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➈] 기로에 선 대만 영화 산업…중국 자본이 ‘좌지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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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17-07-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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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라하게 막 내린 타이베이 영화제

[제19회 타이베이 영화제 포스터]

2014년 한국의 이승용 감독이 ‘10분(10 minutes)’으로 대상을 받아 우리에게도 낯익은 타이베이(臺北) 영화제가 지난 15일 막을 내렸다. 

타이베이 영화제는 신인 감독 발굴 및 아시아 영화의 비전을 제시한다는 취지 아래 1998년부터 시작된 국제 영화제다.

‘연결(連結)’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영화제는 규모와 구성면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기록했다.

작품 수는 160여편으로 300편이 넘게 출품됐던 2014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또한 개최국인 대만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의 출품작은 단 50여편에 불과했다.

최근 중국과의 정치·외교적 마찰이 대만 영화산업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타이베이 영화제는 ‘국제 영화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개·폐막작이 모두 대만 영화로 선정됐다.

개막작은 대만 감독 황신야오(黃信堯)의 ‘위대한 부처(大佛普拉斯)’였다. 황 감독은 2014년 타이베이 영화제에서 상영된 독특한 블랙 유머와 대만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호평을 받은 자신의 단편 ‘부처’를 장편으로 제작했다. 불상을 만드는 공장의 경비원이 사장의 드라이브 레코더를 훔쳐보며 즐긴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국제 신감독경쟁’ 부문과 ‘타이베이 영화상’에 더블 노미네이트가 됐다.

폐막작 역시 대만 영화인 ‘만페이(曼菲)’가 상영됐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천화이언(陳懷恩)은 ‘연습곡(練習曲)’이라는 영화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감독이다. 이번 작품은 뤄만페이(羅曼菲)라는 폐암으로 죽은 한 대만 댄서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올해 타이베이 영화제에서 그나마 주목 받고 있는 아시아 작품은 특별 상영된 홍콩 쉬안화(許鞍華) 감독 신작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가(明月幾時有)’ 정도였다. 중국과 홍콩 합작 영화인 이 작품은 중국에서 홍콩 반환 20주년에 맞춰 7월 1일에 개봉했다. 홍콩에서는 7월 6일, 대만에서는 7월 7일부터 상영되고 있다.

영화 제목은 중국 북송의 시인인 소식(蘇軾)의 ‘수조가두(水調歌頭)’의 한 구절이다. 1941년 12월부터 1945년 8월 말까지 3년 8개월 간에 걸친 일본군에 점령된 홍콩을 무대로 한 작품인 만큼 영화 제목과 시 구절이 더없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항일 독립 여전사였던 ‘방란(方蘭)’이 순수하고 여리기만 했던 문학소녀에서 어떻게 항일 투쟁의지를 불사른 여전사로 변모하는지에 대한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대만이 배출한 세계적 감독 리안(李安)의 ‘색계(色戒)’를 떠오른다는 감상평도 나왔다.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 포스터]


이번 타이베이 영화제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가 틀어진 대만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현재 중국은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부으며 대만 영화산업을 잠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1일에는 HMV 디지털 중국이 ‘나의 소녀시대(我的少女時代)’를 제작했던 화롄국제(華聯國際)사를 27억9000만 대만달러(약 1000억원)에 인수했다.

2015년에 개봉한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24억 대만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대만 최고의 흥행영화다. 대만영화로서 중국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이기도 하다.

화롄국제사 역시 회사 창립 5년 만에 어렵게 나의 소녀시대를 히트시키며 대만의 대표적인 영화제작사로 올라섰지만 결국 중국 자본에 팔려갔다.

HMV 디지털 중국은 대만 영화사를 인수해 중국과 대만, 홍콩을 아우르는 이른바 ‘양안삼지(兩岸三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자본의 유입은 대만적인 특색의 상실로 이어졌다. 대만 영화감독인 허우샤오셴(侯孝賢)은 한 기자회견에서 “중국 대륙과의 합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이라고 고백했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상영된 ‘자객 섭은낭(刺客聶隱娘)’도 제작비의 절반을 중국에서 끌어들여 겨우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영화제 현장에서도 대만 영화의 미래에 대한 목소리가 많았다.

그동안 대만 영화는 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 국가와 부딪히며 성장과 퇴보를 거듭해왔다. 1980년대 뉴웨이브 감독들로 인해 전성기를 맞았던 대만 영화가 수차례 부침 끝에 이번에는 중국의 거대한 자본 앞에 거대한 벽 앞에 섰다.

[황선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국립대만사범대학 문학박사)]


황선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국립대만사범대학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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