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600년 역사의 볜이팡(便宜坊), 전통의 맛을 계승하면서 혁신을 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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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령 기자
입력 2017-08-0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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볜이팡 셴위커우(鮮魚口)점[사진=인민화보 완취안(萬全) 기자 ]


인민화보 왕자인(王佳音) 기자 =중국 요리 하면 외국인 중 십중팔구는 ‘베이징 카오야(北京烤鴨, 베이징 덕)’를 꼽을 것이다. 베이징 화덕 오리구이의 원조인 ‘볜이팡’은 영락 14년(1416년)에 개업해 올해로 601년이 됐다. 수백 년간 쌓인 노하우 덕분에 볜이팡 카오야는 맛이 깊어졌고, 문화 계승을 통해 도시와 공존해 도시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신중국 성립 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볜이팡을 방문하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혁신과 발전을 거듭한 볜이팡이라는 ‘라오쯔하오(老字號) 브랜드’는 오랜 세월 동안 쇠퇴하지 않고 시대와 함께 발전했다.

백년 노포(老鋪)의 유구한 역사
노포마다 독특한 창업 스토리가 있게 마련이다. 볜이팡도 예외는 아니다. 명(明) 성조(成祖) 주체(朱棣)가 베이징으로 천도한 뒤 영락 14년에 왕 씨 성을 가진 난징(南京) 사람이 명나라 관리와 함께 베이징으로 왔다. 그는 베이징 차이스커우(菜市口) 미스후퉁(米市胡同)에 작은 식당을 내고 화덕에 구운 닭과 오리 등을 팔았다. 상호가 없는 작은 식당이었지만 닭과 오리 가공에 공을 들여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 손님이 많았다.
명나라 가정(嘉靖) 30년(1551년) 병부 원외랑 양계성(楊繼盛)이 간신 엄숭(嚴嵩)과 갈등이 생겨 모함을 당했다. 분을 참지 못한 양계성은 퇴청 후 차이스커우 미스후통까지 걸아갔다. 갑자기 코를 치르는 향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식당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가 카오야 등 안주를 시켰다. 다 먹고 음식값을 치르려는데 가격이 매우 싸서 식당 이름을 물었다. 주인은 “저렴한 가격에 손님을 대접하려고 만든 작은 가게라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했다. 양계성은 카오야의 맛에 걱정이 사라진 터라 주인에게 문방사우를 가져오라고 해서 일필휘지로 ‘볜이팡’이라고 써주었다. 주인은 정성스럽게 편액을 만들어 문 앞에 걸었다. 이후 볜이팡은 명성이 자자해졌다. 청나라 때에 이르러 볜이팡은 베이징의 유명 식당이 됐고, 볜이팡의 화덕 카오야는 베이징 카오야의 원조가 됐다.
청나라 때는 황제 뿐 아니라 조정의 관리들도 지방관리 연회와 회의 때 카오야를 먹었다. <도문쇄기(都門瑣記)>에는 ‘베이징은 톈야(填鴨, 강제 비육한 오리)가 유명해 8-9근짜리도 있다. 연회에는 통오리가 주요리이며, 유명한 음식점으로는 ‘볜이팡’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외국인인 프랜시스 아서 어글랜은 <베이징잡지(北京雜志)>에 ‘예전에 베이징의 명승고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식을 맛봤는데 볜이팡의 화덕 카오야가 베이징 최고였다’고 썼다.
신중국 성립 후 저우언라이 총리가 볜이팡을 방문하고 볜이팡 세 글자에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즉 ‘인민을 편리하게 하고 가족을 화목하게 한다’는 것이다. 저우 총리는 “인민을 편리하게 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신이고, 가족을 화목하게 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우수한 전통이다. 볜이팡 브랜드를 인민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볜이팡 카오야는 오리를 화덕에서 45분 정도 굽는다. 굽는 동안 몇 분에 한 번씩 위치를 바꿔줘야 한다.[사진=인민화보 완취안(萬全) 기자]

볜이팡의 대표적인 음식들 1.[사진=인민화보 완취안(萬全) 기자]

볜이팡의 대표적인 음식들 2.[사진=인민화보 완취안(萬全) 기자]


옛 맛, 그러나 새 모델
2008년 볜이팡 카오야는 국가급 무형문화재 신청을 했다. 팡훙보(房洪波) 볜이팡카오야그룹 부총경리는 볜이팡 카오야는 화덕 제조 방식을 채택한다며 “이 방식으로 만든 오리는 껍질이 바삭하고 육질이 부드러워 맛이 좋으며, 굽는 과정에서 오리에 불이 직접 닿지 않기 때문에 오리 표면에 이물질이 달라붙지 않아 ‘친환경 카오야’라고 불린다”고 소개했다.
베이징 카오야의 주재료는 베이징 톈야다. ‘난루야(南爐鴨)’라고도 부른다. 이 오리의 원 생산지는 남방이다. 명나라 영락 연간에 베이징으로 운반되어 베이징 동쪽 차오바이허(潮白河) 일대에서 양식돼 ‘바이허푸야(白河蒲鴨)’라고 한다.
굽기 전 도살한 오리의 털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은 다음에 내장을 제거하고 껍질과 고기 사이에 공기를 불어넣어 껍질과 고기를 분리시킨다. 그 다음 오리 몸체에 맥아시럽을 발라 건조시킨다. 굽기 전 오리 내부에 끓인 물을 넣고 오리가 다 익으면 물을 뺀다.
오리를 써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오리 하나에서 108-120조각(껍질과 살이 같이 있는 부분이 최소 80%가 돼야 한다) 정도가 나온다. 편으로 썬 오리는 은행잎 모양으로 크기가 일정하고 두께가 고르다. 고기를 다 썰어낸 오리 뼈는 정갈하다. 유명한 카오야 식당은 오리 껍질을 9편 잘라내 접시에 따로 담아주는데 매우 바삭하다.
카오야는 먹는 방식이 있다. 우선 접시에 밀전병을 깔고 고기를 몇 점 놓은 다음 춘장을 찍어 올리고 파를 얹어 돌돌 말아서 먹으면 기름지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바삭하면서 상큼하다.
볜이팡의 카오야는 전통 카오야의 맛을 보존하면서 혁신을 더했다. 2006년 ‘수샹쑤카오야(蔬香酥烤鴨)’와 ‘화샹쑤카오야(花香酥烤鴨)’를 출시하고 특허도 받았다. 팡훙보 부총경리는 수샹쑤카오야는 채소즙에 카오야를 10시간 이상 담궈 ‘사탈일정(四脫一定)’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사탈’이란 탈유(脫油, 기름 제거), 탈지(脫脂, 지방 제거), 탈산(脫酸, 산성 제거), 탈화(脫火, 불 제거)이다. 육류는 산성이고 채소는 알칼리성이라 산성과 알칼리성이 균형을 이루면 인체에 흡수가 쉽다. 또한 구울 때 채소즙이 오리 뱃속으로 계속 들어가게 했다.
신 메뉴 출시 외에 볜이팡은 인터넷 플러스를 적극 도입해 인터넷 마케팅도 진행했다. 팡훙보 부총경리는 “2014년부터 몇몇 음식 사이트와 제휴해 공동구매 이벤트를 진행했다. 고객에게 5성급 환경에서 3성급 가격을 제공하는 것이 취지였다. 사실 인터넷 마케팅을 하려면 음식의 질과 소비자의 체험이 보장돼야 한다. 가격이 아무리 저렴해도 식당을 방문한 고객이 느끼기에 음식이 맛 없고 체험도 형편없다면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 체험이 괜찮았다면 다음에는 공동구매를 하지 않고 직접 식당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 동안의 홍보 효과를 봤을 때 볜이팡 카오야는 소비자에게 저렴하고 맛있는, 그러면서도 품질이 아주 좋은 요리로 자리잡았다. 자연히 볜이팡의 매출과 이익도 해마다 늘었다.
팡훙보 부총경리는 요식업 브랜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것이라며 신뢰는 요식 브랜드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라오쯔하오 브랜드인 만큼 브랜드 가치와 업계에서의 위치를 유지하려면 ‘계승’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오쯔하오 브랜드는 조상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으로 요리 외에 중국의 풍부한 음식 문화와 경영 철학, 브랜드를 관통하는 기업문화가 있다. 신뢰와 계승을 바탕으로 음식, 서비스, 마케팅 철학의 혁신을 통해 3가지를 하나로 융합해야 시장에 잘 적응하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39년 일한 ‘맛의 장인’
1855년 쳰먼(前門)대가에 문을 연 볜이팡 셴위커우(鮮魚口)점은 볜이팡에서 가장 오래된 점포다.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총면적이 9000여 ㎡에 달한다.
입구 왼쪽에 놓여 있는 대형 스크린에 주방 모습이 실시간으로 방송된다. 요즘 요식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지하 1층 카오야 화덕실에 가면 화덕 6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불은 천연가스를 사용하지만 화덕 벽은 벽돌을 쌓아올렸다. 이곳에서 39년 동안 일하고 있다는 바이융하이(白永海) 사부는 화덕 온도가 200도까지 올라가고 화덕 하나에 10-20마리까지 구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카오야가 익는 45분 동안 몇 분에 한 번씩 카오야를 돌려줘야 열이 고르게 전달된다. 날이 더워도 화덕실에는 에어컨이 없다. 카오야를 굽는 사부들은 고리에 오리를 하나씩 걸어 화덕에 집어넣고 다시 하나하나 뺀다. 이렇게 몇 번 하면 등에 땀이 흥건해진다.
바이융하이 사부는 볜이팡에서 일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때는 나라에서 직장을 분배해주었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일할 줄은 나도 몰랐다. 제자도 많이 생겨 그동안 제자도 얼마나 있었는지 모를 정도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바이융하이 사부는 감회에 젖은 듯 “한 곳에 오래 있다보니 이곳 문화에 동화됐다. 이곳의 유구한 역사와 두터운 문화, 순수한 향미에 매료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오래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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