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포스트] 통신비 인하가 논제로섬게임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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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수 기자
입력 2017-08-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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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영화 ‘컨택트’에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을 마주친 인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외계인이 어떤 연유로 지구에 왔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외계인과의 소통에 나섭니다.

영화는 괴생명체와 조우한 인간을 내세워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소통이야말로 ‘논제로섬게임(non-zero sum game‧한쪽의 이득이 반드시 다른 쪽의 손해로 이어지지 않는 게임)’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 속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수단 역시 소통입니다.

사실 영화 속보다는 현실세계에서의 소통이 더욱 중요합니다. 외계인이 침공하는 극한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이 소통의 부족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통신비 인하를 놓고 제로섬게임을 넘어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정부와 이동통신사간의 갈등도 근본적인 원인은 소통의 부재에서 나옵니다. 양쪽의 주장 모두 ‘틀린’ 점은 없어 보입니다. 국민들이 높은 통신요금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정부 측의 주장이나 요금인하 여력이 없다는 이통사의 주장 모두 거짓은 아닙니다.

사실 ‘기본료 1만1000원 폐지’ 공약을 내걸었을 시점부터 지금의 갈등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통신이 필수재로 자리 잡은 데 비해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면 무조건적인 요금인하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 것이 아니라 통신요금을 인하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함께 모색했어야 합니다. 이 엉뚱한 공약이 탄생한 원인은 결국 소통의 부재였습니다.

지금 가장 난감한 처지에 놓인 것은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입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져있는 상태니 정책을 실행하기는 해야 하는데,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기본료 인하가 어려우니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를 내겠다며 선택약정할인율 25% 상향조정이라는 카드를 들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난공불락입니다. 소급적용이 불가능하니 실질적 통신비 인하 효과가 없다는 비판과 과기정통부를 상대로 소송하겠다는 이통사의 강력한 반발을 동시에 마주한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의 사태가 정부를 향한 소송전으로 비화된다면 모두가 지는 게임이 됩니다. 이통사는 이통사대로 국민적 컨센서스에 반하는 소송으로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통신비 인하는 뒷전으로 밀려 언제 실현될지 불투명한 상태가 될 것이 뻔합니다.

통신비 인하가 모두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논제로섬게임이 되려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야 합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는 통신비 인하 효과를 만들어내려면 이통사뿐만 아니라 높은 통신비에 책임이 있는 단말기 제조사, 포털 등을 포함한 다양한 주체들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야 합니다. 불과 통신비가 이슈로 떠오른지 몇 개월 만에 다양한 세부방안들이 통신비 인하 방안으로 제시됐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면 생산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당장 실현가능하다고 정책을 강행해 화를 자초하기보다는, 잠시 숨을 돌리고 재정비하는 절차가 필요해 보입니다. 지금은 통신비 인하 자체를 중‧장기적 목표로 잡고 논의기구 등을 조직해 가능한 방법들이 무엇인지 논의하고 방향을 잡으며 소통부재를 해소하는 과정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일시정지된 공약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형성된다면, 이 역시 소통이 해결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가 봅니다. 극중 주변인물들은 외계인과 단어 하나하나씩 주고받으며 소통을 진행하는 주인공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결국 누군가 더 빨리 결과를 내놓을 수 없냐고 재촉하자 주인공은 이렇게 답합니다.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에요. 그러니 이게 가장 빠른 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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