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의 IT스캐너] '탈통신'으로 통신비 인하 고통 이겨내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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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기자
입력 2017-08-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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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이동통신사업자의 공통된 고민은 '탈(脫)통신'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4G LTE로 통신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져 데이터 이용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렇다고 사업자들은 통신비를 무턱대고 올릴 수가 없었다. 전 세계 이동통신사업자들의 통신비 수익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통신비 수익이 줄어든 곳까지 생겨났다.

이통사업자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는데, 본업인 통신을 뛰어 넘는 새로운 부업을 찾아 돈을 벌어야한다는 것이 바로 탈통신이다.

탈통신은 사업자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처방한 생존법이다. 그래서 누가 시킨다고 쉽게 통신을 벗어 던질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탈통신을 외치던 사업자들이 여전히 통신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시행착오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탈통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려 하고 있다.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통신비 인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탈통신 만큼 좋은 명분은 없다. 어차피 탈통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통신비를 포기할 때가 됐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최근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통신비를 받는 세상은 끝났다.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야하는데, 아직도 우리가 전화요금을 받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라는 말에는 그런 뜻이 담겨져 있다. 더욱 더 통신비로 먹고 살기 힘들어졌으니 탈통신을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 보라는 얘기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 (과기정통부 제공) ]


지난 주 통신3사가 일제히 발표한 올해 2분기(4~6월) 실적에서 본업인 통신이 정체되거나 감소되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가까운 미래에 실적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통사들은 수년 전부터 탈통신의 동력을 찾아 다양한 투자를 펼쳤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에너지, 보안,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돈을 벌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일본 통신업계에서 '이동통신의 프로'라 불리는 다나카 다카시(田中孝司) KDDI 사장이 지난 6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상하이' 기조연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탈통신에 할애하며 주목 받았다. 

그의 기조연설은 'MWC 상하이'의 트렌드였던 5G, IoT, AI 등과 전혀 무관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통신 분야 이외에서 돈을 벌 것인가”에 중점을 뒀다. 다나카 사장은 "이제 통신 수입의 성장은 둔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알뜰폰 사업자가 출시한 저렴한 요금제가 대세여서 우리 통신사업자들도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도 이제 본업인 통신을 공식석상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이미 통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는 탈통신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는 2019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될 5G 서비스, 이미 전국에 깔아 놓은 IoT 전용망은 사업자들이 탈통신을 염두에 두고 이룬 투자의 결과다.

유럽에는 5G에 관심조차 없는 통신사가 많다. 3G와 4G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5G에 대한 설비투자에 소극적이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기술은 나중에 따라온다'는 것이다. 솔선해 투자하지 않아도, 나중에 그 기술은 언젠가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이 국내 사업자들의 '선도' DNA의 발목을 잡아 유럽 통신사처럼 '기술은 나중에'라며 기술개발을 뒤로 미루는 수동적인 사업자로 전락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선도하고 싶어도 본업에서 수익이 나지 않으면 투자할 길이 없다. 기술 선도에 목숨을 걸고 달려왔던 국내 통신사들의 체력은 영원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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