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 칼럼] 문제는 실행력이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조성권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08-02 20: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조성권]

문제는 실행력이다.

조성권(본사 초빙논설위원)


지난달 19일 ‘100대 국정과제 정책콘서트’가 전국에 생중계됐다.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지는 탈권위와 소통을 보며 국민들은 신선하다는 박수를 보냈다. 이날 발표된 국정비전과 5대 국정목표, 20대 전략, 100대 국정과제로 이뤄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안내하는 나침반이자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실천계획서다. 새 정부의 국가비전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서 가장 우선하는 원칙이며 새 정부의 핵심 가치다. 보태거나 뺄 거 하나 없는 모두 맞는 말이다.

발표를 보고 문득 ‘바시다’라는 우리말이 떠오른다. ‘탈곡(脫穀)하다’의 옛말이다. 곡식의 이삭을 비비거나 훑어서 낟알을 털어내는 일을 말한다. 명사형이 ‘바심’이다. 곡식 중에 가장 잘 털리는 건 콩이다. 바싹 말리면 두드리기만 해도 털린다. 깨도 마찬가지. 살짝 털기만 해도 알이 우수수 잘 쏟아져 탈곡이 재미있다. 이제 막 결혼해서 재미나게 사는 신혼부부를 보고 우리가 흔히 쓰는 ‘깨가 쏟아진다’는 말은 그렇게 생겨났다.

잘 안 털리는 게 오곡(五穀) 중 하나인 조(粟)다. 이삭이 질겨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온갖 방법으로 비비고 문지르면서 애를 써야 간신히 좁쌀을 얻을 수 있다. 조바심을 할 때는 힘만 들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조급해진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봐 마음을 졸인다는 뜻의 ‘조바심’은 그래서 나왔다. 조 수확은 손이 많이 간다. 걷어들인 후 눌(가리)을 만들어 저장한다. 틈이 날 때마다 낫으로 이삭을 따서 모아두었다가 도리깨로 타작(打作)한다. 도리깨질에서 발전한 게 연자매다. 맷돌에 조 이삭을 놓고 돌려 좁쌀을 얻는다.

농사는 짓는 일보다 거두는 일이 더 어렵다. 100대 과제는 씨 뿌려졌다. 그중에는 콩, 깨도 있고 조도 있다. 국민과 함께 가꾸어 가겠다고 한 약속이다. 그 약속으로 나라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고, 5년 후 내 삶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림을 그려본다. 그러니 국민들은 당연히 궁금해하고, 진행과정을 소상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100대 국정과제는 국민들이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체감할 수 있어야 그 존재 의미가 있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국민들은 그 약속이 얼마나 충실히 지켜지고 있는지를 눈여겨본다. 이날 문 대통령은 “새 정부 국정운영의 얼개를 완성하고 속도감 있게 실천해 가겠다”고 했다. 정부는 국정과제 발표에 앞서 두 달여 동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시작으로 사드 배치 중단, 탈원전, 최저임금 대폭 인상, 4대강 방류 등을 연일 쏟아내고 속도감 있게 밀어붙였다.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나게 보여줬다. 얼른 보면 실행력이 돋보인다. 국정과제도 그렇게 추진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실행력이 갖춰야 할 요소들이 안 보인다.

우선 이렇게 나라를 뒤흔들 대변환에는 ‘국민의 나라’답게 국민과의 소통이 따라야 관심과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모두 193쪽 분량의 국정운영계획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 ‘참여’(79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곧 활발한 소통을 말하는데 방향은 맞았으나 실제는 그러지 않아 아쉽다.
신고리 5∙6호기 일시 중단을 결정한 국무회의에서 불과 서너 명 발언에 이어 “일시 중단하자”고 대통령이 결정했다고 한다. 대선후보 시절엔 “가급적 증세를 않겠지만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증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증세 없이 추진하겠다던 재정계획은 다음날 증세론으로 급선회했다.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1년 해보고 속도 조절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결정은 대통령이 하더라도 충분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국민들은 기대한다. 결정 이후 자꾸 바뀌니 우려하는 소리가 많다. 이런 민망한 결정은 모두 조바심에서 나왔다. 조바심은 조급함이 낳는다.

내가 ‘안다’고 하면 지시하고, 내가 ‘모른다’고 하면 경청하게 된다. 지시하면 받아적고 딱 그만큼만 한다. 적어도 그런 결정은 전문가 집단이 오랜 토론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검증을 해야 한다. 그래도 늦지 않다. 임기 내에 다 마치지 못한 일은 다음 정권이 이어받는 전통을 국민은 바란다.
더욱이 이번 100대 국정과제와 487개 실천과제는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 개정이 필요한 법안이 342개. 정부는 이 가운데 88.8%인 304개를 앞으로 2년 안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비비고 훑거나 두드리는 방법만으로는 속도감을 맞추기 어렵다. 조바심만 더해질 뿐이다. 도리깨나 연자매 같은 조 터는 기술을 마련해야 이전 정부와는 다르다는 평가와 정책의 차별성을 완성할 수 있다. 정책은 부처에서 다듬고, 청와대는 정치에 나서야 한다. 꿈에도 생각지 못할 ‘큰 정치’가 실행력을 높이는 길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