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종교시설에 가는 게 꼭 '봉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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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2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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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피해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릉시종합자원봉사센터 직원과 봉사자들. 사진은 본 칼럼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오랜만에 주말에 모여 봉사활동을 합니다. 한참 뒤늦게 온 친구가 두 시간도 안 돼 급하게 짐을 챙깁니다. 어디 가는지 물어봤더니 '성당 간다'고 합니다. 성당에서 총무 등 맡은 일이 있어서 봉사하러 간다고 합니다.

잘 가시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들 자기 종교가 있는데 안 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신자라고 해서 가나안을 거꾸로 읽는 종교시설에 '안나가'는 신자들입니다. 우리가 안 나간다고 해서 나가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봉사도 늦게 와서 먼저 가는 이유가 '종교'라는 말에 신앙 아니, '신의 뜻'은 무엇인가 고민해 봅니다.

NGO에서 일하는 직원의 면접을 봅니다. 1년에 두세 번은 주말에도 근무해야 되는데 괜찮냐고 묻습니다. 서울거리축제 등 각종 페스티벌이나 이벤트에 NGO 행사가 있어 부득이 근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교회에 다니지만 한달에 한두 번은 안 나가고 봉사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봉사가 아니라 대체휴무가 있는 업무로서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3달 정도 지나서 면접 때 고지한 행사날이 되었습니다. 전날 준비를 마치고 다음날 9시까지 나오기로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까지 와서 일을 거두는데 정작 관리할 직원이 오지 않습니다. 전화도 문자도 두절됐습니다. 오후가 돼서야 얼굴을 보인 그(녀)가 한 말은 “교회 예배중이어서 전화를 연락을 못했다”였습니다. 조금도 미안해하는 얼굴이 아닙니다.

가끔 사찰에 가서 봉사를 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도 일을 함께 했습니다. 물론 수녀님들과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직원 한 명이 절에는 못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기독교인데 ‘귀신’을 섬기는 절에는 안 들어간다는 겁니다. ‘우상’도 아니고 ‘귀신’이라고 합니다. 업무가 신앙이나 종교를 뛰어넘지 못하는 순간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불교신자인 저는 ‘이교도’이고 어쩌면 ‘악마’와 같은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예전에 안하무인이던 한 '높은 분'의 사모님이 계셨습니다. 끊임없이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다고 합니다. 성당만 다녀오면 얼굴이 환해져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분은 주위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것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환해질수록 주위는 어두워만 갔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든 ‘참회’를 하든 그렇게 하면 정말 죄가 씻기던가요? 인간에게 진 죄를 신이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요? 피해자는 용서를 못했는데 신에게 기도했다는 이유로 용서가 되던가요? 그런데 왜 피해자는 더 고통스러워 할까요? 결국 주위의 원망을 들은 그분은 단체에 안 나오게 되고 남편분도 덩달아 안나오게 되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일까요?

대부분의 일상에서 골프를 치러 다니고 성당이나 사찰에 다니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자원봉사자 부모님께 봉사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귀찮은 일인지 봉사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봉사를 하더라도 종교 안에서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놀랍지도 않은 것은 그런 분들이 늘수록 우리 종교는 타락해 가는 듯합니다. 언제부턴가 기성종교에서 ‘신성’함이나 ‘깨끗’함을 유지한 종교는 이젠 없는 듯합니다.

과연 봉사란 무엇일까요? 사찰, 성당, 교회 등의 종교시설에 가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봉사가 되나요? 설사 ‘남’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해서 그게 좋은 일일까요? 그 시간에 기도하게 도와주는 것이 정말 나눔일까요? 정작 그 시간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고통받는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어떨까요? 비슷한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봉사’를 하는 것은 결국 ‘골프’를 같이 치거나 ‘청탁’을 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은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위의 이야기들은 모두 각각 다른 이야기며 맥락도 다른 극단적인 일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믿는 대부분의 신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천주님도 정말 신이라면 자신의 이름을 팔며 종교시설에 와서 결국 성직자들을 타락시키는 것보다는 당장 주변의 이웃과 고통을 나누라고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종교시설에 간다고 봉사가 되는 것도 아니며 세상을 밝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당신과 가족이난 지인 몇몇 만을 위한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눔’의 실천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당신은 왜 절에 가나요? 성당에 가면 좋은 일하는 것인가요? 교회에서 하는 봉사단체에서만 봉사가 가능한가요?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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