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27년간 휘두른 요금인가권, 보편적요금제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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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7-2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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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정책국장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정책국장]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시장지배사업자의 ‘요금인가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동통신서비스 사업자 중 SK텔레콤은 신규 요금제를 출시하고자 하는 경우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1991년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전부개정되면서부터 지금까지 27년간 유지해온 정부의 강력한 이동통신 요금통제권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공공서비스 성격이 강한 시내전화의 시장지배사업자가 아닌, 이동통신사업자의 요금인가권을 정부가 가지고 있는 경우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의 통신법제는 미국과 일본을 롤모델로 삼아 출발했는데, 미국의 경우 2001년 신고제조차 폐지됐고, 일본의 경우 1996년 NTT Docomo에 대한 요금인가제가 신고제로 전환되었으며, 2004년 폐지되었다.

결국 미국과 일본에서는 20년 전에 사라진 규제를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요금인가제의 도입취지와 유지 이유에 대해 “시장지배사업자의 약탈적 요금인하 방지를 통한 후발사업자와의 공정한 경쟁 유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사로 고착화된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에서 3사는 시장지배사업자인지, 후발사업자인지 상관 없이 모두 일정 금액 이상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즉, 더 이상 시장지배사업자의 요금인하를 정부가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요금인가제를 통해 2, 3위 사업자의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는 형태로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사업자 간 법으로 보장된 요금담합 환경을 만들어 주며 ‘공정경쟁’이라는 명분까지 제공한 요금인가제를 진작에 폐지했다면 어땠을까? 199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일본규제개혁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1996년 NTT 요금인가제 폐지 후 요금인하 경쟁이 촉발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1996년 1월 일본의 평균적인 통신요금은 기본료 6800엔, 통화료는 240엔이었던 반면, 요금인가제 폐지 후인 1998년 3월에는 기본료 4900엔, 통화료 100엔으로 각각 낮아졌다고 한다. 또한 가입비(6000엔)가 사라졌고, 월 기본료 32%, 3분 통화료 44%가 인하됐다는 결론이다.

물론, 한국도 동일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처럼 도입취지를 벗어나 국민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은 진작에 폐지되었어야 정상이다. 지금처럼 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유지할 것이라면, 이통3사가 안정적 수익을 올린 시점에서 제도 시행 방향을 바꿨어야 한다. 법률에 명시된 요금인가권을 바탕으로 시장지배사업자가 통신소비자들에게 더 저렴하고,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요금제를 출시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 1기가 이상의 최저가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할 수 있도록 하는데 요금인가권을 활용했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보편적요금제 설정권’이라는 새로운 권한을 요구하고 있다. 요금인가제보다 더 강력한 권한이 주어지면, 소비자들 입맛에 맞는 보편적 요금제를 설계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27년간 사업자에 대한 강력한 권한만 휘두르고, 소비자 권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던 것은 통신 공무원들이었다. 통신 공무원 스스로 과거의 실패와 잘못을 반성하고, 통신 소비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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