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세상의 밥줌마 밥저씨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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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입력 2017-07-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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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그래그래]
작가·북칼럼니스트

세상의 밥줌마 밥저씨들에게

‘밥줌마’는 ‘밥 하는 아줌마’요 ‘밥저씨’는 ‘밥 하는 아저씨’다. ‘상남자-밥상 차리는 남자’란 책도 있듯 요즘은 남자들도 밥 많이들 한다. 눈과 손이 발에게 서로 자신이 더 중요한 일을 한다고 우겼다. 눈은 자신이 보지 않으면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드니 그렇다는 거다. 손은 발이 아무리 걸어봐야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헛걸음이니 그렇다는 거다. 이 말에 화가 난 발이 꼼짝도 않고 멈춰버렸다. 배 고프고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돼서야 눈과 손은 발에게 싹싹 빌었다. 잘못했으니 제발 밥상 앞으로 가자고.

기능하는 역할로 볼 때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머리(두뇌)와 위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물으면 백이면 팔구십은 머리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위장이 밥과 물을 소화시켜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도 도리 없이 굶어 죽는다. 인간의 생존에는 머리에 앞서 위장이 먼저인 것이다.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에는 밥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있다. "눈뜨자마자 꾸역꾸역 밥을 챙겨 먹고서 휴대폰 차고 뛰어나가는 것은 내일 먹을 밥을 벌기 위해서다. 째깍째깍 정기적으로 닥치는 삼시 끼니는 저축이 안 된다. 대출도 안 돼 내 목구멍으로 넘긴 밥만이 내 배를 부르게 한다. 코앞에 닥쳐 먹어야 하는 끼니 앞에서 이전에 먹었던 모든 끼니는 무효다. 그러니 밥벌이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아무 도리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밥 앞에서는 누구나 떳떳할 수 없고, 밥 앞에서는 누구도 비굴해질 수 있다. 그 또한 도리 없다. 밥이 정의고 밥이 진리다. 그래서 옛말에도 ‘부모의 가장 큰 보람은 자식들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라 했던 것 아닐까? 아마도 이 삼시세끼를 때마다 꼬박꼬박 먹도록 인간을 설계한 신의 뜻은 저축되는 밥으로 인해 거만해지거나 게을러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으리라.

부모의 보람과 비굴을 말하다 보니 인상 깊은 만화 두 컷이 떠오른다. 어미 개가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이 담긴 쇼핑백을 챙기는데 고급스럽게 생긴 동네 사람이 개를 향해 ‘저리 가!’라 소리치며 돌멩이를 던진다. 이어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든 채 쇼핑백을 목에 걸고 웃음 지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어미 개를 두세 마리의 새끼들이 ‘와! 엄마다!’ 하며 반가이 맞는다. 새끼들의 밥을 위한 부모의 지고지순을 기막히게 표현한 만화를 보는 순간 숙연해졌다.

그러니 오늘도 귀하디 귀한 우리들의 새끼들을 위해 밥 짓는 밥줌마와 밥저씨, 내일의 밥을 벌기 위해 오늘 먹어야 하는 나의 밥을 짓고 차려내는 ‘그냥 동네 아줌마들’은 그 얼마나 위대한 분들인가! 사실 밥 하기란 무척 쉽다. 더구나 전기밥솥이 알아서 다 지어주는 요즘이야 코흘리개들도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밥은 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밥을 지어 나눠주는 ‘밥퍼’ 최일도 목사의 ‘밥 짓는 시인 퍼 주는 사랑’도 그래서 ‘밥=사랑’인 것이다.

내 손으로 평생 밥 한 번 짓지 않는 사람들, 자손대대로 먹을 밥이 쌓인 사람들, 오늘도 무지막지한 밥을 더 쌓은 사람들은 ‘밥 짓고 퍼 주는 그 사랑’을 알 리 없다. 젊었을 때 재벌그룹에서 일했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무더위가 한창이던 여름에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밥을 더 달라!’며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때 회장의 어린 손자가 사옥에 왔는데 주변의 부회장이나 사장 같은 뜨르르 높은 사람들에게 ‘저 사람들은 더운데 왜 저러고 있는지’ 물었다. 그중 한 어른-그 또한 다음 날의 밥을 위해 그날 아침을 꾸역꾸역 먹고서 휴대폰 차고 뛰어나온 사람이다-이 ‘돈을 더 달라고 그러는 겁니다’라고 공손히 대답했다. 그러자 손자는 “돈을 더 달라고 한다고요? 왜 돈을 더 달라고 그래요?”라고 되물었다. 좌중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이는 ‘돈이란 얼마든지 넘치고 넘쳐 더 달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저 사람들 참 이상하다는 어린 손자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개 사원 주제에 그 재벌그룹 회장을 가까이서 마주할 일이 퇴사 때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소위 재벌 가문의 사람과 독대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의 사고와 행태를 여의도 지라시나 언론 기사 등으로나 유추할 뿐이다. 그런데 딱 한 번 탄탄한 중견그룹의 ‘회장님’과 경영수업 중인 젊은 아들을 동시에 대한 적이 있었다. 그룹 홍보와 관련된 미팅이었는데, 30대 정도로 보였던 아들은 미팅 현장에는 없으나 아버지 뻘 되는 부장이나 임원들을 회장에게 호칭하면서 ‘아무개 부장, 아무개 상무’가 아닌 그냥 ‘아무개’였다.

나는 그때 그 어린 손자와 젊은 아들로부터 ‘운전기사를 개·돼지로 취급하는 회장’을 보았다. ‘국민은 개·돼지라 했던 상류 공직자’를 보았다. ‘더위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고 있다’는 기사가 오늘도 뜨는 학교 급식조리사들을 ‘아무 것도 아닌, 그냥 동네에서 밥하는 아줌마는 물론이요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까지 도매금으로 같잖게 여기는 국회의원’을 보았다. 급식조리사들이 밥 앞에서 좀 더 떳떳하게 밥을 할 수 있도록 정규직으로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 좀 했다가 2억년 전 쥐라기 공원의 무지막지한 공룡이 던진 돌멩이에 된통 세게 얻어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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