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의 인더스토리] 세종고속도로 가로챈 국토교통부의 정치력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창익 건설부동산부 부장
입력 2017-07-20 13:37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 안성~세종(66㎞) 구간, 민자사업에서 재정사업으로 급전환

  • - 준공시기 앞당기고 통행료 400원 절감..."국민편익 증대" 명분

  • - 최대 수혜자는 세종시 공무원, 재정사업 3대 필요조건에도 안맞아

 


정치학자 파슨스는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착각하는 것을 정치인의 첫 번째 자질로 봤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당의 권력욕을 국민을 위한 선택으로 포장하는 기술이 정치력이란 것이다. 설경구나 송강호 같은 일류 연기자가 아니고선 연기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어서 정치인은 진짜로 자신이 국민을 위한 존재라는 최면에 빠져 있어야 한다는 게 파슨스의 생각이다. 

19일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세종고속도로 전 구간이 재정사업으로 결론났다. 서울~안성(71㎞) 구간은 한국도로공사가 착공한 뒤 민간에 맡기고, 안성~세종(66㎞) 구간은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한 당초 결정이 뒤집혔다. 국토의 중심을 종단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운영은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게 국토교통부 입장이다.

수익성이 높은 구간은 한국도로공사가 맡아 이익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통행료를 낮춰 국민 편익도 증가시킨다는 논리다. 서울~안성 구간 건설비는 2조4776억원으로 추산됐다. 재정사업일 경우, 통행세는 3600원으로 민자사업일 경우보다 400원이 싸진다.

세종고속도로 건설은 2007년 건설사의 제안으로 검토됐다. 이후 정부의 SOC 예산 감축 기조로 표류하다 2015년 민자사업으로 결론났다.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민자사업에 대한 적격성 연구를 마쳤고 GS건설·대림산업·두산중공업이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다. 적격성 조사에서 적격 여부를 나타내는 VfM 수치는 22.1%였다. VfM(Value for Money) 숫자가 0% 이상이면 민자사업이 재정사업보다 유리하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세종고속도로 건설은 고속도로 공공성 강화란 명분 아래 재정사업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재정사업이 협의 기간이 단축돼 2025년에서 2022년으로 준공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고 한다. 세종시에 행정기관을 추가 이전하고 세종고속도로 완공을 앞당겨서 명실상부한 행정중심복합도시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게 정부 의지다. 

세금을 거둔 건 기록상 기원전 4000년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시초다. 부족 간 협의로 국방과 치안을 위한 공동운영비를 갹출한 데서 조세 행정이 태동했다. 세금을 내는 데 부족이 기꺼이 합의한 건 세 가지 원칙에 기반한 철저한 경제적 계산에서다.

우선 국방과 치안은 국가가 아니면 공급이 어렵다는 데 공감대가 이뤄졌다. 부족별로 전쟁 준비를 하는 것보다 부족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게 이익이란 계산도 깔렸다. 마지막으로 그 편익은 운영비를 공동 부담한 부족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 자발적 납세의 원동력이 됐다.

세종고속도로 재정사업은 위 세 가지 조세 원칙에 어느 것도 부합하지 않는다.

첫째, 고속도로의 경우 국가가 유일한 공급자인 나라는 없다. 세종고속도로 사업은 오히려 민자사업으로 기획됐다. 국토부의 설명대로 민간건설사가 사업에 나선 건 철저히 수익성 때문이다. 도로공사 등 공기업의 존재 이유는 수익성이 없어 민간이 공급하지 못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다. 시장원리에 의해 민간이 공급할 수 있는 SOC를 굳이 정부가 나서 가로챌 이유가 없다.

둘째, 재정사업으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고속도로 건설 방식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은 재정사업이나 민자사업이나 같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부족들이 세금 제도에 합의한 건 공동으로 무기 비용을 부담하는 게 이익이 됐기 때문이다. 6000년이 지났다고 납세자의 계산법이 달라지진 않는다.

세종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수혜자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가의 중추를 잇는 SOC란 점에서 국민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든 혜택이 돌아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정도는 주거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세종시에 거주하거나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본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한 달에 20일 왕복 기준으로 연간 19만2000원의 통행료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2조4776억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결과다.

결국 세종고속도로를 재정사업으로 전환하는 이유가 세종시 공무원을 위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비난이 나온다. 예산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어쩐 일인지 SOC 예산 축소의 기조에도 반하는 재정사업에 대한 반대입장을 접었다. 

세종시 공무원들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재정사업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자신들을 위한 것인지. 착각이 맞는다면 세종시에 있지 말고 여의도로 가는 게 좋겠다. 정치적 자질이 있다는 증거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