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도시이야기] 입추와 말복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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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지역전문가·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입력 2017-08-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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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주]


<재미있는 문화마당, 윤주의 도시이야기>

입추와 말복 사이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개가 청각이 발달했다고는 해도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리 만무하지만 이 시기 벼 자라는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만물이 영그는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와 말복이 시기적으로 워낙 가까워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말복이라 개 이야기들을 더러 하겠지만, 우리 주변엔 개와 관련된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사가에서 키우던 ‘마루’와 청와대로 입양된 유기견 ‘토리’가 ’퍼스트 도그‘가 되면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SNS에서도 개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개’를 뜻하는 글자 중에 사람에게 잘 길들여진 ‘큰 개’를 뜻하는 ‘오(獒)’라는 한자가 있다. 전북 임실군에는 바로 그 한자를 쓴 오수(獒樹)면이 있다. 큰 개 ‘오(獒)’와 나무 ‘수(樹)’ 자를 합친 ‘오수(獒樹)’가 지역명이다. 모든 지역의 이름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친숙한 동물이나 용과 같은 신화 속 영물을 지명 속에 포함시켜 왔다. 그러나 막상 이와 같은 지명의 사연이 오늘날까지 도시 속에 큰 의미로 남아 있는 예는 많지 않다. 더구나 오랫동안 둔덕방과 남면으로 불리던 곳이었으나 특별한 개의 사연으로 인해 오수로 이름을 개명하게 되었다니 그 이유가 더욱 궁금하다.
지역의 이름까지 바꾸게 한, 천년을 이어 내려온 이야기는 이렇다. 신라시대 이 지역에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키우는 개를 몹시 사랑하였다. 하루는 그가 외출했다가 술에 취해 길에서 잠이 들었는데, 들불이 일어나 사방이 타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인을 따르던 개는 가까이 있던 내에 뛰어들어가 몸을 물에 적셔 주인 주위에 물기를 뿌렸다. 이를 반복해 주인은 살렸으나 개는 기진해 죽고 말았다. 주인이 술이 깬 뒤 그 모습을 보고 슬퍼하며 무덤을 만들고 지팡이를 꽂아 표시하였더니, 그 지팡이에 잎이 피어나 나무가 되었다 한다.
오수에서는 당시 의견(義犬)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오래전에 세워진 의견비(義犬碑)는 마모돼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지만 일부는 해독이 가능, 오수견의 충성심을 기리고 있다. 다양한 지역 축제와 함께 이야기 속에 남아 있는 오수견의 모습을 복원하려는 노력도 함께 연구되고 있다. 오수견은 몸에 물을 묻혀 주인이 누웠던 주변 잔디를 적셨으므로 장모종이었을 것이라는 추정과 함께 덩치도 진돗개보다 조금 큰 중형견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더불어 임실군은 의견의 본고장으로서 이미지를 구축해 가며 지역적 특성을 살려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있다.
동물과 도시가 얽히기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그림동화의 이야기들이 도시를 따라 이어지는 관광가도 중 하나인 메르헨가도 끝에 브레멘(Bremen)이 있다. 브레멘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지만, 독일인들에게는 ‘동물음악대’의 도시로 각인돼 있다. 도시를 상징하는 동물음악대의 이야기들이 지역의 전통적이고 고풍스러운 건축들과 어우러져 있는 브레멘을 보면, 도시의 브랜드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가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렸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마음을 나누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까지 움직이는 힘이 있다. 종로구 청와대의 퍼스트 도그에서 오수면의 의견과 브레멘 악대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 마음을 나누고 움직이게 하는 반려동물의 존재 또한 도시의 귀중한 자원이다.
입추와 말복 사이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서 예로부터 함께해 온 그들이 도시의 상징을 넘어 성큼 활력으로 자라나는 자원이 되길 기원해 본다.

*포토 스팟 : 순천완주고속도로에 위치한 오수휴게소에 가면 반려견 사진 콘테스트를 하는 펫팸 레스토랑과 오수의 개 동상이 있다. 또한 독일의 메르헨가도의 브레멘에는 동물음악대의 마스코트와 어우러진 곳이 많이 있다. 그중 브레멘 시청사 옆 브레멘 음악대 동상의 당나귀 앞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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