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8] 어머니는 어떻게 영웅을 길렀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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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08-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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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몽골비사에는 원칙 있는 어머니 호엘룬이 키운 아이들이 절도 있는 현자(賢者)가 됐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호엘룬의 아이들은 절도 있는 현자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테무진이 그의 이복(異腹)동생 벡테르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노획물의 배분에서 비롯됐다. 벡테르의 죽음과 관련해 몽골비사는 노획물 분배에서 비롯된 이복형제간의 갈등이 유혈극으로 이어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발단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주도권 다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테무진을 가족의 우두머리로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사건의 발단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테무진은 맏아들로서의 자신의 권위가 도전 받았다고 판단했고 죄를 저지른 가족을 처벌하는 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벡테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감지하고 동생 베르구테이만은 골롬타의 보존을 위해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골롬타는 불씨를 지켜가는 화로를 일컫는 말로 씨를 보존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배다른 형제들은 같은 가계가 아니라 엄연히 다른 가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강한 뜻을 읽을 수 있다.

어쨌든 벡테르의 부탁으로 살아남은 베르구테이는 이후 이복형인 칭기스칸의 권위에 추호도 도전하는 일이 없이 철저히 칭기스칸에게 복종하며 봉사했다. 그런 자세 때문에 베르구테이는 백 살 가까이 장수할 수 있었다. 여기서 칭기스칸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적이나 반대자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마 했던 사건이 벌어진 것을 안 호엘룬의 충격과 절망은 컸다. 그녀는 온갖 비유를 동원해가며 테무진과 동생 카사르에게 마구잡이로 욕설을 퍼부었다.

"제 형제를 죽인 구제 불능의 망종들!
내 뜨거운 음부에서 기세 좋게 나올 때
네놈은 제 손에 검은 핏덩이를 쥐고 태어났다.
자신의 태반을 물어뜯는 카사르 개처럼,
바위에서 덤벼드는 표범처럼,
스스로 분노를 누르지 못하는 사자처럼,
살아있는 것을 통째로 삼키는 망구스(이무기)처럼
제 그림자에 덤벼드는 해동청(송골매)처럼
눈보라 속에서 밀려드는 이리처럼 .........
그렇게 자기 형제를 죽였다.
네놈들이 어떻게 살고자 이따위 짓을 벌였느냐?"

호엘룬의 호된 꾸짖음에 테무진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엘룬의 분노는 무엇보다 형제들이 분열한다면 보르지긴(칭기스칸 가계)가문의 복수도 이루지 못하고 가계를 지켜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호엘룬이 실질적인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훼손된 데 대한 분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때 테무진은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호된 꾸지람에 반발심을 가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모자간의 갈등이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 근거로 나중에 테무진이 칸이 된 뒤 시행한 분봉제도를 들고 있다. 분봉(分封)제도는 건국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다.
 

[사진 = 몽골족의 조모인 알란고아 추정도]

그 대상자는 칭기스칸의 자식들과 형제들, 어머니 그리고 개국 공신이었다. 칭기스칸은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공로를 찬양하면서도 실질적인 보상은 어머니와 막내 동생에게 공동포상으로 일만의 백성을 주었다.

하지만 그 것은 막내 테무게와 공유된 것이기 때문에 말자상속의 원칙상 가문의 막내가 봉양의 의무를 가진 것을 감안하면 그녀는 사실상 제외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보르지긴 가문을 중요시하는 호엘룬은 칭기스칸의 그러한 조치에 대해 아무런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실제로 벡테르 살해 이후 칸이 되는 과정과 그 이후를 보면 아들은 항상 어머니의 말을 수용하고 따르는 자세를 보였다.
특히 테무진이 초원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그가 만들어간 소중한 인간관계였다.
테무진이 인간관계를 소중히 가꾸어 간 것은 그의 천성에서 기인하는 면도 컸겠지만 그에게 사람을 감싸 안는 포용력을 길러 준 어머니 호엘룬의 영향이 컸다.
 

[사진 = 몽골 초원의 연쇄 번개]

"사람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고 그들을 뭉치게 하라."는 것은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동안에 호엘룬이 항상 테무진에게 강조해 온 가르침이었다.

테무진의 아내 부르테가 메르키드족에 납치됐다가 메르키드의 씨를 배어 돌아왔을 때 아내를 받아들이고 아이까지 아들로 인정하라고 설득한 것도 호엘룬이었다.
호엘룬은 테무진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아들이 칭기스칸이 된 후 여러 전쟁을 치르는 시기에 전쟁고아들을 길러 몽골의 전사로, 나라의 재목으로 키워내는 일은 어머니 호엘룬의 몫 이었다. 그것이 몽골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유일한 역사서 몽골비사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양아들 시기 쿠두쿠도 그렇게 길러진 인물이다. 또 칭기스칸의 4준마 가운데 한사람인 보르클도 줄킨부 징벌때 전장에서 발견돼 호엘룬에 의해 길러진 인물이다.

호엘룬은 사람을 키워내는 능력과 인맥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해서 칭기스칸은 칸이 된 후에 어머니의 그 점을 칭찬했다.

"나의 어머니는 시기 쿠투쿠, 보르클, 쿠추, 쿠쿠추 너희들 넷을 다른 부족 목영지 땅바닥에서 얻어 당신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고 아들삼아 돌보며 기를 때 너희들 목을 잡아 늘여 사람과 동등하게 만들고 너희들의 빗장뼈를 당겨 올려 남자와 동등하게 만들어 당신의 아들들인 우리에게 동무 그림자를 만들자고 길렀다. 너희들은 기른 공과 은혜를 나의 어머니에게 확실하게 보답했다."

그렇지만 그런 어머니에게 칸이 된 후 많은 권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은 칭기스칸의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중에 칭기스칸에 의해 멸망하는 호레즘 제국은 군주인 무하마드 샤와 권력을 지닌 그의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멸망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됐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호엘룬은 칭기스칸이 호레즘 정복에 나서기 전인 1217년 칭기스칸 보다 10년 먼저 죽는다. 만일 어머니 호엘룬이 없었다면 몽골제국은 만들어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들어졌다 해도 일찍 무너졌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몽골인들이 호엘룬을 영웅을 길러낸 어머니로 존경하고 칭송할 만하다.
호엘룬이 숨진 뒤 그녀에게는 선의황후(宣懿皇后)라는 시호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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