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삶과 꿈] 동북아 비극 시대에 민중의 지팡이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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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효 기자
입력 2017-07-1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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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일혁,토벌작전 중 이렇게 지휘하며 싸웠다

[사진: 차일혁기념사업회 제공]

남정옥(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학박사)=차일혁(車一赫) 경무관은 빨치산을 토벌할 때에는 철두철미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차일혁은 부하의 희생을 줄이고 전투에서 승리를 위해 조그마한 것에까지 신경을 쓰며 지휘했다.

 다년간의 전투경험을 통해서 볼 때, 전투는 절대 선(善)과 악(惡)을 따지지도 않고 자비심(慈悲心)도 베풀지 않는다는 것을 차일혁은 알게 됐다. 누가 더 세심하고 철저하게 전투를 준비했느냐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갈린다는 것도 깨달았다. 전투의 승패는 대부분 찰나의 순간에 결정됐다. 지휘관은 그런 전투의 순간을 결정짓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은 수 없이 많은 전투를 지휘관의 위치에서 결정하고 싸웠다.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과 방심은 부대원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했다. 전투에서 지휘관의 그릇된 착오와 결정은 부대의 전과는커녕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는 참담한 패배를 겪어야 했다. 그런 과오와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수집과 확고한 결심 그리고 철저한 전투준비만이 필요했다. 그것은 순수하게 지휘관의 몫이었다. 차일혁은 빨치산토벌대장의 직책을 맡은 야전지휘관이었다.

 차일혁은 토벌작전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전투를 치렀다. 빨치산의 근거지를 기습적으로 공격하거나, 빨치산이 지나가는 길목에 미리 매복하고 있다가 습격(襲擊)하거나, 빨치산을 유인하여 공격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전투 수행 중에는 빨치산이 흘린 거짓 정보에 넘어가 오히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빨치산의 ‘역정보(逆情報)’에 걸린 경우이다.

 가끔 빨치산들은 오지의 산간(山間) 주민들을 강요와 협박으로 포섭하여 경찰토벌대가 오면 “빨치산이 없다”고 거짓 제보를 하게 해놓고서, 경찰토벌대가 경계심을 풀고 마을로 들어오면 공격하는 수법을 썼다. 빨치산들은 이런 수법을 자주 사용하여 토벌 경찰과 국군을 괴롭혔다. 그때마다 군경의 피해가 컸다. 차일혁은 그런 빨치산의 수법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차일혁은 오히려 빨치산의 그런 역정보에 의한 작전을 거꾸로 이용했다. 빨치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수집했다가 그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매복하는 작전이었다. 차일혁이 빨치산토벌을 할 때 가장 성공률이 높은 작전이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피해도 감수해야 되는 작전이었다. 잘 쓰면 약(藥)이지만 잘못 쓰면 독약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차일혁기념사업회 제공]

그렇기 때문에 차일혁은 매복 작전이 경찰에게 독(毒)이 되지 않고 약(藥)이 되게 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빨치산이 지나가는 길목에 매복하고 있다가 공격만 잘하면 커다란 전과를 올리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빨치산들은 경계심을 풀고 느긋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차일혁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지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전장 상황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막상 매복 작전을 하면 예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럴 때를 대비해 차일혁은 조그마한 것에까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매복 도중 눈앞으로 지나가는 빨치산들을 보면서 그냥 통과시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전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의 경우 조여드는 긴장감으로 인해 숨이 막혀 자신도 모르게 기침소리를 내게 된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차일혁은 부하 대원들에게 잠복할 때에는 반드시 소금을 준비하도록 했다. 기침이 나오려고 할 때 소금을 입에 털어 넣으면 신기하게도 기침이 멎었다. 매복 중 기침소리는 빨치산들에게 토벌대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럴 경우 애써 쳐놓은 그물에 물고기가 도망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악의 경우 빨치산의 기습적인 저항에 의해 매복을 서고 있는 경찰 토벌대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기침이 나올 때 소금을 먹는 것은 차일혁이 오랜 전투경험에서 배운 ‘전장상식(戰場常識)’이었다.

 매복 작전 중에서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사격군기였다. 지휘관이 사격을 하라고 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총을 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사격군기(射擊軍紀)’이다. 그런데 담력이 약하거나 신병들 중에는 적을 보면 덜컥 겁에 질려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매복 작전은 아무 소용이 없다. 무더운 여름철 산속에서 산모기와 싸우거나 겨울철 냉기가 감도는 산속에서 칼바람과 맞서며 세운 매복이 모두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다. 차일혁은 이런 엄청난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매복 중에는 간부들이나 전투경험이 많은 부하들을 제외하고는, 대원들에게 총의 방아쇠를 잡지 말고 총을 가슴에 껴안도록 했다. 잠복 중에 긴장하여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전투경험이 많고, 담력이 여간 세지 않는 한 그런 지시를 내리기가 어렵다. 그런 전투지휘는 전투경험이 많고 담력이 센 차일혁 만이 할 수 있는 조치였다.

 시간이 흐릴수록 빨치산 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험준한 산속에서 오랫동안 산 생활을 한 빨치산들은 나중에는 ‘날다람쥐’처럼 빠르고 민첩해졌다. 그런 빨치산을 잡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대응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차일혁은 사찰유격대를 조직하여 운영(運營)했다. 그리고 그들을 혹독하게 훈련했다. 그들은 ‘골수 빨치산’을 잡기 위한 ‘빨치산 사냥꾼’이자 ‘빨치산의 덫’ 역할을 했다. 날다람쥐 같은 빨치산을 잡기 위해서는 그들을 능가하는 조직과 뛰어난 대원들이 필요했다.

 차일혁은 그런 사찰유격대원들에게 빨치산을 토벌하러 갈 때는 반드시 세수와 면도, 양치질 그리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빨치산들은 오랜 산중 생활로 후각과 청각이 동물에 가까울 정도로 발달했다. 어느 정도인가하면 빨치산들은 50미터 전방에서도 비누냄새, 치약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차일혁은 작전 중에는 사찰유격대원들에게 비누와 담배의 사용은 물론이고 목욕까지도 금지시켰다. 그렇게 해야만 빨치산들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지피지기(知彼知己) 방식의 전투 지휘였다. 차일혁이 토벌작전 중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전투지휘와 적을 알고 대비하여 싸우는 ‘차일혁식 지휘기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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