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대인춘풍 지기춘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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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기자
입력 2017-07-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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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그래그래]

대인춘풍 지기춘풍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指己秋霜)은 ‘남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반대인 ‘내불남로’다. ‘네 탓이오’가 아닌 ‘내 탓이오’다. 말이야 좋은 말이고,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처세 또한 저게 기본이지 싶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처럼 대개 좋은 말 치고 실천하기 쉬운 말이 드물다.

신혼 때 첫아들이 걸음마를 시작했을 즈음 어디 산사에 관광 갔다가 문 앞에서 대나무를 쪼개 만든 ‘사랑의 매’를 사왔다. ‘오냐 자식 호로 자식 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놈 매 하나 더 주라’는 속담도 있는 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때리며 가르쳤다”는 상사의 조언을 좇아 올바른 인성교육을 위해 필요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물론 그럴 일이 없다 해도 벽에 걸어놓는 것만으로 아들에게 겁을 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과 달리 천성이 누구를 때리지 못하는 유약함(믿거나 말거나)에다 큰 말썽 없이 커주는 아들 덕에 굳이 회초리까지 들어 아들을 꾸짖을 일은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회초리를 피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몇 년 전 상사의 조언이 생각났다. 어린 아들을 불러 무릎 꿇리고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너의 잘못은 아빠가 너를 잘못 키운 탓이다. 회초리 열 대로 아빠를 징벌한다”고 판결했다.

아뿔싸! 바지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 한 대를 나의 종아리에 휘둘렀을 때 나는 그 판결이 심히 잘못된 것임을 직감했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사나이 ‘가오’가 있지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 눈을 질끈 감고 한두 대를 더 휘둘렀다. 눈에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정말 아팠다. 그때쯤 ‘여보, 그만하세요’라며 말려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아내는 야속하게도 뻔히 쳐다보고만 있었고, ‘그 못 돼먹은’ 직장 상사의 농간에 당했다는 울분마저 솟았다.

결국 나는 잔꾀를 부렸다. 남은 매는 스윙은 힘껏 하는 척하면서 타격 시점엔 힘을 슬쩍 뺐다. 매와 매 사이의 간격도 빠르게 이어갔다. 아이가 눈치를 채 다소 쪽팔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음속에선 그러는 나에 대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며칠 후 나는 슬그머니 그 대나무 회초리를 없애버렸다. 그건 혹시 참사가 반복될까 싶은 데다 아이를 체벌하게 될지라도 군밤이나 몇 대 먹이고 말지 대나무 회초리는 너무 아파 잔혹한 벌이라 판단해서다. 역시 경험을 이길 선생은 없는 법, 나는 그때 이미 ‘지기추상’을 포기했었다.

대신 ‘세상 일에 함부로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40대까지도 한 다혈질 했다. ‘대인추상’이었다. 좋게 보자면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 하겠지만 안 좋게 보자면 박쥐 같은 이중성격자였다. 자신은 정의롭게만 사는 것처럼 했다는 것인데, 돌아보면 갑님과 클라이언트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남의 눈에 가시만 봤지 내 눈에 들보는 보지 않았던 것. 사람들과 불화가 잦은 만큼 비례해 삶도 피곤했다. 멀리 보며 부드럽게 관리하지 못하고 순간 욱해 뒤틀린 인간관계를 원상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은 확실히 어폐가 있었다.

그렇게 저렇게 회초리 사건으로부터 십수년을 지나 이제 지천명(知天命)의 50대 중반에 이르렀다. ‘하늘의 순리를 알고 따른다. 하늘의 뜻을 거슬러 무리하지 않는다’는 시절이다. 누가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지천명을 지나자니 세상사, 인간사를 대하는 자세가 확실히 달라짐을 피부로 실감하겠다. 지난 봄날 벚꽃이 바람에 펄펄 날리는 것을 오랫동안 지그시 바라보았다. 가만 보자니 꽃이 지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같은 바람에도 굳이 떨어지는 꽃은 바람 아닌 꽃 저 때문이었다. 낙화마다 날리는 길과 닿는 바닥도 달랐다. 허공중에 이미 꽃마다의 길이 각자 정해져 있었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지천명의 깨달음이 그날의 꽃비로부터 왔다. 비로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화를 내지 말고 나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하라’던 공자의 가르침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심연의 불화, 욕심, 원망, 분노, 질투, 시기, 미움 같은 ‘하찮은’ 것들을 꽃잎에 실어 날려보냈다. 옹졸한 이유로 관계가 불편했던 친구에게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참 편해졌다. 대인춘풍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지기추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제껏 살아온 내력이 있는데 지금에야 내가 무슨 죄라고 나에게만 지기추상 결심하고 또 작심삼일에 낙담할 일이 뭐 있겠는가? 그저 추상은 화가들에게나 열심히 그리라 하고 나는 살던 대로 그리 살련다. 흠도 있고 결도 있는 채로, 좀 부족한 채로, 이현령비현령 술덤벙물덤벙으로 세월의 담벼락을 구름처럼 가벼이 넘어야겠다. ‘대인춘풍 지기춘풍’으로나 살아야겠다. 적당히 실수하며, 적당히 용서하고, 적당히 후회도 하면서 바위를 만나면 옆으로 돌아 앞으로 가는 물처럼 그리 바다로 가야겠다. 말처럼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 대한민국 정치인 님아! 님도 이제 곧 연세 칠십이신데 주구장창 ‘내로남불’ 그만하시고 진심으로 나라와 국민 걱정 좀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요즘 엄동설한 촛불 들었던 국민들이 속 타 죽을 지경이랍니다. 아무래도 그 촛불이 밤손님들 길만 밝혀준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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