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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동영상-로컬 르포] 부산도시공사 개발로 수백년 전통의 '종가' 고택과 나무 철거 '위기'

(부산) 이채열, 박신혜 기자입력 : 2017-08-03 17:26수정 : 2017-08-0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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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터가 생태공원 조성 부지라더니, 수 백년 살아온 종가 부지의 고택과 나무를 철거하라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부산시 기장군 월광면 삼성리 후동마을에서 600여 년동안 18대째 살아온 청도 김씨 후손 삼남매들의 허망한 목소리가, 공사 현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지금, 이 일대는 부산도시공사가 도시개발을 목적으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곳에 총 9654세대, 2만 5천여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기장경찰서 맞은편, 교량을 지나면, 마을이 사라져 공사 차량들만 다니는 허허벌판. 그 가운데 오래된 고택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수목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후동마을은 600여 년 전 청도 김씨(淸道金氏) 적산공파의 후손 [신라 경순왕의 17세손 김지대(金之岱)의 후손]인 김시우(金時雨)가 정착하며 자연스레 형성된 마을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여 세대가 논 농사를 하면서 주거를 했던 곳이다.

그러나 부산도시공사의 일광지구 개발 계획에 따라, 지난 3월부터 마을 주민들이 인근으로 이주를 시작했고, 지금은 청도 김씨 적산공파의 '종가(宗家)'만 남은 채, 마을은 사라졌다.

부산 기장군 후동마을에 남겨진 청도 김씨 적산공파 종가와 주 변의 노거수 모습. 이 곳은 오는 8월 11일 철거될 전망이다.[사진=박신혜 기자]


현재 남아 있는 종가는 1929년 만들어진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다. 기와집 건설에 사용된 목재는 철마 등 지역에서 옮겨와 벌레를 막기 위해 훈제 처리됐고, 쇠 못 없이 나무, 흙, 돌로만 지어진 집이다. 최근 근대 역사 문화물로 인정받은 송정역(1935년)보다 더 오래됐고, 원형도 잘 보존돼 있어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종가 주변에는 평균 400년 이상 된 모과나무, 엄나무, 배롱나무, 팽나무 등 노거수 10여 그루가 고택과 잘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약 500년으로 수령이 추정되는 모과나무는 이 곳에 처음 자리잡은 시조가 자손의 번창을 기리며 심은 것으로, 현재도 가을이면 모과가 풍성하게 열릴 정도로 건강하다. 엄나무(약 400년), 배롱나무(약 200년), 팽나무(약 200년), 청실배나무(약 300년) 등 이 곳의 나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지금도 꽃과 열매를 피우고 있다.

그런데, 근현대적 유물인 김씨 종가와 수백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고목들이 오는 8월 11일이면 사라질 처지다. 부산도시공사가 마지막 남은 이 곳에, 퇴거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종가가 있는 이 곳은, 향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면 생태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생태공원은 자연생태계를 보호ㆍ유지하면서 자연학습 및 관찰, 생태연구, 여가 등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 인근에서도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공원을 말한다.

그런데도, 도시공사는 고택과 고목들의 역사적 가치는 뒤로 하고, 철거할 예정이라고 밝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청도김씨 후손인 김영혜씨는 "기장군보, 면보를 살펴봐도 이 곳, 특히 저희 집은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철거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뒤, "공사에 몇 차례 철거 계획 철회를 요청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택과 수목들을 이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최종 퇴거명령이 떨어졌다"며 하소연 했다.

실제, 도시공사는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근거로, "나무 두 그루를 제외한 나머지는 벌목하고, 고택은 철거 후 재건축하겠다"는 기존 계획에 따라, 지난 7월 28일 철거를 위한 집행관과 트럭을 보냈다.

종가에 들어 있던 모든 짐을 철수하는 등 철거가 진행되자, 김씨 종가 후손들은 "더운 여름 날씨로 인해 기와집을 분리할 수 있는 목수도 구하기도 힘든 상태이고 이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태다. 특히 나무 같은 경우는 여름철에 이식할 경우, 나무의 생존률이 50%도 되지 않은 만큼, 철거 및 나무 이식 시기를 고려해 달라"고 시간 연장을 재 요청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지역 정가 및 인사들이 적극 나서 기한을 연장해 달라며 강력히 요청했고, 공사는 한 발짝 물러나는 듯, 8월 11일까지 시한을 연장했다.

조용우 더불어민주당 기장지역위원장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과거 역사와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스토리텔링하는 시대에 지역에 있는 소중한 근대 문화유산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마구잡이로 훼손하려는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소중한 문화유산인 한옥과 노거수들을 반드시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도시공사 관계자는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지체할 수 없다. 환경 평가를 거쳐 필요한 나무는 일부 보존키로 결정한 상태다. 기와집의 문화재적 가치도 앞서 다 확인했다"며 "적법한 절차에 의해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퇴거 집행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번 택지조성 공사로 인해, 마을을 휘감아 도는 개울도 없애고, 새로 물줄기를 내면서, 기존 개울에서 서식하고 있는 개구리, 도롱뇽, 두꺼비와 택지 조성으로 고라니 등 동물들도 서식지를 잃게 됐다.

모두가 떠난 이 마을에, 고즈넉이 남아 있는 고택을 두고 보상을 더 받고자 '알박이'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의 소리도 섞여 있다. 그러나 청도 김씨 삼남매는 억울함도 잊은 채, 개구리, 도롱뇽, 두꺼비 등을 바가지에 담아, 다른 곳으로 이전 시키고 있다. 심지어 길을 잃고 집으로 내려 온 고라니 새끼들도 가슴에 품은 채 산 속으로 돌려 보내주고 있다. 집터와 환경, 그리고 후손들에게 물려준 문화적 유산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김 씨는 "다른 걸 바라는 건 없다. 이 집과 나무를 살리고, 후손들에게 물려주기만 바랄 뿐이다. 공사에서 마음만 있다면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철거가 아닌 다른 대안을 모색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마지막 부탁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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