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➄] ‘복수는 아픈 것’…中 잡극으로 본 복수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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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17-06-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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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나라 때 발전한 양식…세련·간결한 형식미 특징

중국 고전 두아원[사진 출처=바이두]

중국고전 조씨고아[사진 출처=바이두]

중국인들 사이에는 “장부의 복수는 10년이라도 늦지 않다(君子報仇,十年不晩)”라는 말이 곧잘 회자된다. ‘복수’는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때문인지 중국의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 ‘복수’는 단골메뉴다. 복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견뎌낸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집념을 불태웠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 이야기를 비롯해 ‘장자(莊子)’에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一婦含怨五月飛霜)’란 구절이 있다.

중국고전의 4대 비극으로 꼽히는 △장생전(長生殿 △도화선(桃花扇) △두아원(竇娥寃) △조씨고아(趙氏孤兒) 가운데 두 작품이나 복수를 그리고 있다. 관한경(關漢卿)의 잡극(雜劇) 두아원과 세익스피어 비극 햄릿과 비견되는 기군상(紀君祥)의 잡극 조씨고아가 복수를 주제로 하고 있다.

잡극은 중국 희곡사의 황금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원(元)나라 때 가장 큰 발전을 이룬 양식으로 음악, 가무, 연기, 대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세련되고 간결한 형식미를 특징으로 한다.

공교롭게도 두아원과 조씨고야는 올해 초 한국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찬사를 이끌어 냈다.

중국의 고전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두아원은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 여인 두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부정한 이들을 꾸짖는 모습, 관리가 도적이 되고 도적이 관리가 되는 세상을 향한 준엄한 꾸짖음이 한국사회의 어두운 시국과 잘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아는 죽임을 당하는 순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삼복더위인 6월에 눈발이 날리고 3년 동안 큰 가뭄이 들 것이다(六月飛雪大旱三年的誓願)’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결국 두아의 저주는 모두 현실이 돼 그녀를 억압했던 무리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두아의 이야기는 부패한 세상에 대한 비판과 정의로움에 대한 확고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같은 복수 이야기지만 조씨고아는 결이 다르다. 통쾌한 복수가 아니라 복수를 위해 20년을 기다린 필부의 씁쓸한 이야기다.

부당한 탄압과 폭정, 그리고 불의에 목숨을 바쳐 저항하는 인물을 보여주는 것은 두아원과 비슷하지만, 조씨고아는 좀 더 복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조씨고아는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을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식까지 희생하게 되는 비운의 필부 ‘정영(程嬰)’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정영은 조씨고아를 자신의 아들로 키우고, 급기야 조씨 가문의 원수인 도안고(屠岸賈)의 양자로 들여보내 20년에 걸쳐 복수의 씨앗을 길러내지만 복수의 끝은 허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반면 현대 중국의 복수 이야기는 과거와는 다른 성격을 보이고 있다. 개인주의적 성향, 무관심한 군중에 대한 복수가 두드러진다.

데이얀엉(伍仕賢) 감독이 2001년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버스44(車四十四)’가 대표적인 예다.

이 영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갑자기 한국 네티즌들의 이목을 끈 적이 있다.

11분짜리 중국 단편영화 한편이 제작한 지 10년이 훌쩍 지나 한국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스토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여성 버스운전사가 강도에게 윤간을 당하고 자신을 도와준 남자 승객 한 명 만을 강제로 내리게 한 후 나머지 승객들을 태운 채 절벽으로 추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들에게 있어 세월호 침몰 사고는 학생들을 ‘불귀의 객’으로 만든 것이 바로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이 세월호 인양과 유해 수습 과정에서 한국 대중들에게 다시 소환된 이유기도 하다.

한국에서 공연된 조씨고아의 등장인물인 묵자의 에필로그는 묵직한 여운을 남겨준다.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현대사회에서의 복수는 자신과 자기 주변 사람에게 가해진 직접적 위해에 대한 앙갚음의 범주를 초월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에서도 이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개인, 군중, 사회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확대되고 있다. 어쩌면 공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안영은 ACCI 선임연구원]


안영은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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