엄한 메시지, 초강력 경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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