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의 차이나 무비➂]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중국영화 ‘과일장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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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17-08-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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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 상하이 삶 고스란히 담아내…코믹 연출은 지금 봐도 수준급

중국영화 '과일장수의 사랑'의 한 장면[사진=바이두]
 

초기 중국영화 연출의 대부 장스촨(張石川)[사진=바이두]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과일장수의 사랑(勞工之愛情)’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 된 중국영화다. 영화는 1922년, 상하이(上海)에서 만들어졌다. 최초의 중국영화 ‘정군산’이 1905년에 나왔으니, 17년 동안 만들어진 영화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 사이에도 풍경과 뉴스를 찍었던 짧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군산을 찍었던 펑타이(豊泰) 사진관에 불이 나고, 중국영화의 중심은 다시 상하이로 옮겨갔다. 1913년 상하이의 출판사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이 활동사진부를 만들면서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상무인서관은 독자들이 교양을 함양하는데 영화가 유용한 역할을 해 주리라 믿었다. 출판사가 촉발한 영화 제작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무인서관의 기대와는 달리 다른 영화사들은 교양보다는 오락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과일장수의 사랑은 이후 상하이 영화 산업을 주도하게 될 명성(明星)영화사의 초기작이다. 명성영화사는 관객의 오락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1921년 창립 이후 코믹한 요소를 담은 시리즈 네 편을 연이어 만들었다. 과일장수의 사랑도 그 중 하나였다. 러닝타임은 22분, 단편영화다. 95년 전 무성 흑백의 스크린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시간 여행을 선물한다.

감독은 장스촨(張石川)이 맡았다. 연극계에 몸담고 있던 그는 필름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자 곧바로 영화 연출에 뛰어들었다. 중국영화 1세대 감독이다.

아세아영화사와 환선(幻仙)영화사 등 1910년대 초창기 중국영화를 주도했던 영화사에서 지금은 글로만 남아 있는 ‘못말리는 부부(難夫難妻)’, ‘아편의 원혼(黑籍冤魂)’과 같은 극영화를 연출했다. 과일장수의 사랑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상하이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총각의 사랑 이야기다. 원제는 ‘라오궁의 사랑’이다. ‘라오궁(勞工)’은 주로 육체 노동을 하던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편전쟁이 끝나고 개항, 신흥 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던 당시 상하이는 수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건설업과 운수업은 대표적인 산업이었다. 인력거를 끌 사람이나 ‘쿠리(苦力)’가 절실했다. 이런 수요에 부응해 전국 각지에서 젊은 노동력이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육체 노동은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쿠리는 특히 외지나 해외로 나간 노동자들이 힘들고 괴로운 일을 한다는 뜻에서 붙인 말이었다.

이 말이 영어로 건너가 ‘쿨리(coolie)’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만 봐도 당시 노동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된다.

돈을 좀 번 라오궁들은 안정적인 자기 가게를 갖고 싶어했다. 영화의 주인공 정씨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목수로 돈을 좀 벌어 모은 정씨는 시장에 과일가게를 냈다. 라오궁은 ‘노동자’라는 뜻이니 제목을 직역하면 ‘노동자의 사랑’이지만, 어감을 살리기 위해 ‘과일장수의 사랑’으로 번역했다.

돈도 좀 모으고, 가게도 차렸겠다, 정씨에게 필요한 건 배필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정씨네 가게 건너편에는 아리따운 딸을 가진 한의원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씨는 과일도 던져주고, 곤경에 빠진 한의원 딸을 구해주기도 하면서 몰래 사랑을 키워간다. 영화가 ‘과일이 던져준 인연(擲果緣·척과연)’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까닭이다.

정씨는 용기를 내서 의원에게 찾아가 딸을 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파리만 날리고 있던 의원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혼사를 허락하겠다”고 거절한다.

시무룩해져서 집으로 돌아온 정씨. 정씨가 사는 곳은 이층집 아래층이다. 윗층은 ‘전야구락부’(全夜俱樂部), 이른바 ‘올나잇 클럽’이었다. 당시 상하이 중산층들은 이런 곳에 모여 밤새 술과 마작을 즐기며 놀았다. 쿵쾅거리는 층간 소음에 잠을 이루지 못해 화가 난 정씨는 실력 발휘에 나선다. 여기서 정씨가 원래 목수였다는 설정이 스토리의 아귀를 맞춰준다.

정씨는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분해해 탈착식으로 재조립한다. 밤샘 오락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멋모르고 내려서면 계단이 뒤로 쭉 빠지면서 미끄럼틀로 변한다. 우당탕탕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사람들. 허리와 다리를 절룩이며 한의원으로 향한다. 한의원 돈통에 한닢, 두닢 쌓이는 동전이 클로즈업되고 의원과 딸은 연신 싱글벙글거린다. 이 모든 일이 과일장수 정씨가 꾸민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의원은 마침내 혼사를 허락한다. 정씨는 감개무량해 “장인어른”을 외치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1920년대 상하이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라오궁 출신의 자영업자, 상하이의 시장통, 올나잇 클럽 등은 마치 시대 상황을 기록한 ‘에스노그라피(민족지)’를 보는 것 같다.

당대 상하이인의 희극성도 두드러진다. 코믹한 에피소드들을 연속 배치하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기법은 꽤 수준 높은 영화 연출을 보여준다.

코미디 장르에 대한 연출은 이미 미국에서 건너와 유행하고 있던 찰리 채플린의 희극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특정한 동작이나 표정은 영락없이 채플린의 연기를 닮았다.

이 가운데 클라이막스라고 해도 좋을 계단으로 골탕먹이기 장면은 미국 슬랩스틱 코미디영화의 전설, 버스터 키튼의 초기작 ‘극장(The Playhouse: 1921)’의 한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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