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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칼럼] ​공론화위원회의 성공 조건

김형민 초빙논설위원입력 : 2017-07-25 20:00수정 : 2017-07-25 20:00

[사진=김형민]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델이 되도록 하겠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와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공론화위원회' 발족에 즈음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언명했다. 주초에 출범한 9인 공론화위원회는 우리 국가, 우리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책 결정을 시민들의 판단에 위임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실험, 새로운 정치 스타일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공론화위원회가 원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결과적으로 일정 역할을 한다면, 남은 임기 동안 문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당수의 중요한 정책방향 결정에 이런 방식의 해법을 택하게 될 듯도 하다.

공사 중단 여부를 묻기 전에 '탈원전 정책' 자체를 놓고 이런 방식의 여론수렴과정이 있어야 했던 게 아니냐는 일부의 문제제기는 일단 묻어 두기로 하자. 임기 5년의 정부가 국가 백년대계인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공약 이행을 명분삼아 이렇게 전격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냐는 지적도 함께 밀어놓기로 하자. 기왕 출범한 만큼 공론화위원회가 앞으로 3개월 동안 해야 할 마땅한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위원회의 첫 번째 과제는 공정한 결정을 담보할 균형 잡힌 시민배심원단의 구성이다. 이를 위해 지역별·세대별 안배도 해야 하고, 가능한 편견 없이 사안을 살펴보고 판단해줄 평균적 모범시민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의 과제라면 이들 시민배심원이 각자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는 일이다. 주어진 3개월의 시한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이 일의 초점은 우선 시민 배심원들에게 독자적 판단과 결정이 가능한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데 맞춰야 한다.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찬반 양 진영의 갈등 원인과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도, 하려 해서도 안 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공론화위원회의 고민은 단기간 내에 현안에 대한 시민배심원단의 이해도를 끌어올릴 방안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3개월 시한의 원천적인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TV토론 이외의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2021년까지 국내 모든 원전을 폐쇄한다"는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 독일의 경우도 석 달 동안 민심 취합을 위해 활용한 제1의 창구는 TV토론을 통한 여론조사였고, 이때 우리의 공론화위원회 역할을 한 것이 17인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였다. 당시 독일 '윤리위원회'가 행한 주목할 만한 역할은 활동시한 3개월 중 첫 8주 동안 끝없이 토론을 주관하고 개최한 일이었다. 독일 전역에서 100차례가 넘는 TV토론과 공청회 등이 이어졌는데, 이 가운데는 전국에 생방송 중계된 10시간의 TV토론도 포함돼 있었다.

공론화위원회의 성패는 토론회, 특히 TV 생중계 토론을 얼마나 잘 치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양 진영이 유감 없이 모든 주장을 쏟아내며 상대 진영의 주장을 논박·재논박할 수 있도록 공평한 토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 양 진영을 대표할 논객들을 토론 패널로 적절히 선정해 출연시키는 것, 대표 논객들이 그들이 가진 모든 생각을 TV를 통해서 쏟아내기에 충분한 토론 시간을 보장하는 것, 그리고 균형감 있게 토론을 주도할 내공 있는 사회자를 섭외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토론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이와 함께 국민들이 TV토론을 지켜보면서 현안에 대해 어떤 입장 변화를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여론추세조사 등을 통해 시민배심원들에게 자세히 알려야 한다. 특히 충분한 TV토론 시간의 확보를 위해 공중파 방송 3개사는 물론 종편채널까지 모든 가용 채널, 시간대를 동원해 시청자인 국민들이 관심을 넘어 몰입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방송사들에 협조를 구하고 필요한 경비도 지출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앞서 언급한 독일의 경우처럼, 주어진 3개월 가운데 적어도 두 달 동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토론이 매일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발달은 야외 대극장 무대에서 저녁마다 공연된 비극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연극이 끝난 뒤 그리스 시민들은 으레 삼삼오오 모여 술 한 잔씩 기울이며 연극 주인공들의 비극적 운명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이것이 시민의식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폴리스의 통치자들도 시민교육의 의도를 담은 연극경연 축제를 앞다투어 이어갔다고 한다. 희망컨대 우리 국민 모두가 어느 자리에서건 원전과 관련한 자기 입장을 자신 있게 피력할 수 있을 만큼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성숙되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우려되는 점은 출범 초기부터 제기되고 있는 '위원회 무용론'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청와대와 여당이 '탈원전'의 강한 의지를 표출하는 현재의 상황을 감안하면 공론화위원회의 역할이 '정해진 결론'을 이끌어낼 절차적 정당성 확보의 수단에 그치고 말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다. 공론화위원회가 마련하게 될 토론의 장이 벌써 일방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 불과할 것이란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공론화위원들의 향후 행보에는 편향성 시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극도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를 통한 국가중요정책 결정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몰각하는 순간, "갈등 해결을 위한 공론화"는 구두선에 불과해질 것이다. 일방이 결코 승복하지 않는 도로에 그칠 것이다. 봉합은 없고 파탄만 노정될 것이다. 위원회 차원의 각고의 노력에 보태서 정부와 여당도 이번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이 순리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위원회의 공정성 보장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문 대통령의 희망대로 '공론화위원회 모델'을 극한적 사회갈등 해소의 주요한 방안으로 키우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