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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칼럼] 유리천장과 여성장관, 그리고 양성평등

입력 : 2017-06-19 20:00수정 : 2017-06-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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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칼럼
초빙논설위원·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

유리천장과 여성장관, 그리고 양성평등

[사진=장영희]




세계 자본주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시 맨해튼 남부 월가의 증권거래소 앞. 지난 3월 7일 1989년부터 월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상 앞에 ‘두려움 없는 소녀(Fearless Girl)’상이 세워졌다. 3.5t에 달하는 황소상에 비해 키 130㎝, 몸무게 110㎏에 불과하지만 당차기가 이를 데 없다. 양 다리를 벌린 채 양 손을 허리춤에 척 올려붙이고 턱을 살짝 치켜들고 강렬한 눈빛으로 앞을 보고 있다. 황소상에게 어디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기세다. 이날 이후 소녀상은 단박에 뉴욕의 핫포토존으로 떠올랐다. 최근 뉴욕에서 필자도 그녀의 당당한 자세를 흉내내며 피사체가 되어본 적이 있다.
소녀상은 젠더 다양성을 추구하는 투자자문회사인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SSGS)가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남성 중심의 월가에 경종을 울리고 유리천장에 부딪힌 기업의 여성들이 리더로 성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월가 한편에서는 이 회사가 자사 금융상품을 팔기 위해 예술의 껍데기를 쓰고 판촉 활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설령 그런 의도가 있었다 해도 소녀상이 여성의 힘과 양성평등의 중요성을 환기하며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소녀상 발 밑 동판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여성 리더십의 힘을 알아보라. 그녀는 변화를 만든다(Know the power of women in leadership. SHE makes a difference).”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강경화 후보자를 외교부장관에 임명했다. 5월 21일 지명한 지 28일 만이다. 이로써 헌정 사상 최초로 70년 만에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이 탄생했다. 강 장관은 그녀의 바람대로 유리천장을 깨고 공직에 헌신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의 사례가 한국 여성들에게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입각이 순탄치 않았던 강 장관 건은 ‘역시 여성이라서’라는 시각을 강화시켰다.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인물을 한국에서는 자격이 없다고 했고, 여객선 선장은 몰라도 항공모함 함장은 안 된다는 발언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왜 강경화가 타깃인가’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여성에 비고시’라는 건드리기 쉬운 약점이 있어서라고 분석했다. 여성계도 “남성 후보자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남성들에게는 관대한 일부 흠결을 침소봉대해 유능한 여성을 정치적 협상의 제물로 삼아 낙마시키려 한다”고 의심했다.
여성계는 김현미 후보자도 비슷한 맥락으로 본다. 그는 “첫 여성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서 많은 기대와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여성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겠다는 결기를 보였지만, 같은 날 지명된 세 명의 남성 후보자가 일사천리로 끝난 것과 다르게 채택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기 내각에 여성장관 30%를 공약했다. 강 장관에 이어 김현미, 김은경(환경부), 정현백(여성가족부) 후보자 등 네 명이다. 현재 17개 부처 중 인선이 안 된 세 부처 중 한 곳에 더 여성장관이 지명되면 다섯명(29.4%)으로 문 대통령은 30% 공약을 지키게 된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장관급으로 격상될 피우진 보훈처장까지 포함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대통령 임기 중 ‘남녀동수 내각’의 실현도 조심스레 점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 달여 여성장관 후보자가 지명되고 임명되는 과정은 파격의 연속이자 양성평등 사회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 유리천장이 매우 두껍다는 사실도 환기시켰다. 유리천장은 여성이나 소수민족 출신자에 대해 고위직 승진·임용을 가로막는 조직 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다양성의 실현>의 저자인 마릴린 로덴이 만든 신조어인데, '월스트리트저널'이 1979년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에서 처음 썼고 1986년 유리천장에 대한 기사를 한번 더 내보내면서 널리 알려졌다.
내친김에 궁금해진다.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은 세계 속에서 어느 정도일까?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 2016년 조사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5점으로 대상국 가운데 최하위인 29위를 차지했다. 4년 연속 OECD 꼴찌다. 25~64살 인구 중에서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은 비율은 남성보다 7.6% 적었고, 경제활동 참여 비율도 21.6%가 적었다. 여성 고위직은 전체 고위직 가운데 11%에 불과했고, 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2.1%에 그쳤다.
문 대통령은 임기 중 남녀 동수 내각 외에도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여성관리직 임용목표제를 도입하고 공공기관의 여성관리자 비율을 높이는 등 공공부문부터 여성 대표성을 높여 민간으로의 확산을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가정 양립정책을 강화하고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정책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일단 다행스럽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세상의 절반, 절반의 구성원은 여성인데, 이코노미스트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에서 여성은 가장 저평가된 천연자원이다. 세상의 절반이 좌절하고 희망을 잃으면 국가적 재앙일뿐더러 상대편 성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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