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의 골목길 경제] 지역 경제의 미래: 균형 발전 vs 지역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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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린 초빙논설위원·연세대국제대학원장
입력 2017-08-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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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종린]


문재인 정부의 지역 비전은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이다. 참여정부가 사용했던, 귀에 익은 슬로건이다.

정책 수단에는 차이가 감지된다. 참여정부의 우선순위가 공공기관 이전, 전략산업 육성, 지역혁신체계 육성 등 자립 역량 강화였다면, 문재인 정부는 중앙정부 권한을 지역 정부에 대폭 이관하는 자치분권을 강조한다.

그중 핵심은 지방 재정 확충이다. 현재 8대2인 국세·지방세 비율을 점진적으로 6대4로 조정하는 것이 목표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현재 여건에서 7대3으로 만드는 데 약 20조원, 6대4로 만드는 데 50조원의 추가 재원이 소요된다"고 설명한다.

중앙 사무의 지방 이관, 17개 시·도지사가 주축이 되는 '제2국무회의', 지방재정 확대 등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자치분권 개혁은 법 개정만으로 실현할 수 있는 단순 사안이 아니다. 여당이 자치분권 개헌안을 준비하고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이유다.

균형 발전의 명분은 충분하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적한 대로 "현재의 중앙집권적 시스템은 국민을 방관자로 만든다". 지역 발전에서도 국민은 주체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 중앙정부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용창출과 산업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은 수도권의 결정을 따르는 소극적 자세를 취한다.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성장 동력 창출에 대한 의지를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주체의 혁신이 원동력인 창조경제에서 지역 불균형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과제다. 최대한 많은 시민이 지역 경제의 생산성 향상과 고용창출 과정에 참여해야 진정한 의미의 지식기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균형 발전과 지역 발전의 차이

문제는 방법이다. 균형 발전의 명분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실제 정책 선택을 논의하는 각론으로 가면 우선순위를 놓고 충돌한다. 이원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적한 대로 지역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균형 발전 vs 지역 발전'이다.

균형 발전과 지역 발전은 장기적으로 상호 보완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문재인 정부는 곧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치분권으로 더 큰 권한을 얻은 지역 정부로 하여금 수도권 자원을 끌어오도록 하는 균형발전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자생적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지역 발전을 유도할지 결정해야 한다.

균형 발전이 필연적으로 수도권 규제와 자원 분배 정책을 동반하는 반면, 지역 발전은 규제 특혜보다는 지역 정부의 권한과 책임의 조정 등 독립적 성장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인센티브 디자인에 역점을 둔다. 14년 전 참여정부가 균형 발전을 선택했다면, 현 정부의 선택은 지역 발전이 돼야 한다.

성장 자원을 공유할 여력 없는 수도권

그 이유는 첫째, 과거와 달리 수도권은 다른 지역에 성장 자원을 분배할 여력이 없다는 데 있다. 주력 산업의 불경기로 수도권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올바른 선택은 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한 '지역 주도 성장' 전략이다. 한국과 달리 다른 선진국들은 지역 주도 성장에 의존한다. 모두가 선망하는 실리콘밸리도 캘리포니아 북부가 배출한 지역 산업이다.

한국의 지역 주도 성장이 유독 부진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중앙 중심 성장의 대안으로 추진할 만큼 지역발전에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2010년까지는 국가 주도에 의한 성장으로 충분했다.

창조경제가 요구하는 지역 기반 혁신 생태계

두 번째 이유는 창조경제 시대가 혁신 생태계 중심의 지역 산업 구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이 일정 수준 작동한다고 해도, 장기적 측면에서 지역이 주도하는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지역 주도 성장의 원동력은 지역 기반 기업생태계다. 현재 우리나라는 관리 경영과 연구·개발(R&D)은 수도권에서, 생산은 비수도권에서 수행하는 국가 산업 체제를 운영한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위해 특정 지역에 공단을 조성하고 기획, 연구개발, 제조, 서비스 등 산업의 핵심 기능을 지리적으로 분산시킨 이 모델은 혁신과 창업을 통한 창조경제 실현을 저해한다. 각 지역에 다양한 분야의 핵심 인재들이 집적돼 혁신이 일어나는 생태계가 미래 지향적인 지역 산업 체제다.

혁신 생태계는 메가 시티 규모의 도시를 요구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북캘리포니아 사우스베이(South Bay) 지역의 인구는 350만 명으로 부산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창조도시의 소형화는 더 가속될 전망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미국과 영국의 대도시를 떠나 '작은 도시'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50만~100만 규모의 도시가 인기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도시 크기와 창조 능력이다. 도시가 너무 크면 창조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에서는 차분히 사고할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수도권이 혁신을 일으키고, 개성과 창의력 있는 인재를 충분히 배출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재의 집중을 방해하는 사람과 행사가 매우 많다.

자생적 산업 생태계로 성장하는 지역경제

창조 기업과 산업을 창출하는 혁신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지역 단위 경제 시스템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혁신 생태계 유지를 위한 도시 규모는 더욱 감소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경험을 볼 때 이제 인구 50만~100만 규모의 '작은 도시'도 충분히 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성장 잠재력의 한계를 드러낸 국가 경제를 '작은 도시' 단위의 지역 혁신 생태계로 분산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다. 한 지역의 막대한 경제적 우위를 가정하고 규제와 재분배를 통해 지역 간 균형을 추구하는 '균형 발전' 정책은 지역 주도의 자생적 산업 생태계 구축을 방해할 수 있다.

모든 지역이 고유의 특색과 장점을 살린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로 경쟁하고 상생하는 '지역 발전'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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