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물고기 박사' 황선도 "지속가능성의 위기, '슬로피시'로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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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입력 2017-07-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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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박사는 "물고기 이야기는 결국 사람 이야기"라며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이득인지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황선도 박사 제공]


박상훈 기자 =타닥타닥. 연탄불에 고등어 두세 마리가 노릿노릿 익어가고, 호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과 넥타이를 풀어 헤친 직장인들은 안주를 기다릴 새도 없이 시원한 막걸리를 연신 들이켠다.

지금은 추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종로 피맛골은 많은 이들에게 허기를 달래고 삶의 굴곡진 더께를 털어내는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황선도 박사(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서해지사 생태복원실장·54)는 피맛골 골목골목을 가득 채웠던 비린내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30년간 바닷물고기를 연구해 온 토종 과학자이자 '물고기 박사'로 이름을 알린 그도 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생선구이와 막걸리로 구수했던 그 어딘가의 골목을 떠올린다.

황 박사는 지난 4월 해산물의 유래와 생태, 바다 생태계의 역동성 등을 우리 삶과 연결 지은 책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서해문집)를 내놨다. 2013년 펴낸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에 이은 두 번째 저서다. 

책 제목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의 입담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오죽하면 '과학계의 황구라'라는 별명까지 얻었을까. 

"웬만한 군산 토박이보다 군산을 더 잘 안다"는 그를 군산에서 만났다.

◆ 물고기의 시각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다
"풍광 좋은 사무실이네요." 황 박사는 부분 개통을 눈앞에 둔 동백대교(군산과 서천을 잇는 길이 1930m의 다리)를 지척에, 좌우 양쪽으로는 각각 서해바다와 금강하굿둑을 품은 곳에 앉아 있었다.

황 박사는 대뜸 "이리 와보라"며 사무실 창가 쪽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그는 "겉보기엔 경치 좋아 보일지 몰라도 여기는 과거 번창했던 그 군산항이 아니다"며 "1990년 하굿둑이 들어선 뒤 이곳에 토사가 밀려왔고, 이제는 썰물 때 배가 갇힐 정도가 돼 항구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실제로 군산항엔 '죽펄'이라 부르는 검은색 토사를 퍼나르기 위해 준설선이 오가고, 고깃배들은 외떨어진 군산외항을 모항으로 삼고 있다. 블로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모바일 환경에 힘입어 주말 같은 경우 근대문화유산 관광지로서 활기를 띠지만, '항구'로서의 명맥은 끊긴 셈이다. 

그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 이젠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으로 바뀌었다"며 "물고기 이야기를 한 것도 결국 물고기의 시각으로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거나, 알아도 짐짓 모르는 체하는 것까지도 집요하게 파헤치는 그의 재주 때문일까. 그가 자신의 책에서 첫 번째로 다루는 해산물은 '영원한 비주류' 해삼·멍게·개불이다. 그는 이들의 형태, 습성, 종류, 맛, 효능 등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전달해 이들이 무시받을 만한 존재가 아님을 설파한다.

"모양은 남자의 성기를 닮았다. (중략) 손으로 만지면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액체를 내기 시작하는데, 마치 털구멍에서 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며 실이나 머리카락처럼 가는 것을 사방으로 뿜어낸다." 무엇에 대한 설명일까. 바로 개불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1758~1816)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근해에 서식하는 수산생물을 조사·관찰해 '자산어보'를 집필했는데, 그는 개불을 이렇게 기록했다.

황 박사는 자산어보를 비롯해 '우해이어보', '전어지', '조설' 등 해산물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관찰을 보여주는 우리 옛 문헌들도 틈틈이 소개한다. "뱃속에는 물체가 있는데, 그 모양이 밤송이 같다. 창자는 닭의 것과 같고, 껍질은 매우 연하여 잡아 들어 올리면 끊어진다."(자산어보) 해삼에 대한 관찰기록도 놀랄 만한 수준이다.

◆ 생태복원사업의 걸림돌··· 서식처 파괴와 남획
개인적으로 삶은 소라의 쫄깃한 식감과 특유의 풍미를 좋아한다. 황 박사에게 소라 얘기를 꺼냈더니 "비상 상태"라고 눈을 부릅떴다.

소라는 주로 제주 수심 20m 바위에 서식하는데, 해조류가 녹아내리고 무절석회조류(마디가 없는 석회질로 이루어진 해조류)가 바위를 덮어 버리는 갯녹음 현상이 심해져 자원량 감소 등의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다. 어획량을 할당제로 관리하는 '총허용어획량(TAC)' 제도가 처음 적용된 종도 소라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원 회복으로 이어졌다. 황 박사는 "해양 환경 변화도 주시해야 하지만, 해산물 남획이 심각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매년 약 1조~2조7000억 마리의 물고기가 바다에서 사라진다. 물고기를 비롯한 해양생물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포획되는 생물종인 것이다.

황 박사는 "옛날부터 해산물은 누구나 잡을 수 있는 '공유재산'쯤으로 여겨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였다"며 "이렇게 경쟁적인 어로 행위를 일삼다 보니 어촌 중에는 두레나 향약처럼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눠 먹는 인심이 사라진 곳들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해양생물 서식처 파괴도 지적하며 "현재 우리나라 바다는 수산자원이 많이 고갈된 실정인데, 과거에 비해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며 수산물의 소비, 휴식·레저 공간 등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고 짚었다. 자원 보존적 관리에서 적극적 자원 조성으로 개념 이동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서해지사와 부안군은 이런 차원에서 지난 2012년부터 위도 연안에 바다목장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황 박사가 늘 강조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다. 그가 지속가능한 어업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소비자의 책임 있는 수산물 소비를 지향하는 '슬로 피시(Slow Fish)'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잡는 어업에 비해 기르는 어업이 여러 면에서 효율적일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바다와 갯벌에 접근하면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이문을 남기기 위해 빠르게 대량생산하는 공장식 먹거리가 아니라, 남해의 죽방렴·석방렴, 서해 갯벌의 독살, 제주의 원담 등 자연에 순응하며 소비자와 가까운 생산지에서 수산물을 얻어내는 방식이 역설적이게도 미래의 어원이자 식량자원"이라고 명토 박았다.
 

황선도 박사 [사진=황선도 박사 제공]


◆ "새만금 간척지, 해양생물과 바다에 돌려주자"
그는 갯벌을 조사하면서 '조개의 여왕'이라 불리는 백합에 애증의 기억을 갖고 있단다. 어민이 자신의 입에 넣어준 갓 잡은 대합의 싱싱함, 진하고 시원한 백합조갯국 등이 '애'였다면,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져버린 갯벌과 백합의 추억은 '증'인 셈이다. 그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결정되면서 어민들은 몇 푼의 보상금에 양식장을 내놓고, 평생의 삶을 일군 새만금을 떠났다"며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흉흉한 민심뿐"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 1991년 시작된 새만금지구 종합개발사업은 15년 만인 2006년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군산~김제~부안을 잇는 33㎞ 방조제가 바다 한가운데 쭉 뻗게 됐다. 2조원이 투입된 이곳은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바다가 내해가 되고 283㎢의 간척지가 조성된, 상전벽해의 본보기가 됐다.

황 박사는 새만금 간척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비단 시행 중단, 법정 싸움, 사업 강행 등이 반복되며 지역민과 학계가 갈등을 앓아서 그런 게 아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새만금개발지구는 해외투자 유치 실적 저조, 관광객 감소, 여기에 당초 개발계획에서 상당히 비켜가 있는 상태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수질 문제까지 예상된다"며 "이제라도 만경강·동진강 하류의 물 사용 방안, 새만금 산업단지에 대한 시장의 수요 등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생각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물의 부분 소통으로 해안선을 확대하고, 물가부지에 방풍림 또는 어부림을 심어 물고기를 위한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 10여년의 간격을 두고 새만금방조제 건설 전후의 생태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조류에 따른 해저 지형 변화로 퇴적물이 재배치됐고, 패류의 군집 구조에 영향을 줘 자원 보존이 시급했다. 그는 이런 내용의 연구 결과를 내놓았지만 개발론을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강과 금강을 복원하고 싶다는 그는 "새만금이 제2의 송도(인천)나 마린시티(부산)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다와 인간세계 사이에는 갯벌·습지 등 물가부지 같은 점이지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어느 순간 자연의 역습에 피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 과학자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물고기 인문사회학자였네'라고 슬며시 웃고 있던 찰나, 그는 "허름한 삼겹살집에서 한잔 합시다"고 손목을 잡아끌었다. 담백한 생선구이나 윤기 나는 생선회가 아니라, 삼겹살이라니.

"이 노포도 그렇고, 이 동네 자체가 참 운치 있지 않아요? 그런데 사실 여기는 활력을 잃은 지 오래된 곳이에요. 자연은 복원 능력이 있지만, 그건 한계가 있죠. 수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무한히 찍어 낼 수 없어서 마구 잡으면 해마다 줄게 되고요. 물고기든 사람이든 서로 공존하지 않으면 공멸이에요 공멸."

'황구라'는 그렇게 말하고 술잔에 알코올 도수 17.8%짜리 '바닷물'을 채웠다. 
 

황선도 박사 [사진=황선도 박사 제공]


△황선도 박사는? 
해양학과 어류생태학을 전공했고, 수산자원생태로 이학박사를 취득한 토종 과학자이다. 20년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근무하면서 7차례 이사하며 '주변인'으로 살았으나, 그 덕분에 어느 바닷가든지 고향으로 여기게 됐다.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해양생태계 복원과 수산자원 조성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강연과 방송 등을 통해 물고기 시각으로 인간세상 바라보기를 주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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